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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사사로운 공간/나의 20대 (5)
영원한 화자
빠이팅이 넘쳤다. 전역하자마자 지금의 여자친구에게 고백을 했다. 결과는 성공. 모든게 빠이팅이 넘쳤다. 그땐 그랬지. 후훗. 전역 후 바로 모 시민단체에서 하는 프로그램을 수강했다. 군대에서 이것저것 책을 많이 읽었더니 대가리만 커졌다. 사회 운동을 할 자신도 없으면서 그런 행동으로나마 나를 정당화 시키고 싶었던 것 같다. 나의 정치관에 일부 영향을 끼쳤으나 한국 시민운동이 가지고 있는 영세함과 막연함을 느끼는 시간이기도 했다. 그 활동은 학기중까지 이어졌지만 목적이 모호해서 역시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공부에도 빠이팅이 넘쳤다. 여느 복학생처럼 의욕게이지는 언제나 가득차 있었다. 교내활동 교외활동 참 많이도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아이고 부질없다. 몸만 엄청나게 바빴지 학점은 뭐 그렇게 좋지 않았다. ..
밤늦게 적어보는 나의 스물세살 이야기. 스물셋이니 상병이었겠지. 군대에서 열심히 뺑이를 쳤다. 뺑이 치는 시간 외에는 책을 읽고, 토익 공부를 했다. 이땐 정말 열심히 살았다. 저녁 청소전에 항상 걸레를 빨아놨어야 했는데 걸레를 빨아놓고는 한 시간씩 운동도 했다. 운동을 마치고 씻고 돌아와서는 책을 읽고, 일기를 쓰고, 토익 공부를 했다. 구석탱이 자리가 자리가 참 편했다. 토익 점수가 많이 올랐다. 휴가나가서 처음 본 토익이 680점이는데 6개월 정도 지나고 다시 시험을 쳤더니 860점이 나왔다. 박정희가 괜히 '하면 된다'라고 한게 아니구나라는 것을 깨달았다. 휴가를 많이 나왔다. 별별 명목으로 포상휴가를 참 많이도 땄다. 축구, 줄넘기, 대적관 스피치 등등 맞선임은 한 장도 없는 휴가증을 난 쌓아놓..
스물두살. 1월 15일, 나는 논산훈련소로 입대했다. 입대 전날엔 새벽까지 수취인 불명을 봤다. 왜 그 영화를 봤는지는 모르겠다. 훈련소 앞은 북적북적 했다. 이런저런 행사도 있고. 짧게 깎은 머리는 영 바보같았다. 연병장으로 내려오라길래 내려갔는데 난 그게 부모님과 헤어지는 순간인줄 몰랐다. 그렇게 얼레벌레 경례를 하고, 노래를 부르는 의식(?)을 치르고 생활관으로 들어갔다. 연병장 모퉁이를 돌자마자 고막을 휘감는 씨발 소리. 분명이 현실이 맞는데 현실아닌 현실같은 현실이랄까. 전투복 야상에 목이 쓸리고, 아무것도 없는 주머니 속에서 핸드폰 진동을 느끼며 만지작 거리고, 딱딱한 전투화에서 발은 헛놀고. 그 와중에 이곳저곳에서 보이는 초중고 동창놈들ㅋㅋㅋ, 혼자가 아니라 다행이다 싶었다. 우린 모두 꿈을..
스물 한살. 새로운 생활에 제법 적응해 갔으나 모든 것에서 맴돌거나 겉돌았다. 편입을 해야될까. 무슨 시험 준비를 해야 될까. 군대는 또 어떻게 해야될까. 여자친구는 어떻게 사귀는거지. 난 커서 뭘해야야 되나. 등등등. 여전히 기숙사에 살고 있었다. 자세히 기억나진 않는데 나, 2명의 후배, 중국인 한 명, 이렇게 살았던 것 같다. 그나마 그 중국인은 한국어를 좀 했고, 똑똑한 친구여서 말이 좀 통했으나 2학기 때 같이 살았던 어학연수생들은 말도 통하지 않았고, 예의도 없었다. 좀처럼 잘 씻지를 않았는데, 운동을 하고 들어와 땀벅범에 쉰내를 풍겨도 씻지 않았던 그들은 여전히 미스테리다. 밤새 공부를 하고, 시험을 치고 돌아와 낮잠을 자고 있는데, 대여섯명이 무슨 동영상을 보며 시끄럽게 떠들고. 하아. 그..
스무살. 서울에 올라왔던 것은 2월 말, 3월 1일? 쯤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몇 가지 되지 않는 세간을 아버지 차에 싣고 기숙사에 도착했다. 스무살의 건장한 성인 넷이 살기엔 좁은 곳이었다. 짐을 풀고는 지금은 없어진 청수갈비에 가서 밥을 먹었다. 아침부터 정신도 없었고, 아직 겨울의 기운이 완연하게 남아있던 때라 몸도 마음도 서늘했던 터라 그 좋아하는 고기가 제대로 넘어가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19년 동안 전라도에 살다 처음 먹어본 서울음식이 뜨악스러울 만큼 맛이 없었던 것도 한몫했다. 그렇게 시작된 서울살이는 일년 내내 낯설었다. 친구를 모두 새로 사귀어야 했고,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먹어보지 않았던 술을 탄산음료보다 자주 먹게됐다. 생전처음 술을 먹고 토를 하기도 하고, 누군가에게 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