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화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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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로운 공간/나의 20대

스무살.

영원한 화자 2014. 12. 28. 21:54

스무살.


서울에 올라왔던 것은 2월 말, 3월 1일? 쯤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몇 가지 되지 않는 세간을 아버지 차에 싣고 기숙사에 도착했다. 스무살의 건장한 성인 넷이 살기엔 좁은 곳이었다. 짐을 풀고는 지금은 없어진 청수갈비에 가서 밥을 먹었다. 아침부터 정신도 없었고, 아직 겨울의 기운이 완연하게 남아있던 때라 몸도 마음도 서늘했던 터라 그 좋아하는 고기가 제대로 넘어가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19년 동안 전라도에 살다 처음 먹어본 서울음식이 뜨악스러울 만큼 맛이 없었던 것도 한몫했다. 


그렇게 시작된 서울살이는 일년 내내 낯설었다. 친구를 모두 새로 사귀어야 했고,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먹어보지 않았던 술을 탄산음료보다 자주 먹게됐다. 생전처음 술을 먹고 토를 하기도 하고, 누군가에게 업혀 들어와 다음 날 깨질 것 같은 머리를 부여잡고 일어나는게 일상이었다. 사회생활의 윤활유라는 술이 들어가도 나는 새로운 사회 속으로 쉽사리 섞여 들어가지 못했다. 오고 싶은 학교도 아니었고, 내가 상상하던 생활도 아니었다. 수능 뒤의 아쉬움이 내내 맴돌았고 맘을 정하지 못한 나는 그 아쉬움처럼 학교와 기숙사 주변만을 맴돌았다. 


그때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사귄 여자친구와 헤어졌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는 속담을 나는 거스를 수 있을 줄 알았다. 헤어지지 않을 거라며 호언장담했었지만 옛말에 틀린 말 없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했다. 학교, 전공, 이성친구 등 모든 것에서 안정적이지 못했다. 그래서 대학 1학기 때는 거의 술을 먹고, 잠을 잔 기억밖에 나지 않는다. 때때로 술을 먹으며 울기도 했다. 힘들어서 울고, 헤어져서 울고. 언젠가는 누군가가 날 좋아했었는데 나는 그 친구를 좋아하질 않아 미안해서 울기도 했다. 울지마. 울긴 왜 울어, 라는 유행가도 있었지만 속담이 아니라 나는 그냥 울었다.


유일하게 신이 났던 것은 교양수업이었다. 매스컴과 사회?라는 수업이었던 것 같은데, 원래 나는 신방과를 가고 싶어했기 때문이었는지 몰라도 너무 재미있게 수업을 들었다. 교수님이 설명해주시는 이론과 사례들은 어찌 그리 신박한지. 머릿속 어두운 부분에 써치라이트를 비춰주는 느낌이었다. 시험기간엔 도서관으로 달려가 들기도 무거운 언론학 전공서적을 대여섯권씩 쌓아놓고 정리하면서, '이게 대학 공부구나!' 감탄하고, 진짜 성인이 된 것 마냥 뿌듯해했다. 그때 소쉬르를 알게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