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화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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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로운 공간/나의 20대

스물세살

영원한 화자 2016. 1. 9. 02:26


밤늦게 적어보는 나의 스물세살 이야기.


스물셋이니 상병이었겠지. 군대에서 열심히 뺑이를 쳤다. 뺑이 치는 시간 외에는 책을 읽고, 토익 공부를 했다. 이땐 정말 열심히 살았다. 저녁 청소전에 항상 걸레를 빨아놨어야 했는데 걸레를 빨아놓고는 한 시간씩 운동도 했다. 운동을 마치고 씻고 돌아와서는 책을 읽고, 일기를 쓰고, 토익 공부를 했다. 구석탱이 자리가 자리가 참 편했다. 


토익 점수가 많이 올랐다. 휴가나가서 처음 본 토익이 680점이는데 6개월 정도 지나고 다시 시험을 쳤더니 860점이 나왔다. 박정희가 괜히 '하면 된다'라고 한게 아니구나라는 것을 깨달았다. 휴가를 많이 나왔다. 별별 명목으로 포상휴가를 참 많이도 땄다. 축구, 줄넘기, 대적관 스피치 등등 맞선임은 한 장도 없는 휴가증을 난 쌓아놓고 있었다. 그래서 병장이 되고나서는 매달 휴가를 나갔다. 한번은 휴가를 나갔다 복귀해서 다음날 파견을 나갔다가 거기서 또 휴가를 받아서 나간적도 있었다. 나는 맞선임-그래봐야 3주 차이에 자대는 내가 먼저 왔다-과 사이가 사이가 엄청 안 좋았는데 매달 휴가를 나갈 때마다 '아우 가기 싫어 또 나가야되네'라며 약을 올렸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밉상짓이었는데 그게 또 휴가나가는 맛이었다.


나는 군대에 있으면서 지금 여자친구에게 매주 편지를 보냈다. 왜냐하면 좋아했으니까. 그땐 당연히 여자친구가 아니었고 그냥 같은 과 후배였다. 한국에 있을땐 맨날 핸드폰으로 전화도 했다. 후배가 중국으로 교환학생을 가고나서도 편지를 보냈다. 그냥 막 보냈다. 그래서 항상 내 관물대엔 여분의 편지지와 우표가 항상있었다. 허구헌날 써서 별 내용도 없었던 것 같은데 참 많이도 썼다. 휴가복귀하며 동서울터미널에서 국제전화카드를 사다가 자주 중국으로 전화를 했다. 군인 정신으로 그렇게 열심히 성실하게 임전무퇴의 각오로 떡밥을 뿌렸다. 지금 생각해보면 대단한 순정(!)이었다. 나의 전략은 성공적이었다. 나중에 들었는데, 갑자기 전화가 안와서 무슨 일이 생긴건 아닌지 불안했단다. 그때는 훈련이었을게다. 군복무와 함께한 전화/편지하기를 통해 나는 떡두꺼비(!)같은 여자친구를 얻었다. 나 엄청 로맨틱한듯. 


화천은 그야말로 첩첩산중이다. 내 인생에서 비염으로 고생하지 않은 해가 몇 번 있는데 한번은 캐나다에 있을 때고, 또 한번은 군대에 있을 때다. 민간인 통제구역 안인데 공기가 맑을 수 밖에. 태어나서 반딧불이를 처음봤다. 뒷산에는 멧돼지 떼와 고라니가 살고 있었다. 훈련중에 더덕과 도라지를 캐기도 했다. 내가 캔 도라지를 후임놈이 다 먹을라고 해서 나도 모르게 머리통을 때린 기억이 난다. 때려놓고 그 상황이 너무 웃겨서 같이 엄청 웃었다. 가끔 뒷산에 올라가서 더덕도 캐오고, 살모사를 잡아와 후임들에게 겁을 주던 미친놈도 있었다. 맨날 무릎아프다고 입실하던 놈이 더덕과 두릅을 캘땐 허영호 대장 뺨치게 산을 탔다. 군대는 이해할 수 없는 곳이다. 


같은 분대 선임중에는 조폭출신이 있었다. 온몸에 문신이 있었고 당시 29살이었으니까 그야말로 공포의 대상이었다. 인간이 얼마나 포악하고 교활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람이었다. 나는 그나마 이쁨을 받아 욕을 덜 먹었지만 가끔 도매급으로 욕을 먹는 날에는 무서워서 '오줌을 지린다'는 표현이 왜 있는지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언어 폭력을 느꼈다. 폭정은 오래가지 못했다. 누군가 '마음의 소리'에 긁었고, 결국 그는 본부 포대로 전출을 갔다. 근데 포대를 옮기고 나서도 악독하게 우리 분대원들을 이간질하기도 했다. 정말 대단한 사람이었다. 그 사람이 전출 간 이후 우리 분대에는 평화가 찾아왔다. 폭력, 폭언, 욕설은 당연히 없었고 항상 화기애애 했다. 일병때까지는 진짜 총이라도 한 방 땡기고 싶을 정도로 힘들었는데, 상병때부터는 모든게 편했다. 지금 주식투자를 가르쳐주고 있는 형은 바로 군대 선임이었던 사람이다. 그때부터 음악이나 독서, 축구에 코드가 맞아서 가깝게 지냈다. 우리 분대는 축구를 진짜 잘했다. 대대에 분대리그라고 해서 1년 동안 전반기 후반기로 리그가 개최 됐는데 우린 항상 포대 1위였기 때문에 매년 대대 결승전에도 나갔다. 이등병땐 시원하게 자살골을 넣었던 적도 있다. 하여튼 우리는 연대에까지 소문이 날 정도로 발이 잘 맞았다. 써놓고보니 군대에서 축구한 이야기.


그래도 국방부 시계는 흐른다더니 나는 크리스마스 다음날인 12월 26일에 전역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