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화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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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로운 공간/나의 20대

스물한살.

영원한 화자 2014. 12. 28. 22:17

스물 한살.


새로운 생활에 제법 적응해 갔으나 모든 것에서 맴돌거나 겉돌았다. 편입을 해야될까. 무슨 시험 준비를 해야 될까. 군대는 또 어떻게 해야될까. 여자친구는 어떻게 사귀는거지. 난 커서 뭘해야야 되나. 등등등.


여전히 기숙사에 살고 있었다. 자세히 기억나진 않는데 나, 2명의 후배, 중국인 한 명, 이렇게 살았던 것 같다. 그나마 그 중국인은 한국어를 좀 했고, 똑똑한 친구여서 말이 좀 통했으나 2학기 때 같이 살았던 어학연수생들은 말도 통하지 않았고, 예의도 없었다. 좀처럼 잘 씻지를 않았는데, 운동을 하고 들어와 땀벅범에 쉰내를 풍겨도 씻지 않았던 그들은 여전히 미스테리다. 밤새 공부를 하고, 시험을 치고 돌아와 낮잠을 자고 있는데, 대여섯명이 무슨 동영상을 보며 시끄럽게 떠들고. 하아. 그 중국인들 덕분에 중국인이라면 치를 떨게됐고, 덕분에 중국 교환학생도 가지 않게 되었다. 중국을 가지 않는 이유가 그거 하나 때문인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중국을 싫어하게 만든 장본인은 그 두 사람 덕분이다. 


두번째 여자친구를 만났다. 교제라고하기엔 무척 단기간이어서 말하기도 좀 그렇다. 과 후배였는데 어찌어찌 하다보니 그렇게 됐다. 역시 그렇게 시작한 관계는 바람직하지 않았는지 금방 끝이났다. 중국어 스터디를 하던 친구와 '썸'을 타기도 했다. 자주 만나다보니 정이 들었던 걸까. 어쩌다 학교 밖에서 만난 적이 있는데, 그 친구가 평소와는 달리 샤랄라한 원피스를 입고 왔었다. 좋아하던 감정이 살짝 있으려고 했으나 그 친구가 국토대장정을 가는 바람에 한 두달간 연락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뭐 자연스럽게 멀어진 것 같다. 친구들을 통해 그 친구가 나를 좋아했다는 것을 들은 후에야 그날 입었던 원피스의 의미를 알았다. 2학기 때는 소개팅도 두 번이나 했다. 누가해줬는지도, 상대방이 누구였는지도 기억이 안 난다. 두 번째 했던 소개팅은 너무 재미가 없어 밥만 먹고 헤어졌던 것 같다. 9시도 채 안 된 시간에 학교로 돌아왔는데 버스에서 내리며 '이게 도대체 뭐하는 짓인가'라는 생각을 했다. 얼마나 허무하던지.


언론학을 복수전공하겠다며, 그 쪽 수업을 듣기 시작했다. 광고학 수업은 재밌었으나, 저널리즘 이론 수업은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교재는 심지어 원서였는데, 다른 학생들은 이걸 뜻이나 알고보는지 궁금했다. 결국에 내 성적표에 오점같은 C를 남겼고, 나를 그 전공에서 멀어지게하는 계기가 되었다.


카투사에서 떨어졌다. 인터넷 추첨이 있던 날 서버가 다운됐는데, 난 아직도 그 부분이 석연치 않다. 빽이 있던 동창놈은 철썩 합격해, 용산에 배치된 걸 보고 너무 얄밉고 부러웠다. 2개월이 길지만 널널하단 말에 공군에 가려고 했으나 마감 한 시간 전에 공군입대 지원서를 쓰다가 날려먹어 접수를 하지 못한 어이없는 일이 발생. 어쩔 수 없이 육군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방학을 하고 집에 내려와 입대일을 지정하는데, 집에서도 가깝고, 친척 형이 대위로 복무하고 있던 35사단은 1월에도, 2월에도, 3월에도 보이지 않았다. 칼복학은 해야했기 때문에 결국 1월을 택했고, 306은 경기도 전방, 102보는 강원도 전방으로 빠지니까 당연히 논산훈련소를 택했다. 내 입대일은 1월 15일. 정신을 차리고 보니 입대일이 2주가 채 남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