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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사사로운 공간 (321)
영원한 화자
나는 머리숱이 많다. 많아도 너무 많다. 나보다 많은 사람을 보지 못했다. 미용실에가서 머리 숱을 치고 쳐도 많았다. 또 얼마나 억센지 남들은 하면 세달씩 가는 파마가 난 한 달이 유통기한이었다. 왁스를 발라 세팅하지 않으면 빗자루 같이 부스스했다. 아버지도 머리 숱이 많았다. 우리 집안에 흰머리는 많아도 대머리는 없으니까 걱정 말라고 하셨다. 아버지의 말대로 난 대머리 혹은 탈모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사람이라 생각했다. 작년 서재페에 갔다가 모발전문 성형외과 이벤트 부스에서 두피 검사를 했는데 그야말로 나의 모낭들은 풍작이 든 논처럼 빽빽했다. 검사해주는 분도 탈모 걱정은 전혀 하지 말라고 말했다. "봤지?" 여자친구에게 으스댔다.인간은 얼마나 어리석은가. 뭐든지 닥쳐야 대비를 하고, 공감한다고 공감한..
일요일 밤은 잠이 오질 않는다. 금토일 늦게자고 늦게 일어난 탓이겠지. 서너시간 자고 일어나서 떠지지도 않는 눈을 간신히 버텨내고 출근을 한다. 회의 때문에 30분 일찍 출근하는 날. 회의 자료를 준비하고, 회의중 몰래 MTS를 켜서 주식 시장을 체크하고. 시키는 걸 하고, 수십통의 메일을 보내고, 업무 시간 몰래 어떤 차를 살지 알아 보고, 집 근처 식당에서 밥을 먹고, 가끔은 맥주 한 캔을 마시고, 오락 프로 한 편 정도를 보고 나면 벌써 금요일이다. 아이고 또 월요일이네 싶었는데, 와 이제 하루만 버티면 쉰다, 라는 생각이 드는 금요일이다. 그러고보니 서른둘이다.점심을 먹다가 내가 스물둘도 아니고 서른둘이란 걸 깨달았다. 체할뻔. 서른둘이라니. 거울을 보니 어떻게 해도 없어지지 않는 주름이 있고, ..
오늘은 8시까지 출근하는 날이었기 때문에 5시에 퇴근이지만 우린 적자 부서, 차장님 말로 '적자의 전사'들이었기 때문에 언제나 칼퇴에서 예외다. 할일을 다 마친 나는 바탕화면에 대고 공허한 클릭질을 하고, 오지도 않는 메일함을 계속 클릭했다. 퇴근을 한 건 6시 20분. 그래 나쁘지 않다. 아니 나빴다. 지하철이 미어터지는 시간. 박원순을, 서울시 교통과 직원들을 매일 태워주고 싶은 9호선. 차례로 선 줄을 무시하고 들어오는 아저씨를 어깨로 막아서고, 만원 지하철에서 복면가왕을 보며 내게 기대오는 아저씨를 버텨내고 도착한 염창역. 이게 사는건가. 근처 시장에 있는 식당에서 뼈해장국으로 저녁을 때웠다. 종량제 봉투를 사러 간 마트를 갔는데 종량제 봉투는 없고, 내가 사들고 온 것이라곤 온통 과자, 아이스크..
다래끼가 나기 시작한 것은 입사후 1~2주나 흘렀을까. 병원에 다녀와서 그냥 약을 먹었다. 낫겠거니 했다. 그러고 나서 또 2주 정도 흘렀을까, 반대쪽 눈에 다래끼가 낫고 이번엔 좀 심하다 싶어 병원에 가서 째버렸다. 그러고 나서 또 반대쪽 눈으로 옮겨간 다래끼. 땡땡 부은 눈을 짜냈더니 염증이 주르륵. 얼마 후에 또 다래끼가 나서 병원에가서 또 째고. 11월은 좀 그냥 지나가더니만 아이고 해가 바뀌는게 아쉬웠던지 맨처음 났던 다래끼 자리가 완전히 없어지지 않고 뭔가 몽글몽글하게 남아있더니 그게 또 12월 내 술을 좀 마셔댔더니 기어코 땡땡부었다. 오늘도 병원행. 오랫동안 놔둔 탓인지 염증이 굳어버려 긁어냈다. 세번째 애꾸눈이 되어 나타난 나에게 차장님은 웃으면서 이 정도면 근본적으로 문제가 있는게 아니..
똑똑한 배당주 투자(알라딘놈들이 파본을 보내 교환을 할 에정이지만)세상물정의 사회확대설주의보빅 퀘스쳔방금 눈을 들어 쳐다본 책상에 안 읽고 쌓아둔 책만 10권이지만 이렇게 좀 흥미가 당기는 책이라도 사둬야 읽을 것 같아 또 쟁여둔다.올 여름에 산 사피엔스는 아직도 절반을 못 읽었고(사실 정말 재밌게 읽고 있는데...^^;;)지난달 독서통신으로 신청한 구글이 미래는 후반부에서 진도가 나가질 않고 있으며,한 달에 3권씩 볼 수 있는 전자책은 지난 달치 3권이 이월돼 있다.그치만 사는 것으로라도 알량한 지적 갈증과 허영을 채워야 겠다.뇌 속에 써치라이트를 팍팍 쏴주는 책을 읽고 싶다.
요즘 자꾸 사람이름, 지명, 영화의 제목, 한글 단어, 영어 단어 등등 잘 생각 안 나는 것들이 많다. 아득바득 떠올려 내려고 해도 결국엔 포기하고 만다. 한번은 대리님이랑 얘기하다가 시야라는 단어가 생각이 안 나서 안구, 시선 뭐 온갖 단어를 다 끄집어내다 결국 내가 말하려던 단어가 시야라는 걸 알고 서로 허탈해 한 적도 있다. 한글 단어도 사정이 이런데 영어 단어는 오죽할까. 전화영어 선생님 크리스틴에게 내가 가장 많이 말하는 문장은 "적당한 단어가 생각이 안 나"이다. 이거 뭐 알츠하이머, 병적인 건망증인건가 싶다. 어렸을 때부터 건망증이 심하긴 했는데. 노화라고 해도 무섭고, 병이라고하면 더 무서울 것 같다. '이게 모두 스마트폰 때문이다'라는 생각을 했다. 원래 스마트폰 만지는 걸 별로 안 좋아..
나는 내가 아니다. 나는 내가 만나는 사람들이고 내가 읽는 책이다. 내가 온전히 독자적으로 만들어질 수는 없다. 내가 가지고 태어난 것과 내가 접하는 것들이 만나고 섞여 내가 된다. 결국 내가 오래 접하는 것들이 나의 많은 부분을 이룬다. 나도 모르게 재채기 소리는 아버지의 것을 닮고, 식탁 앞에서 같은 반찬에 젓가락을 더 많이 들이민다. 서점에선 결국 내가 계속 읽어오던 분야와 작가들에게 손이간다. 어쩔 수 없다. 그게 사람이다. 나와 자주 만나는-혹은 함께 살 수도 있는- 어떤 사람의 행동이 싫다면서 나는 절대 그 사람처럼 되지 않겠다고 공언하지만 정신차려 보면 내가 경멸하던 그 사람의 행동을 그대로 따라하는 때가 있다. 보고 배운게 그거니까. 폭력과 욕설로 억압하던 고참을 죽일듯이 미워하던 누군가는..
전화영어를 하고 있다. 매주 화, 목, 밤 10시. 올랜도에 사는 크리스틴과 20분간 비즈니스 교재를 가지고 공부한다. 나는 꽤 불성실한-비자발적으로- 학생으로 엊그제도 늦게 퇴근하는 바람에 길거리에서 전화를 받았다. 책이 없으므로 후리토킹을 하는데 내가 좋아하는 힙합음악에 대해서 얘기했지. 나는 요즘 제이콜과 조이 밷애스를 좋아해. 너는 힙합 좋아하니. 어렸을땐 좋아했는데 지금은 별로 안 들어. (줄여서 말하면) 후지거든. 그러더니 옛날엔 자기가 래퍼로서 하고싶은 말, 메시지를 던져주는게 뢥이었는데 요즘은 죄다 돈에 대해서만 말한다고. 그냥 중얼거림(mumbling)같다고 말했다. 허허. 통찰이 있어.하나 곤란한 점은 오늘 니 하루는 어땠니? 라고 매번 묻는다는 것. 대한민국의 회사원의 하루가 알고 싶..
3월에 전업을 시작했고 4월에 회사 다닐 때보다 많은 수익이 났다.와. 이게 되는구나 싶었다.수익을 정리하며 올해 목표를 거창하게 계좌 더블 만들기로 잡았다.정말 거창한 목표였다.목표라기 보다는 꿈이었다.올해 안에는 더블을 만들어야 그 돈으로 다시 불려서 내년에 결혼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중간에 느닷없이 취업하는 바람에 잠깐 투자 흐름이 끊겼으나.........그런데 오늘 계좌 수익을 찍어보니 실현수익 기준으로 목표 달성!운용하는 두 계좌 합산 목표 수익률 50% 였는데, 현재 대신계좌 44%, 키움계좌 84% 달성.아직 올해는 세 달이 더 남았는데!!미국 금리인상 우려 여파로 대신 계좌 누적 수익률 50% 돌파 직전에 꺾였으나 우상향 추세는 꺾이지 않았다.일단 일본 금리동결. 미국도 동결예상 하며 ..
일요일 밤엔 셔츠를 다린다. 일부러 그런건 아닌데 항상 잠자리에 들기 2~3시간 전이다. 4개쯤 다리면 한시간이 훌쩍간다. 아 오늘은 그냥 정말 대충대충 다리자 마음을 먹고 다리는데도 시간이 꽤 걸리는 작업이다. 막 취업을 했을 때 가끔은 다리지 않은 셔츠를 입고 가기도 했다. 그런데 꼭 그런 날은 뭔가 움츠러 들었다. 거울을 보면 꼬깃꼬깃한 셔츠가 아웃포커싱 한 것 마냥 눈에 들어왔다. 그래서 어지간 하면 셔츠는 꼭 세탁소에 맡기거나 손수 다린다.물론 입는 셔츠의 절반은 세탁소에 맡긴다. 990원이면 세탁에 다림질까지 해주니 참 좋다. 근데 멍충이들이 카라에 심지가 없거나 카라 스테이가 들어가 있지 않은 셔츠들은 2배(무려!!)의 가격을 요구한다. 드레스 셔츠라고 꼭 다 카라 빳빳한게 아닌데. 부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