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
---|---|---|---|---|---|---|
1 | 2 | 3 | 4 | 5 |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 김연수
- 박해천
- 우유니
- 파나소닉 25.7
- 나의 한국 현대사
- 터치 4세대
- 끼또
- g20
- 금진해변
- 전아리
- too big to fail
- 워킹홀리데이
- 캐나다 워킹홀리데이
- 남미여행
- The Roots
- 토론토
- 계속해보겠습니다
- 알로하서프
- 아직 최선을 다하지 않았을 뿐
- 아수라장의 모더니티
- 아파트
- 버블경제
- 리디북스 페이퍼
- 20대
- 왜 주식인가
- 콘크리트 유토피아
- ipod touch 4th
- 에콰도르
- G20 시위
- Toronto
- Today
- Total
영원한 화자
Time flies. 본문
일요일 밤은 잠이 오질 않는다. 금토일 늦게자고 늦게 일어난 탓이겠지. 서너시간 자고 일어나서 떠지지도 않는 눈을 간신히 버텨내고 출근을 한다. 회의 때문에 30분 일찍 출근하는 날. 회의 자료를 준비하고, 회의중 몰래 MTS를 켜서 주식 시장을 체크하고. 시키는 걸 하고, 수십통의 메일을 보내고, 업무 시간 몰래 어떤 차를 살지 알아 보고, 집 근처 식당에서 밥을 먹고, 가끔은 맥주 한 캔을 마시고, 오락 프로 한 편 정도를 보고 나면 벌써 금요일이다. 아이고 또 월요일이네 싶었는데, 와 이제 하루만 버티면 쉰다, 라는 생각이 드는 금요일이다. 그러고보니 서른둘이다.
점심을 먹다가 내가 스물둘도 아니고 서른둘이란 걸 깨달았다. 체할뻔. 서른둘이라니. 거울을 보니 어떻게 해도 없어지지 않는 주름이 있고, 이제 굳이 찾지 않아도 보이는 새치가 내가 서른둘이 맞다는 것을 증명해준다. 아저씨, 서른두살 먹은 아저씨, 그게 아저씨 나이에요. 그래서 사실은 지하철에서 아이돌 노래 듣기가 민망하다. 근데 또 내가 가장 많이 들은 장르를 보니 힙합이 80%, 인디가 20%다. 근데 또 아 제가 힙합음악을 좋아합니다, 라고 말하는 것은 쑥스러운 나이아닌가. 내가 너무 고지식한가. 여튼 요모조모를 따져야되는 나이인 것이다.
1월 1일, 오랜만에 여자친구가 주말에 쉬는 날이었다. 차를 렌트해서 어딜갈까 고민하다가 송도나 한번 가보자고 해서 다녀왔다. 살것도 없는데 아울렛에 들러서 밥을 먹고 구경 좀 하다가 커피가 먹고 싶어졌다. 사이렌 오더로 근처 스타벅스에 커피와 케익을 시켰다. 커피를 들고 바다 근처에 차를 대고서 음악을 들으며 커피를 마셨다. 여자친구가 말했다. "우리가 돈을 벌긴 버나보다. 그냥 커피 마시는 것도 스타벅스를 찾아가서 먹고." 나는 가끔 이럴 때 내가 성인이 됐구나를 느낀다.
작년은 생각해보면 모든 것을 이룬 해였다. 일단 이직을 했다. 증권사 최종면접에서 떨어졌지만 원래 하고, 계속 하고 싶었던 해외영업을 더 큰 회사에서 하게됐고, 연봉 앞자리를 바꾸자던 목표도 이뤘다. 그것 뿐인가. 3월부터 전업투자를 시작하며 말도 안돼는 목표 금액을 설정했는데 그것도 초과 달성했다. 하고 싶은 것은 다 했다. 증권사 취업에 도전해서 미끄러져도 보고, 그렇게 좋아하는 주식도 정말 원없이 했다. 부모님과 결혼을 위해서 필요했던 번듯한 직장도 다시 얻었다. 요행으로 얻은게 아니라 내가 노력해서 얻은 결과라 더 기쁘다.
놓친 것은 없을까. 뒤돌아 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대학시절 나는 매우 정치적인 인간이었다. 그래서 교환학생도 가지 않고 정치외교학을 공부했다. 경제? 좆까. 문제는 정치다, 라는 생각이었다. 정치를 바꿔야 경제가 바뀌는 것이라 맹신했다. 정치학 고전과 텍스트를 읽으면서 즐거웠고 기뻤다. 내가 모르던 새로운 세계를 마주하던 기쁨은 경제적으로 평가할 수 없는 그런 것이었다. 나는 대학원에 가서 정치학을 전공하고 싶다고 말하던 때였다. 실제로 대학원 면접을 보러다니기도 했다. 물론 3전 3패였지만. 여하튼 나는 그런 사람이었는데 이제 나의 모든 관심과 촉각은 경제를 향해있다. 당장 오늘 열리는 한국과 미국과 유럽의 주식시장. 선물 옵션시장. 국제유가와 환율말이다. 중국에서 발표된 PMI에 반응하고, 트럼프의 오바마케어 폐지 발언을 경제적으로 재단하고 있다. 당장 올해 구해야 할 전세집이 문제이고, 2월 안에는 사고 싶은 내 차가 문제인 사람이다.
마흔이 되고도 마르크스주의자라면 정신을 못차린 사람이라고 했던가. 그런 의미에서 나는 좀 더 빨리 정신을 차린 것인가. 친한 형에게 새해 인사를 전했더니 돌아오는 말이 요즘 뜸하네, 시위에도 안 보이고. 아, 그렇지. 나는 일병정기 휴가 때 촛불집회를 나간 사람이었지. 그런 내가 철이 든건가. 광화문에 나가지 않았다는 사실이 부채가 되어 언제나 뉴스를 보면 가슴 한 구석이 뻑적지근 한 것은 내가 아직 조금은 정치적인 인간이기 때문인가.
시간은 빠르다. 10년 전, 빡빡머릴 하고 전경에게 잡힌 시위대를 끄집어 내던 그 빡빡 머리가 오늘의 주식 시장에서 기관 순매수 종목을 훑어보는 이 간극이라니. 내가 겪어낸 시간의 진폭이 남들보다 넓은 것인지 혹은 남들도 다 이렇게 변하는 것인지 궁금할 따름이다.
시간은 빠르다.
그러니까 온전히 나의 시간에 최선을 다해 즐기고, 사랑하며 살아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