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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사사로운 공간 (321)
영원한 화자
출근을 하면 노트북만 켠 채로 간단히 아침으로 먹을거리와 커피 한 잔, 그리고 읽을 책을 가지고 조그만 회의실로 들어간다. 여긴 전화통화 혹은 혼자 집중해서 업무를 할 수 있는 공간인데 몇 주 전부터 나는 업무시작 전까지 이곳에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오늘은 커피와 초콜릿을 들고 들어와 하루키의 를 읽는다. 어느덧 몇 페이지 남지 않았다. 그가 트라이애슬론을 준비하고, 대회에 참가했던 이야기를 읽으며 이런저런 생각에 잠긴다. 맘에드는 문장은 다시 곱씹어 읽는다.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지금 이 시간은 생업을 위해 연료를 넣는 순간이라는 생각을 했다.자신의 직업을 좋아하고 즐기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직업이라기보다 생업으로서, 삶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 더 많을 것이다. 물론 나도 그렇다. 뭐 가끔 보람을 ..
이상하리만치 힘이 없는 하루였다. 볼일을 본뒤 오랜만에 종로쪽에서 데이트를 하려고 했었는데 둘다 너무 피곤해서 얼른 집에 돌아가 낮잠을 자기로 했다. 일어나기로 한 시간은 4시인데 나는 4시 20분쯤 일어나 책을 읽었다. 아직 자는 와이프를 억지로 깨워 빵을 나눠먹고 티비를 봤다. 뭘 먹을까. 저녁 메뉴는 매일 6시 우리의 최대의 과제다. 오늘은 투움바 파스타를 해주기로 하곤 같이 시장에 다녀왔다. 저녁을 먹으며 영화를 봤다. 맥주를 마신 나는 와이프에 기대 잠들었고 어느새 영화는 끝났다. 왜? 어떻게 된거야? 왜 제일 중요할 때 잠들었어! 쫑알쫑알 스토리를 알려주는 아내의 입이 귀엽다. 어느새 10월도 3분의 2가 갔다. 2018년은 이제 두 달 밖에 남지 않았다.
임원은 단둘이 점심을 먹자고 하더니 내 신상의 이런저런 것들을 물어보기 시작했다. 명확한 목적이 있는 점심식사 였고, 이 사람이 나에게 알고 싶은 것들이 분명한데 식사가 끝날 무렵까지 사소한 질문과 이야기만 나눴다. 사무실에 들어가면 커피 한잔 하자고 했고, 커피를 두고 테이블 앞에 마주 앉았다.최근에 나와 관련해 벌어진 이야기를 꺼내더니, 내 이야기를 직접 듣고 싶었단다. 그러면서 자신이 팀장에게 들은 얘기들을 하나씩 꺼내기 시작했다. 대부분이 나에게 불리하게, 좋지 않게 와전된 것들이었다. 어쩌면 내가 한말 모두를 하나씩 하나씩 다 안 좋은쪽으로만 말했을까 싶을정도로. 사실 좀 무서웠다. 임원이 어쨌든 나에 대한 안 좋은 소리를 듣고 나를 불러 하나 하나 따져 묻는 자리가 아닌가. 그래도 정확한 나의..
12시가 되기 전 쓰고 싶었으나 운동하고 돌아와 아내와 티비를 보며 맥주를 마시느라 늦었다. 아내가 아프다. 지난 주말 감기 기운이 있다고 하더니 심한 목감기에 걸렸다. 기침이 너무 심해 나도 아내가 신경 쓰이고 아내도 내가 못잘까봐 신경쓰여 각방 신세를 지고 있다. 오히려 잔병치레를 하는 건 내쪽이었는데 아내가 힘들어하는 걸 보고 있으니 마음이 좋지 않았다. 아내도 내 맘 같았겠지. 아프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며 맥주를 마셨다. 어젠 오랜만에 꿀잠을 잤다. 뭐라도 써보자, 라는 다짐을 하고 나서는 온통 글쓰기에 대한 생각 뿐이다. 그러고나니 온몸에 피가 돌고,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이다. 그중에서도 강원국 작가의 인터뷰나 팟캐스트 출연분이 많이 도움이 되었다. 평소 막연하게 내가 생각하던 부분들을 글쓰기의..
세보진 않았으나 책꽂이엔 120~30권 정도의 책이 꽂혀있지 않을까 싶다. 이마저도 결혼 전에 상당 부분 정리한 거다. 집이 작다보니 서가는 더 늘릴 수 없어 이곳 저곳 책꽂이 틈바구니에 책을 끼워놨다. 와이프는 몇 달 전부터 알라디엔 팔라고 종용하고 있다. 악착같이 버티고 있지만 이제 한계가 와서 나도 시간이 되면 열어볼 일 없는 자기계발서들은 정리하려고 한다. 그런데 오늘 또 사버렸다. 올해 초 회사에서 생일 선물로 받은 도서상품권을 이제야 썼다. 요즘 내 정신 상태가 좋지 않으니 호랑이 마누라에게느 이걸 핑계삼아야지. 오늘 산 책은 총 3권이다. 하루키의 , 신형철의 그리고 레이 달리오의 . 나름 하루키 책은 많이 봤다 생각하는데 이 책은 엊그제 처음 알게됐다. 하루키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
정신이 피폐해지니 글이 생각났다. 흠뻑빠질 수 있는 재미있는 글을 읽고 싶었고, 무작정 쓰고 싶었다. 글다운 글을 써본게 언젠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그간 글을 안 쓰려던건 아니었다. 썼다 지웠고, 저장해둔 줄 알았으나 날라간 글이 몇 있었다. 아무튼 제대로 쓴 글은 없었다. 그나마 조금씩이라도 배설하던 이곳에도 일년이 넘는 시간 동안 개점 휴업의 간판도 없이 내팽개쳤다.무엇인가를 안 하려던 것은 아니다. 머릿속엔 항상 뭘 해볼까, 뭘 해야할까를 생각했다. 머릿 속으로는 온갖 유튜브 컨텐츠와 팟캐스트를 기획했다. 머릿속으로만. 아무것도 하지 않으니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았다. 주말엔 잤고, 가끔 운동을 했다. 한 달에 한 두권 책을 읽었지만, 관성처럼 습관처럼 읽는 것이었지 뭐 특별할게 없었다. 사회 이..
결혼을 한다.어제는 우리가 같이 살 집을 계약했다.수중엔 가져본 적도 없는, 본 적도 없는 금액이 계약서에 적혀 있었다.아직 다 공사가 끝나지도 않은 아파트를 찾던 아버지의 마음이 이런 것이었을까.우리가 입주할 집에 들어가 창 밖을 내다보고 세간 살이가 들어갈 곳의 치수를 쟀다.오빠 이제 우리 어른인가?그러게 우리 이제 어른인가 보다. 얼굴엔 앳된 모습이 사라진 지 오래고, 이십대에 가슴에 품었던 뭔지 모를 뜨거운 것들도 이젠 없다.다른 것 보다 내 몸이 편했으면 하고, 내 가족이 건강했으면 좋겠고,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그런 마음이 앞선다. 바쁘고 피곤하단 핑계로 책을 읽지 않고,3세계 음악까지 찾아듣던 나의 플레이리스트는 몇몇 이슈가 되는 노래들과 쇼미더머니가 채웠다.일년 내내 빠뜨리지 않고 보던 무한..
요즘은 웨이트 트레이닝을 열심히 하고있다. 지방 근무중이라 시간적 여유가 좀 생겼기도 하고, 만성적인 요통에서 해방되고자 함이다. 더불어 어좁이에서도.. 일주일에 두 세번씩 다닌지 두달쯤 됐는데 몸에 변화가 느껴지기 시작한다. 몸 군데군데 내 몸에 이런게 있었나 싶은 근육들이 조금씩 올라오고 있다. 신기하다. 몇년 전 코트라에 들어가겠답시고 경제학 공부를 열심히 하던 시절 비슷한 느낌을 받은 적이 있다. 경제학이라곤 눈꼽만큼도 몰랐는데 매일매일 조금씩 꾸준히 하다 보니까 내가 AS-LM 곡선을 그리고, 이자율 평가설과 제이커브 효과 같은 걸 말하고 있는게 아닌가. 내겐 전혀 있지도 않았던 경제학적 감각(?)들이 생겨나더니 사건과 현상들이 경제학적으로 읽히기 시작했다. 나에게 있는지도 몰랐던 근육들이 볼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