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화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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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로운 공간/ijuswanaseing

연료

영원한 화자 2018. 11. 6. 22:45


출근을 하면 노트북만 켠 채로 간단히 아침으로 먹을거리와 커피 한 잔, 그리고 읽을 책을 가지고 조그만 회의실로 들어간다. 여긴 전화통화 혹은 혼자 집중해서 업무를 할 수 있는 공간인데 몇 주 전부터 나는 업무시작 전까지 이곳에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오늘은 커피와 초콜릿을 들고 들어와 하루키의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읽는다. 어느덧 몇 페이지 남지 않았다. 그가 트라이애슬론을 준비하고, 대회에 참가했던 이야기를 읽으며 이런저런 생각에 잠긴다. 맘에드는 문장은 다시 곱씹어 읽는다.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지금 이 시간은 생업을 위해 연료를 넣는 순간이라는 생각을 했다.

자신의 직업을 좋아하고 즐기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직업이라기보다 생업으로서, 삶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 더 많을 것이다. 물론 나도 그렇다. 뭐 가끔 보람을 느끼기도 하지만 그건 좋아하는 일을 하며 느끼는 것과는 다른 층위의 것이다. 그러므로 생업을 위해서는 나를 앞으로 밀고 나가기 위한 일종의 연료가 필요하다. 사회 초년생땐 그게 쇼핑이었다. 하루가 멀다하고 집에 택배박스가 도착했다. 덕분에 옷장엔 뜯지도 않은 옷이 있었고, 지금도 셔츠는 2주 동안 빨래를 안해도 버틸 정도로 많다. 택배기사님만이 나를 구원해줄 메시아인 것처럼 무던히도 그를 소환했다. 

요즘 나의 연료는 다시 '독서'다. 책을 읽는 순간 만큼은 나는 회사에 있지 않으니까. 회사 일을 생각하지 않아도 되니까. 다른 인물이 되기도 하고, 상황에 빠지기도 하며, 종합비타민같은 문장을 꼭꼭 주어 넘긴다.  이 회의실 밖을 나가면 마주치기 싫은 사람과 얼굴을 마주해야하고, 수십통의 메일을 쓰고, 엑셀의 행과 열속을 뛰어다녀야 할테니까 씹어 넘길 수 있을 때 할 수 있는 만큼의 문장과 단어, 지식과 은유를 삼키지 않으면 안 된다.  책과 글은 나에게 전투식량과 같은 것이다.

책을 덮고 내 자리로 돌아간다. 

"안녕하십니까." 라는 말과 함께 다시 현실로, 생업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