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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화자
해외영업. 본문
신입사원들이 들어왔다. 파릇파릇...하진 않다. 요즘은 뭐 28~9에 취업하는게 대다수니까. 그렇지만 그들이 보여주는 긴장된 모습과 기민하게 반응하는 모습은 풋풋해서 좋다. 언젠가 쓰려던 글이었는데 신입사원들을 보고나니 오늘은 좀 끄적여 봐야겠다 생각이 들었다.
그건 다름 아닌 '해외영업'이란 직무에 관한 얘기다.
내 취업 스펙은 이렇다.
인서울 4년제, 중국학 전공, 3.69, 코트라 인턴, 토익 940, 토스7, 오픽IH, HSK 5급. 교내 논문공모전 수상 2회. 10여 가지의 알바 경험.
대학생땐 막연하게 '해외영업'이란 직무를 동경했다. 영어도 잘 하고, 해외 출장도 가고, 바이어들 만나서 호텔에서 미팅하고, 계약서에 도장 쾅 찍고, 멋지게 비행기 타고 돌아오는 그런 모습을 상상하며 말이다. 내 영어실력으론 택도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뭐 정말 막연히 취업하면 해외영업을 해야겠구나 싶었다. 그냥 막연함이었다.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말하자면 취업시장에 나 같은 스펙은 차고 넘친다. 영어도 그닥 잘하지 않았다. 캐나다에 다녀온 것도 어학연수가 아니라 그냥 워킹홀리데이였고, 드문드문 회화 학원을 다녔지만 오랜 시간 타이트하게 회화를 배워본 적도 없다. 지금은 일을 하며 영어를 많이 써서 유창하진 않아도 말과 글로 내 의사를 어렵지 않게 표현할 수 있지만 취업 초반엔 쓰고 말하는게 모두 어려웠다.
(그렇다고 내가 영어를 못하는 편은 아니었다는 것은 말해 두고자 한다. 어찌됐든 1년 동안 캐나다에서 살았고, 독학으로 공부도 열심히 했다. 한국으로 돌아와서 일부러 원어 수업을 들었고, 인턴하면서 학원도 몇 개월 다녔다. 인턴 때 업무중 하나는 월스트릿과 파이낸셜 타임즈를 skimming하고 주요 기사를 스크랩하는 것이었다. 미국인과 결혼한 선배누나 집에 찾아가 염치도 없이 밤늦게 까지 영어 공부도 하고 술도 얻어먹었다.)
그러다가 운 좋게(?) 중견기업에 취업이 됐다. 실무면접에서 당연히 영어면접이 있었다. 대학시절 이룬 가장 큰 성취를 말해보라고 했는데 막 말이되든 안 되든 지껄였다. 문법적으로 맞는지도 모르겠고 에라 모르겠다 막 했는데 합격했다. 나중에 나보고 영어를 잘 한다고 하더라. 쫄지마라. 여태까지 내가 만나 본 해외영업 하는 사람들 중에 원어민 수준으로 유창하게 영어를 구사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특히 면접관으로 들어올 정도의 짬밥이라면 더더욱. 물론 다 그런건 아니지만. 만약 면접관이 미국인이라면 더더욱 쫄 필요가 없다. 미국인/영국인들은 다른 나라사람들의 영어를 말하는 본인 보다 더 높게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첫 회사가 중견기업이라 사람들이 영어를 유창하게 하는 사람들이 없구나 생각했는데 대기업에 와도 똑같더라. 교포처럼 막 쏼라쏼라 못 알아듣게 영어하는 사람은 한 번도 못 봤다. 그러니 대기업 해외영업 직무인 사람들이 영어를 엄청나게 잘할거라 생각하지 말자. 해외에서 살고, 해외대 나온 사람들이 아닌 이상 그냥 다들 딱 먹고 살 정도로만 한다. (해외대 애들은 외국어만 잘하지 다른 걸 못하는 경우가 훨씬 많으니 더욱더 걱정하지 말자. 당신의 영어실력보다 엑셀 실력이 더욱 인정받는 곳이 회사다.)
회사생활을 시작했다. 솔직히 좀 쫄았다. 영어를 잘 하는 것도 아닌데. 정말 해외영업 직무를 맡았다. 첫 번째 관문은 이메일. 이또한 걱정하지 말자. 하다보면 다 는다. 나도 처음 메일 쓸때 몇 줄 안되는 걸 한 시간이 넘게 걸렸고, 그걸 또 과장님, 팀장님께 검사를 받았다. 나중에 과장님, 팀장님 메일을 봤는데 문법이고 뭐고 다 틀리더라. 그리고 업무에서 쓰는 표현은 한정 돼 있다. 메일 쓰는 시간이 비약적 짧아지는데 3개월 정도 걸린 것 같다. 물론 그 동안 비즈니스 이메일 영작책도 보고, 구글링도 엄청했다. 쓰면서 는다. 걱정하지 말자.
자 이제 회화다. 내 의사표현은 할 줄 알았지만 내 실력으로 비즈니스를 한다?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근데 이게 또 하다보니까 되더라. 일단 본격적으로 업무를 맡기 전에 전화영어를 했다. 물론 회사돈으로. 점심 시간마다 10분씩. 별도움이 안 될줄 알았지만 이것도 일단 영어를 입에 붙이는데 큰 도움이 됐다. 주말에 회화 학원에도 좀 다녔다. 인턴 때부터의 습관이지만 이동중엔 영어 팟캐스트를 자주 들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내 담당지역은 동남아와 중동이었다. 이 지역 사람들도 영어를 그닥 잘하지 못한다. 서로 간단한 그러나 핵심을 찌르는! 영어만 구사했다. 굳이 복잡한 구조와 어려운 어휘를 사용해서 말하지 않아도 된다. 쉽게 말해 물건을 사고, 팔고, 설명하고, 클레임 정도를 영어로 한다 뿐이다. 메일과 똑같다. 하다보면 하는 말이 정해져있다. 당시 팀장이 해외에서 누가 오면 통역도 하고 그랬는데, 가만 보면 다 짤라먹고 날려먹고 개판이었다. 전형적인 짬으로 하는 영어였다. 회사에서 3년동안 미국에서 연수까지 시켜줬다는게 믿겨지지 않을 정도. 그렇지만 그 사람은 미국 법인에도 있었고, 유럽 법인에도 갔다. 언어가 중요하긴 하지만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영어가 좀 부족하다고 지레 겁먹지 않았으면 좋겠다. 다만 그 직무에 다가갈 수 있을 정도의 객관적 지표(스펙)과 일정 수준의 소양을 갖추면 된다.
해외출장. 사실 영화나 티비에서 나오는 번듯한 해외출장은 중소중견 심지어는 어지간한 대기업에도 많지 않을 거다. 아이템에 따라 다르지만 나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차로 2시간 거리에 있는 공단, 에어컨도 없는 사무실에서 고객을 만난 적도 있고, 범죄영화에서나 나올법한 레바논 말도 안되는 구석탱이에 있는 공장 사무실에서 제품 홍보를 한 적도 있다. 그 아이템이 유독 그랬을 수도 있지만 뭐 요지는 해외출장이 흔히 취준생이 생각하는 그런 것이 아니라는 말. 뭐 팔아 놓고 불량나서 밤새도록 라인돌아가는 거 지켜보는 일도 있고, 반품받고 클레임 처리하러 공장으로 날아가는 경우도 수두룩하다. 그리고 일로 가다보면 힘들고 피곤해서, 시간이 없어서 호텔 밖으로 못 나오는 경우도 부지기수고, 어떤 회사는 정책적으로 관광을 금하기도 한다. 그러니 출장에 대한 환상은 버리자.
제 2외국어. 어느 정도 제 2외국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더욱 갈고 닦자. 내가 제일 후회하는게 중국어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았다는 것. 중국어가 중국에서만 먹히는게 아니다. 동남아에 가면 주요 경제권은 모두 화교가 잡고 있다. 중국어로 대화하는 것만으로도 관계를 맺는데 크게 도움이 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영어를 하지 못하는 화교들도 공략이 가능하다. 회사에서의 대접도 당연히 다르다. 둘다 비즈니스 수준으로 할 줄 알면 중국법인은 물론 미국, 유럽법인으로 갈 수 있는 확률이 더 커지는 것이다. 중국어 자료는 특히 좀 폐쇄적이라 baidu에서의 자료와 구글링한 자료의 양과 질이 다르다. 그래서 올해 내 목표는 중국어!
기본소양. 국제무역사 자격증이 있으면 금상첨화겠지만 사실 품이 좀 많이 들어가는 자격증이다. 무역관련된 적당히 쉬운 자격증 하나만 공부해보면 크게 도움이 된다. 특히 인코텀즈나 신용장(이건 아직 나도 잘 모르지만) 정도만 알아놔도 업무하는덴 아무 문제가 없다. 해외영업을 하려면 환율에 민감해야 된다. 아예 환율에 지식이 없다보면 오르는 게 이익인지, 내리는게 이익인지 감이 없는 경우가 있다. 원/달러 환율만 보는게 아니라 달러/유로, 엔/달러 환율의 흐름도 이해할 수 있다면 더 좋다.
학생때는 해외영업이 뭔가 대단한 걸 하는 직무로 생각했는데 막상 해보니까 별로 대단한게 없다. 그러니 나처럼 어리석게 우러러보며 어렵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냥 다 똑같은 회사원인데 그냥 업무할 때 영어나 외국어 좀 더 쓰는 회사원 아저씨라고 생각하면 편하다. 아이템을 잘못 잡으면 이직하기도 애매한데다 매월 실적압박을 받으니 차라리 인사팀나 재무같은 지원팀이 낫겠다 싶기도 하다.
쓸 말이 더 많지만 내일 또 출근해야 하니. 그럼 이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