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화자

산책, 세계의 끝 여자친구, 김연수, 그리고.... 본문

사사로운 공간/읽다

산책, 세계의 끝 여자친구, 김연수, 그리고....

영원한 화자 2010. 5. 25. 14:38
 


캐나다에 오면서 딱 한 권의 '한글'소설을 집어 들었다. 산지 몇 개월이 지나도록 책장에 꽂아두고, 아끼며, 읽지않은 김연수의 <세계의 끝 여자친구>였다. 왠지 이건 비행기에서 읽어야 할 것 같은, 왠지 이건 해외에서 읽어야 할 것 같은 느낌의 제목과 디자인이란 연관 이라곤 전혀 없는 이유때문이었다. 캐나다에 와서 조차 이 책은 읽히지 않았다. 영어공부 때문이었고, 한 권의 한글 소설 책이란 이유때문이었다.

 오늘은 Victoria Day였다. Queen Victoria의 생일을 기념한다나 뭐라나. 나의 생일조차 별로 기념하지 않는 이런 공휴일은 역시 무료하기 짝이없다. 더군다나 어제의 생각하고 싶지도 않은 축구경기에 발을 다쳐 멀리 나갈 수도 없었고, 쉴땐 확실히 쉬는 캐네디언의 습성(?)덕에 아예 갈 생각을 접고 있었다. 해서 오늘은 여느때처럼 잉여력을 +10 정도는 증가시켜 상급 잉여로 가는 길을 찾고있었다.

 하지만 여느 때처럼 JB형과 난 잉여생활을 하면서도 늘어나만가는 잉여력이 부담스러웠다. 주석의 코멘트 처럼 우린 "거리로 나가야 돼, 거리로"를 외쳤다. 주석도 늘어만 가는 잉여력이 부담스러웠던 건 아닐까라는 웃기지도 않은 생각은 하지도 않은채 여튼 나갈 준비를 했다. 첫번째 목표는 도착 직후 묵었던 민박집에 온 우편물을 가지러가는 것이었고 두번째 목표는 없었다. 있을리가 만무하잖아.

 내 제안으로 North York Centre 역에 있는 Lastman Square 가기로 했다. 그곳은 마치 연령대가 조금 낮아진 파고다 공원 같았다. 

여튼 땀을 좀 식히고는 난 독서에 열중했다.



김연수의 글은 언제나 생각에 잠기게 만든다. 단순히 그 글, 혹은 책의 주제에 국한된 것만이 아닌 그 책의 소재와 글귀들은 모두 묵직한 화두가 된다. 서른이 되려면 아직도 5년이 남았건만 <당신들 모두 서른살이 됐을 때는>을 읽으며 나의 서른을 생각했고 서른에 도달할때 까지 거칠 나의 스물여섯과, 스물일곱과, 스물여덟, 그리고 스물아홉을 생각하며, 그리고 어떻게든 또 살아내야하는 내일을 생각했다. 아무렇지 않게 넘겨버린 '화재'란 소재를 통해 실제 용산참사 피해자 아들의 편지를 인용하며 독자들에게 잊지 말아야 할 것을 말하는 그의 인정(人情)과 작가정신을 읽으며 그 곳에 단 한 번도 찾아가보지 않았던 내 자신을 자책했고 내가 또는 우리가 알리고 알아야하고 참여해야 했을 일들에 부러 눈을, 가슴을 돌렸던 날 떠올렸다.


공기는 딱 좋을만큼 따뜻하고 습했으며, 단편소설 두 개의 여운은 장편의 그것보다 더 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