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화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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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로운 공간/읽다

오늘의 발췌

영원한 화자 2012. 7. 21. 16:52


박해천의 <콘크리트 유토피아>를 읽고 있다.


아래의 글은 건축가 김수근이 1978년 7월 7일 조선일보에 기고한 글이지만 날짜만 가리고 본다면 여전히 유의미한 문제다. 30여 년 전 한 건축가가 걱정했던 것들이 2012년의 대한민국에도 '폭탄'이란 이름으로 오르내리니 참 갑갑한 일이다.



(...) 요즘의 아파트 소동은 한 건축가로서 무척 죄송스럽고 부끄러움을 금할 도리가 없는 일이다. 환경을 설계하고 인간이 사는 공간을 디자인하여 좋은 인간 생활계획에 이바지하겠다는 직느능을 가진 참다운 의미의 건축가는 이 사회에 부재하는 것을 입증하고 말았다는 생각을 되씹게 된다. 그동안 확인 건축기술자도 기능자로 많이 길러냈지만 더욱 중요했던 건축가들을 길러내는 것을 깜빡 잊었던 것 같다. 더 많고 층이 두꺼운 양질의 건축가들이 있어서 주거의 디자인이나 주거 정책에의 적극적인 반영을 꾀했더라면 하는 아쉬운 마음이 더욱 앞서는 것이다.

  첫째로 지금의 우리 아파트 단지계획은 인간 중심의 계획이 못되었다. 물리적 해결, 기술적 해결은 했는지 몰라도 사람의 생활기본권을 위주로 설계한 흔적은 보기 힘들다. 조금 심하게 표현하면 규격화된 일률적인 상자속에 사람을, 한가족을 마구 집어넣어서 사육하는 사육장 건설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현대 도시의 인간가축화 작업의 원흉은 바로 이 아파트군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과오를 선도한 것이 어쨋든 정부에서 만든 주택공사였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그 하나의 본보기가 한강 맨션과 같은 일련의 아파트군이다.

  둘째로 요즘 자꾸 뻥튀기처럼 부풀어 커지는 아파트의 크기이다. 건축적 측면으로 본다면 한 가구가 사는 아파트가 왜 50-60평씩이나 되어야하는지 모르겠다. 한옥만 하더라도 이만한면 고대광실이라 하여 타락되거나 권위적인 집에서나 볼수있는 크기이다. 60평이 넘는 아파트는 외국에서도 그 수가 많지 않고 소수의 백만장자나 또 중동에서 갑자기 돈을 번 벼락부자들이 원하는 크기라고나 할만한 것이다.(...)

현재 한국의 일반적인 가정의 주거면적은 33평이면 족하다는 말도 납득이 갈만한 이야기이다.(...) 우리가 시민생활을 잘 영위하려면 교통규칙을 잘 지켜야 하듯이 인간의 주거 생활에서도 일가구일주택이라는 간단한 준칙이 잘 지켜져야 할 것이다. 그것만 잘 지켜진다면, 교통의 공황 같은, 아파트 파동은 물론, 시멘트파동이나 건축자재의 파동도 한결 없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집은 사람이 그 안에서 살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다. 그것이 돈을 버는 목적으로 잘못 사용된다면 그것은 집의 불행인 동시에 멀지않아 인간의 불행을 자초하는 일이 될 것이다. 더욱 사는데 알맞는 주거 이상으로 집이 덮어놓고 광대해진다는 것은 역사적으로 보더라도 주거문화의 타락인 동시에 사회문화 전체의 타락을 향하는 시초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조선일보, 1978년 7월 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