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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화자
'선배학 입문' 단상. 본문
유형에 대한 기호는 극명하게 갈린다. 이게 랩이냐. 아니다 랩이다. 어디선 콩까루가 되게 까이고 어디선 '리릭시스트'로 추앙(?)받는다. 내 개인적인 입장을 말하자면, 한국에서 몇 안되는 스토리텔러라고 말하고싶다. 앨범의 반정도는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내가 짱임"이라고 줄일 수 있는 짭퉁 스웩들이 판치는 와중에 라임이 실종됐든 플로우가 단조롭든 어쨌든 간에 그의 가사, 아니 스토리는 빛이난다. 한국사회의 불편한 곳을 혈 짚듯 콕콕 집어대니 우리들은 웃으며 공감하기 바쁘고, 비판의 당사자들은 그와 그의 음악을 불편해하고 배척해내기 바쁘다. 어쨌든 그런 역할을 충실히 해내는 유형-한번도 본 적은 없지만 그래도-에게 무한한 리스펙을.
새앨범도 역시 문제적이다. 삼성 반도체 공장얘기며, 20대의 투표 저조, 언론 문제 등등을 신랄하게 씹는다. 나라꼴이 더 험했다면 잡혀가도 진즉에 잡혀갔을 주제들이다. 그 와중에 내가 격하게 공감했던 건 바로 이 <선배학 입문>이다.
20대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대학생들은 소위 말하는 '꼰대'들의 행동을 경멸하고 질색해하면서도 사실상 자기들은 더 꼰대같이 행동한다. 일제의 잔재니 군대 문화니 무슨무슨 이유를 다 가져다 붙이지만 뭘 가져다 붙여도 이건 정말 말 그대로 유치하다. 겨우 1~2년 많게는 3~4년 먼저 들어왔다는 이유로 나이가 어린 사람들은 그들로부터 '존경'을 강요받는다. 나또한 목도 아닌 허리를 굽혀 인사해야했고, 언젠가는 새터를 갔다가 열댓명이 단체로 토악질을 할때까지 얼차려를 받기도 했다. 얼차려의 이유는 인사를 안했고, 누군가가 싸가지가 없다는 것.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학번 전체의 문제라고 그랬다. 난 분명히 민주주의 사회의 학문의 상아탑이라는 대학에 들어왔는데 이건 나치, 파쇼보다 더했다. 얼차려가 끝난 뒤 다시 방에 들어가 술잔을 나눴다. 식스센스급 반전도 이보다 편차가 심할 수 없다. 그때 나는 '예측할 수 없는' 밤을 보냈다. 선배라는 이유로 쌍욕을 하든 모욕을 하든 후배라는 이름의 생물체들은 묵묵히 참아내거나 뼛속가지 어색한 웃음으로 그 순간을 모면했다. 가끔은 날 언제봤다고 생전 처음보는 어떤 사람들이 대뜸 하대를 한다. 알고보니 선배란다. 아 내 존재가 그렇게 나이 하나로 하대받는 존재였던가. 내 앞에서 보여주는 거라곤, 후배들 놀려먹기, 술마시기, 시시껄렁한 여자얘기하기, 말도 안되는 억지부리기. 쿤데라가 말했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난 그들에게서 느꼈다.
캐나다에와서 가장 편했던건 그 나이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한국에서는 이 '나이'때문에 수평적 친교관계에서도 은연중 수직적 서열관계가 드러난다. 특히 남자들 사이에서는 한 살이라도 더 높여 형 노릇을 하려하고 대접을 받으려고 한다. 이곳은 다르다. 말 그대로 위아래가 없다. 나이가 많든 적든 그 차이가 스무살이 나든 서른살이 나든 관계가 깊어지면 그냥 '친구'다. 한쪽이 일방적으로 격식을 차려야될 필요도 없고, 나이많은 사람은 나이 대접을 해주지 않는다며 '욱'할 이유가 없다.
더 이상 동방예의지국이 아니다, 장유유서가 없어졌다 말하는 현세태가 그리 맘에 드는 것은 아니다. 서로에게 깍뜻한 '예의'와 '예절'은 한국의 소중한 전통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존경과 존중이 전제되지 않은, 나이를 위시한 장유유서의 폭력은 전통이 아니라 버려야 될 인습이다. 더욱이 대학생은 배우는 사람들 아닌가. 꼰대가 싫다면 꼰대처럼 굴지말자. 나보다 더 많이 알고, 더 많이 쌓고, 더 고수인 애들이 선배지 나이쳐먹었다고 선배가 아니다. 그냥 사회가 만들어준 당신의 호칭이 '선배'일 뿐이지, 우리가 배우고 따라야할 그 선배가 아니라는 거다.
아 쓰다보니까 열받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