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화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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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하던 날.

영원한 화자 2010. 12. 16. 01:55



아날로그 소년 형님의 새 앨범에 수록된 '이사하는 날'을 듣고 있자니 옛날 생각이 나지 않을 수 가 없다. 드디어 지옥같던 일을 청산하고 도서관에서 컴퓨터하고 있는데 노랠 들으니 자꾸 옛 생각이 떠올라서 눈이 시큰하다.

지방에서 서울로 혹은 고향을 떠나 타향으로 대학교를 갔던 사람들은 다 그렇겠지만 나에겐 그놈의 이사가 호환마마보다 더 무서웠다. 대학교 1, 2학년 때는 기숙사를 살았지만 학기마다 방을 옮겨야 했고, 5평도 안하는 곳에 남자 넷을 가둬놓는 엄청난 공간효율의 혁신을 이뤄낸 빌어먹을 기숙사 탓에 늘어난 옷가지나 책, 음반을 수납하기도 쉽지 않았다. 매번 치를 떨고, 진저리를 치며 짐을 정리할땐 언제나 정신도 없고 우울했다. '내 집 마련'이란 글자들 뒤에 왜 '꿈'이라는 단어가 오는지 난 그때서야 알았다.

군대를 다녀온 후엔 자취를 했다. 어머니는 한 달전부터 미리 필요한 것들을 싸두고 매번 확인하고 챙기고를 반복, 나중에 내 살림살이를 본 친구들이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500cc 맥주잔, 소주잔, 거기에 겔포스까지 한 통도 상비되어 있었다면 설명이 충분할까. 여튼 전역 후 학교 앞에 얻은 원룸으로 들어오던 날도 참 우울했다. 날씨는 왜 또 이렇게 추운건지. 새 옷을 입었으면 기분이라도 좋으련만 시한부로 갖게된 새 방은 영 어색하고 낯설었다.

1년 후 계약기간이 만료되어 새 방을 구해야했다. 구산역 근처에 얻었던 방은 계약 만료 4일전에 찾았다. 보증금이 없었고, 월 25만원이었다. 이거야말로 핫딜이군. 냅다 가계약을 했다.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이삿날 아침부터 빗줄기가 거셌다. 이삿날 다시 본 방은 처참했다. 방을 보러 갔던 날 발견하지 못했던 곰팡이와 집 전체에 풍기던 악취는 화룡정점. 발을 하나 디딜 수 없을 만큼 더러운 방을 난 닦고 또 닦았다. 향수를 뿌리고 페브리즈를 난사하고 환기를 시켰지만 냄새는 없어지지 않았다. 날 위로해주며 도와주던 여자친구가 없었다면, 우아한 세계의 송강호가 라면그릇을 엎어버렸든 내 모든 살림살이들을 엎어버리고도 남을 기분이었다. 

내 기분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사를 마치고 찾아간 순대국집의 순대와 순대국은 더럽게 맛있었다. 여자친구를 바래다주고 이름조차 생경스런 '연신내'의 유흥가를 거쳐 집으로 돌아오던 발걸음은 왜 이렇게 무겁던지. 아직도 이런 골목들이 있구나, 생각하며 어두컴컴한 골목을 지나 마치 지하 던전으로 들어가는 것만 같은 통로를 지나 악취로 찬 방으로 들어가자마자 난 허물어지듯 주저 앉았다. 씨발, 내가 왜 사서 고생을 하고 있지. 집이 찢어지게 가난한 것도 아니고, 내 수중에 돈이 없는 것도 아니고, 백수도 아니고. 군대까지 다녀온 주제에 집에 손을 벌릴 순 없다는 고까운 자존심과 캐나다에 가기 전 여행을 위해 어떻게든 돈을 모으려던 내 욕심이 불러온 결과였으니 남을 탓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샤워를 마치고, 발이 닿을듯 말듯 하는 비좁은 방에 눕자마자 왈칵 눈물이 올라왔다. 어오 씨발 참 이게 다 무슨 꼴이고 무슨 짓이람. 그러고 있는 꼴이 얼마나 궁상 맞던지 아무도 없었지만 참 부끄러웠다. 뭘 잘했다고 눈물이 나오나 싶어, 꾹꾹 참아 결국 한방울도 흘리지 않고 난 그렁그렁 맺힌 눈물을 씹어 넘겼다. 지금 생각하면 참 지랄하고 자빠졌었던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