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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화자
아버지. 본문
오빠는 아빠를 참 좋아하는 거 같아. 맛있는 거 먹으러가도 꼭 아빠가 좋아하실 것 같다고 하고. 아. 내가 그랬었어?
어젠 아버지가 서울에 올라오셨다. 지난주 아버지 생신 때 집에 갔을 때 이제 살이 많이 빠져서 예전에 입던 옷들이 다 크다고 했던게 기억났다. 우리회사 계열사에서도 가끔 임직원 행사를 하니까 그때 한번 올라오셔서 한 벌 맞추자고 말씀 드렸다. 그랬는데 여자친구 회사에서 임직원 행사가 있었다. 전화를 해서 올라 오시라고 말씀드렸다. 처음엔 일이 있어서 못간다고 하시더니 이내 기차를 예매하라고 하셨다.
서울에 올라온 지 10년이 넘어가는데 내 입학식과 졸업식 외에 따로 서울에 오셨던 적이 없다. 일 때문에 가끔 어머니랑 같이 올라오셨다가 당일로 내려갔던 적은 있었지만 어제처럼 따로 올라오신 적은 처음이다. 용산역에서 아버지를 기다렸다. 이제는 작고 왜소해진 아빠가 걸어 나왔다. 버스를 타고 명동엘 갔다. 늦은 점심을 해결하려고 서성이다 화교학교 근처에 있는 중국집에서 짜장면을 먹었다. 내 입엔 별로 맛이 없어서 아빠에게도 맛이 없으면 어쩌나 했는데 아빠는 연신 맛있다고 하시며 한 그릇을 다 비웠다. 백화점에 가서 정장을 맞췄다. 내가 사드릴려고 했는데 아빤 나에게 덥썩 현금 50만원을 쥐어 주셨다. 지금 생각하니까 그 돈으로 넥타이도 좋은 걸로 하나 사드릴껄 그랬다.
백화점에서 나와 카페에 앉아서 커피를 마셨다. 생각해보니 역시 처음이다. 아빠와 스타벅스라니. 아빠는 또 차 살때 보태라면서 카드를 주셨다. 보태주신다니까 좋긴한데, 죄송하기도 하고 또 면목 없기도 하고 멋쩍게 카드를 받았다. 저녁으로 뭘 사드릴까 하다 내 졸업식때 토속촌에서 삼계탕을 맛있게 드신게 생각났다. 거기 가시겠냐고 물어보니 좋다고 하셨다. 시위대로 혼잡한 을지로를 지나 종로에서 택시를 탈 생각으로 종로까지 걸었다. 종로는 더 가관이었다. 20분 넘게 택시가 잡히질 않았다. 백화점에서도 한참을 걷고, 또 백화점에서 종로까지 걸었기 때문에 아빠가 힘들것 같았다. 결국엔 근처에서 먹기로 하고 종각에 있는 청진옥에 들어갔다. 나도 처음 가봤는데 거의 다 술안주여서 결국 해장국 두 그릇을 시켰다. 그런데 왜 이렇게 맛이 없는지. 먹는 내내 아빠에게 미안했다. 그렇게 걸어놓고 결국 먹은게 이 맛없는데 해장국이라니. 막걸리 한 병만 맛있게 나눠 마시고 해장국은 절반을 남긴 채 식당을 나왔다. 주변에 식당이 이렇게 많은데 하필 고른게 그거여서 내내 속상했다. 아빠는 이제 딱히 먹고싶은 것도 없고, 많이 먹지도 못한다고 괜찮다고 말씀하셨다. 어디를 갈까 하다가 또 너무 걷기는 뭐해 근처 카페에서 또 커피를 마셨다. 시간을 좀 보내고, 다시 용산역에 갔다. 신문과 물 한병을 사 드리고 플랫폼을 향했다. 좌석에 앉은 아버지가 가라고 손짓을 하는데 그게 왜 이리 기분이 이상하던지. 돌아오는 내내 그리고 오늘 아침까지 기분이 헛헛했다.
이쪽으로 와요 아빠, 하면서 잡은 팔이 너무 앙상했다. 어렸을 땐 개구리처럼 크게 부풀린 배를 내놓은 아빠를 보며 임신했냐며 깔깔대며 놀렸는데 그 배도 이제 홀쭉하다. 수북하던 머리숱도 이젠 휑하다.
겨울철 동이 트기도 전에 출근길에 나서며 가장 많이 생각했던 건 아빠는 얼마나 많이 이런 날을 보냈을까였다. 스트레스를 받고, 피로에 지쳐 집에 돌아와 침대에 누워 삶의 무게를 운운하다가도 4남매를 짊어졌을 아빠의 어깨를 생각하면 내가 아직 어리구나 싶었다.
아빠랑 이렇게 시간을 보내니 좋았다. 명절에만 집에 내려갔는데 더 자주 집에 내려가야겠다. 결혼하기 전에 아빠랑 단둘이 여행도 꼭 가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