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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화자
주말의 일기. 본문
첫째 동생이 유럽으로 여행을 가는 바람에 혼자 남은 막내 동생이 좀 신경쓰였다.
스물 한살이래도 막내는 막내다. 신경이 쓰이는 건 어쩔 수 없다.
갖다줄 것도 있어서 11시쯤 갈테니 밥을 해놓으라고 했다. 김치볶음밥을 해줄 생각이었다.
갑자기 고등학교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벌써부터 한번 보자고 하는 눈치였는데 이러저러한 이유로 미뤄지고 있었다.
당직을 섰는데 어차피 집에가면 잠만 잘 것 같다고 만나자고 전화를 했다.
11시가 다 돼가고 있었다.
막내 동생에겐 미안하지만 친구를 택했다.
미안한 맘에 스타벅스 기프티콘을 보냈다.
친구를 만나 추어탕을 먹고 합정역 근처의 카페에 갔다.
경찰 간부 시험에 합격해 좋은 곳에 근무하는 친구인데도 고민이 많은듯 했다.
백수 앞에서 이 새끼가 못하는 소리가 없다.
집 근처에서 밥을 먹고 친구가차를 세워뒀단 곳에 갔다.
왠 외제차가 한대 서 있었다.
K5 아니었냐?
아빠 차 가져왔어.
경찰이 되고 나서 미친척하고 익스플로러를 질렀는데 유지가 힘들어 아빠차랑 바꿨다고 한다.
이 새끼가 원래 이렇게 잘 살았나.
하긴 뭐 잘 살았지.
합정역 근처로 가 여기저길 걸었다.
완연한 봄 날씨라 그런지 사람이 많았다.
봄이다.
봄이지만 여자친구는 일을 하고 있고 나는 백수다.
그러고보니 회사에 다니던 시절 나들이 가기 좋은 봄, 가을 날씨에 나는 여자친구를 그렇게 닥달하고 불편하게 했다.
나는 쉬고, 여자친구는 일하고.
놀러 가야되는데 여자 친구가 일하고 있으니 그게 그렇게 불만이었다.
여자 친구가 짜증이나도 더 짜증났을텐데 나는 또 속없이, 철없이, 생각없이 보챘다.
나랑 친구는 테라스가 있는 카페에 가서 커피를 마시며 이런 저런 얘기를 했다.
생각해보니 거의 나의 넋두리였다.
솔직히 말하면 내가 이 친구보다 공부를 잘했다. 수능도 더 잘봤다.
지방대로 간 이 친구는 뚝심있게 공부를 하더니 2년 만에 경간부 시험에 합격했다.
대단하다고 했다.
그랬더니 친구가 그랬다.
그냥 붙는다고 생각했다. 2년 뒤에 붙든, 3년 뒤에 붙든, 5년 뒤에 붙든 붙는다고 생각했댄다.
그렇게 생각하니 하루빨리 붙고 싶어서 더 열심히 했다고 한다.
아주 잠깐 고시같은 걸 생각해본 적이 있었는데 만약 내가 고시를 봤다면 어떻게 됐을까 생각을 해봤다.
뭘하든 빨리 성과를 내고 싶어 조급해 하는 놈이기 때문에 고시도 분명 1~2년 하고 그만뒀을게 분명하다.
친구에게 나는 뭘하든 조급해해서 탈이라고 말했다.
친구는 그건 존나 나쁜 습관인거 같은데?라고 말했다.
아하동문이다.
아는데도 뭘하든 조급해한다.
백수가 된지 반년이 되려하자 이미 나는 벌써 조급해져서 밤만 되면 생각이 많아진다.
여자 친구는 언제나 날 응원해주고, 아무런 불평의 말도 없지만, 뭔가 불안해하는게 느껴진다.
만약 내가 여자라면 내 남자친구가 이러고 있으면 불안해서 조급해서 닥달을 할거다.
야 이 새끼야 빨리가서 일을 해라. 뭐하고 있는거야 지금.
넋두리와 신세한탄만을 남긴 채 친구와 헤어졌다.
친구는 외제차로 날 집까지 데려다 줬다.
그 외제차는 낮아서 나와 맞지 않았다.
외제차 별거 없구만.
내일 일(?)할걸 조금 보다가 막내 동생에게 연락을 했다.
집에 있었다.
간다고 말했다.
자전거를 타고 안양천을 달렸다.
3/4 쯤 갔을 때 비로소 줘야될 것을 안 가지고 온 것을 알아차렸다.
이러니 내가 집안에서 가위를 잃어버리지.
잠깐 고민하다 그냥 택배로 부치기로 했다.
밥이나 같이 먹는걸로....
그러지 않으려고 했는데 또 동생에게 잔소리를 했다.
김치볶음밥을 하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했는데 동생이 말이 없다.
또 우나보군.
내가 잔소리를 늘어놓을 때마다 동생은 운다.
그냥 나는 내가 겪은 시행착오를 동생은 겪지 말길 바랄뿐이어서 하는 말이다.
나는 참 유난스럽고, 별스럽게 20대를 지나왔기 때문에
그 지랄맞은 나의 시행착오를 동생은 겪지 않았으면 하는 잔소리다.
그러나 동생은 내 맘을 알리 없다.
어느 꼰대의 이야기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영어, 진로, 독서 등등의 잔소리를 매번 늘어놓지만 변하는 구석이 없어 속상할 때가 있다.
내가 뭐라고 동생을 바꾸려고 드나 싶다가도
동생은 그냥 내가 겪은 고생이나 시행착오 없이 스무스한 20대를 살길 바라는 욕심에 잔소리가 나간다.
밥을 먹는데 슬쩍 쳐다봤더니 눈 주위가 빨갛다.
사실 용돈을 주려다가도 얄미워서 안 준다.
좀 말한대로 착착 따라와주면 용돈도 주고, 사달라는 것도 사주고 할텐데.
그래서 이번에도 용돈을 주려다가도 말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페달이 무겁다.
혼자있는 동생을 울린 것도 미안하고.
용돈을 안 준것도 그렇고.
내가 백수인 것도 그렇고.
밥을 먹다 통화를 한 엄마의 목소리도 귓전에 맴돈다.
외제차를 타고 나타난 동창도 아른거린다.
이것저것을 하다가 결국 맥주를 사러 나섰다.
한숨이 푹 쉬어졌다.
동창놈은 그랬다.
나야 할 줄 아는게 한 가지 밖에 없으니 공부만 한건데,
너처럼 똑똑한 놈은 너무 똑똑해서 손발이 고생이다.
나같은 놈을 보고 헛똑똑이라고 하는 거다 이 새끼야.
얼른 떳떳한 사람이 되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