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화자

골목 걷기. 본문

사사로운 공간/ijuswanaseing

골목 걷기.

영원한 화자 2016. 2. 28. 21:57




걷는 것을 좋아한다. 휘황찬란한 대로변과 번화가의 백화점보다 소박한 동네골목과 시장을 사랑한다. 번화가가 잔뜩 화장을 하고 멋을 부린 모습이라면 동네 골목과 시장은 도시의 민낯이다. 그곳에서는 우리가 사는 모습들이 숨김없이 드러난다. 


낮에는 눈보라가 불어 밤 산책을 나섰다. 오늘은 전혀 가보지 않은 쪽으로 향했다. 익숙한 곳으로 향하던 발걸음을 충동적으로 돌려 횡단보도를 건넜다. 반대편엔 이곳에 뒷산이 있었나 싶을 정도의 오르막길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두컴컴한 오르막을 다 올랐을 때야 그곳은 산이 아니라 말 그대로 정말 높은 오르막길이라는 것을 알았다. 골목으로 들어서자 갓 완공된 신축빌라 천지였다. 분양을 알리는 현수막이 막 눈이 그친 하늘을 가렸다. 듬성듬성 지은지 30년은 되보이는 다세대 주택이 신축빌라의 옛모습을 가늠케 했다.


다시 익숙한 대로변으로 나왔을때, 매번 버스타고 지나치기만 했더 '남부시장'의 입구가 보였다. 시장으로 들어갔다. 묘하게 정릉에 살 때도, 낙성대에 살 때도, 심지어 지금까지도 모두 지척거리에 재래시장이 있었다. 반찬가게와 과일가게, 정육점, 순대국밥집, 닭발집, 생선가게를 지났다. 전국팔도 어디에나 있을 그런 시장이다.


다시 대로변으로 나와 반대편 골목으로 들어왔다. 이곳에도 30년은 족히 되보이는 주택과 신축빌라들이 어지럽게 뒤섞여 있다. '목동'하면 으리으리한 주상복합 아파트와 학원가를 떠올리기만 했었는데 그곳은 한강에 치우친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요즘에야 알게됐다. 돌아다니다보면 내가 네다섯 살때까지 살던 동네의 모습을 떠올리는 풍경들이 많다. 내가 목동으로 이사를 간다고 하자 '오~' 라던지 '돈 많이 벌었나봐요'라는 반응을 들었을 때가 생각난다. 그들은 예전의 내가 갖고 있던 목동의 이미지를 갖고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여기도 별다를게 없다. 아파트와 학원과 백화점이 몰린 곳에 교육에 유별난 아주머니와 그 등쌀에 떠 밀리는 학생들이 있는 것이 좀 다를 뿐 내가 살던 정릉과 낙성대, 신림동과 별반 다를게 없다. 다들 먹고 사는 모습은 똑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