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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화자
공부하는 사람. 본문
사이토 다카시의 <내가 공부하는 이유>를 읽고 있다.
"...공부를 한 결과가 지금 당장 눈에 보이지 않는 것 같아도 공부한 것이 절대 사라지지는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 공부는 마치 나무의 나이테처럼 내 안에 각인되어 필요할 때 전혀 새로운 형태로 다시 나타나 뜻밖의 성과를 가져다 준다."
이 구절을 읽는데 문득 대학 시절이 떠올랐다.
막 복학을 해서 공부는 물론 모든 것에 대한 의욕이 솟구칠 때 였다. 호기롭게 나는 전국 규모의 대학생 학술포럼에 참가했다. 비슷한 행사가 교내에서도 있었는데 거기에도 참가를 했다. 3개월여를 논문 작성에 몰두했다. ODA에 관한 것이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참 열심히 했다. 전혀 아는 분야도 아니었고 전공과도 아무 연관이 없었기 때문에 수많은 자료들을 읽고 정리했다. 심혈을 기울였고 그만큼 자신있었다. 교내 포럼 당일 책자가 나왔고 미리 다른 팀의 논문을 받아든 나는 사실 코웃음을 쳤다. 논문의 형식조차 지켜지지 않은게 많았고, 토론의 반박논리를 찾기 위해 타 참가팀의 주석에 달린 참고문헌을 읽고 있는데 그 참고문헌을 그대로 붙여넣기 한 구절을 찾기도 했다. 상금은 우리팀 것이라 생각했고 학과 내에서도 그게 중론이었다. 발표와 토론이 마치고 시상식. 예상과 달리 장려상의 이름에 우리팀 이름이 불렸다. 어안이 벙벙했다. 어쨌든 상장을 받아들고 내려오긴 했으나 화가 치밀어 올랐다. 표절한 팀과 논문 형식조차 갖추지 못한 팀이 1등, 2등을 했다. 심사위원은 그 팀의 지도 교수님들이었다.
하루, 이틀 지나도 분이 풀리지 않았다. 결국 난 학부장님에게 장문의 메일을 썼다. 심사의 진행 방식, 표절한 부분, 애초의 취지를 조목조목 짚었다. 학부장님은 고맙다는 답장을 했고 보아하니 그 메일은 학부 교수 전체에게 포워딩 돼있었다. 며칠 후 같은 전공 교수님에게 한 통의 메일을 받았다.
지적과 고민 고맙다. 표절 부분은 알고 있었고, 그에 상응하는 감점 요소를 수업 성적에 반영할 예정이다. 열심히 노력한 것에 상응하는 결과를 얻지 못해 아쉽겠지만, 네가 한 공부들은 온전히 너에게 남을테니 너무 아쉬워하지 말라는 내용이었다.
처음 메일을 받았을 땐 이게 왠 개소린가 싶었다. 그러니까 학생들이 논문 표절한 사실을 알고도 포럼에 내보냈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다 끝난 마당에 공부한게 남아? 어이가 없었고 분노는 가시질 않았다. 그 포럼은 유야무야 그렇게 단발성 행사로 끝이났다.
그 일이 있고난 후 그 교수님이 보낸 메일의 한 구절이 종종 생각나곤 했다. 네가 한 공부들은 온전히 나에게 남을 거라던 말. 위에 써놓은 사이토 다카시의 말과 동일한 의미다. 실제로 그랬다. 그렇게 힘들게 썼던 첫번째 논문을 발판으로 나는 두 번째 논문, 세 번째 논문을 쓸 수 있었다. 그 때의 그 경험이 없었다면 시도조차 해볼 수 없었을게다. 이렇게 논문을 썼던 경험이 인정을 받아 인턴을 할 수 있었고, 또 취직을 하는데도 어느 정도 일조하게 됐다. 결과적으론 그렇게 쌓인 경험들이 지금의 내가 가진 가장 큰 강점이 됐다. 상을 타지 못해 의미가 없는 줄로만 알았던 지식과 경험들은 온전히 나에게 남아서 내 근간이 된 것이다.
C+을 받았던 수업에서 배운 지식들, 2년 연속 탈락한 공기업 준비를 위해 했던 경제학 공부, 990을 찍지 못하고 접었던 토익 공부는 내 머릿속 어딘가 켜켜이 쌓아있었고, 새로운 자극을 주거나 상황에 처하면 생각지도 않게 나를 도와주곤 했다. 또는 새로 배운 지식, 새로 읽는 책의 내용과 결합해 생각지도 않는 아이디어를 주거나 기회를 잡기도 한다. 내가 끊임없이 읽고, 새로운 분야를 기웃거리는 이유다.
남들에게 자랑하기는 좀 그런 회사에 입사했지만 입사 이후에도 종종 좋은 기회들이 왔고, 아직도 진행중이다. 꾸준히 노력하고 공부했던 결과라고 생각한다. 나의 시작은 미약했지만 언제가는 창대한 결과를 낼 수 있다고 자신하는 이유는 여전히 난 공부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