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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화자
어딜 가시나요, 나의 20대. 본문
짧은 만화를 봤다.
"여봐요 누구시길래 그리 바쁘게 가십니까?"
"너의 20대."
그러게요. 무슨 연유로 그렇게 바쁘게 내달리시는지요 나의 20대님.
때로는 방바닥에 기어가는 개미의 한 걸음을 헤아릴 만큼 여유로웠고, 때로는 타임머신이라도 탄 듯, 달력을, 시계를, 하늘을 한 번 올려다 볼 새 없이 바쁘게 살았다. 그러나 돌이켜 생각해보면 정신과 시간의 방에 갇혀 있던 손오공마냥 10년의 시간이 어제의 일처럼 촤르륵 머릿 속을 스쳐간다. 어딜 그렇게 바쁘게 가시는 겁니까 나의 20대여.
열심히 살았다고 자부하지만 과연 내가 산 방식이 옳았던 것이냐에 대해선 물음표다. 갓 스무살, 생각지도 않던 대학에와서 낯선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수면 혹은 술로 보내던 나날들. 그 다음해 내가 속한 사회와 환경에 적응하려 노력했으나 결국 적당한 주변인으로 남았던 시간들. 군대를 지나며 사회를 공부하자, 정치를 공부하자던 빡쎈 자의식에 쩔어 살던 시간들. 졸업을 앞두고, 난 취업에 관심없다, 회사 생활을 나에게 맞지 않다며 으스대던 순간들. 결국 사회의 통념과 내 실력과 지식의 하찮음에 떠밀려 시작하게 된 인턴 생활. 그것을 통해 새로운 것을 알고, 조금은 사회가 돌아가는 틈을 봤고, 결국엔 실낱같은 희망을 부여잡기 위한 청년백수-그리고 잉여인간-의 시간들. 결국에 나는 대학을 선택할 때처럼 그럭저럭한 회사에 덜컥 합격에 역시 생각지도 않은 일을 하며 마지막 20대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맘대로 쓸 수 있는 돈을 쥐었다. 지름의 신을 언제든지 영접할 수 있게됐다. 끔찍하기만 하던 중간고사와 기말고사, 레포트의 지옥을 지났다고 생각했다. 어디에서도, 누구에게서도 해답을 없을 수 없었던 불확실성과 마치 신처럼 존재 자체에 의문이 들었던 나의 가능성에 대해서도 조금은 실마리를 찾은듯 했다. 햇볕 따뜻한 해방촌 어느 펍의 파티오에 앉아 잠시 잠깐 행복해 하기도 했다. 비싼 맥주를 먹어도 한 주의 씀씀이를 재지 않아도 상관이 없었다.
그러나 결국엔 다시.
매일, 매일이 지옥같은 일상에 도달했다. 6시 10분에 일어나, 6시 50분에 집을 나서, 7시 6분 30초에 도착하는 외선순환 2호선을 타고 영등포구청역을 거쳐 마포역에 도달해 사무실에 도착하면 7시 40분. 병신같은 아침체조를 시작하기 전까지 20분, 책을 쥐는 그 시간이 가장 행복한 일상이라니. 나의 20대. 그러니까 취업을 하기까지 9년의 시간이 고작 이 행복을 맛보기 위한 것이었다면 지금 나는 당장 이짓거리를 그만두는게 낫지 않을까. 내 20대 중 9할의 시간을 보낸 시간이 지금 이 순간, 이 직업, 이 일을 위한 것이었다고 한다면 나는 조금 많이 슬플 것이다. 안타깝지만 현실은 그 안타까움에 기반한 듯이 안타깝다.
꾸벅꾸먹 무거운 머리를 간신히 받쳐들고, 지저분해 발 디딜틈 없는 집에 들어와 먼지 구더기 속에서 자는 일상이란. 눈은 언제나 핏빛이고 눈밑엔 세월의 그늘인지 육신의 그늘인지 모를 거뭇함이 착색된지 오래다. 그 안에서 날 위로하는 것은 신용카드에 저당잡힌 소비와 값싼 병맥주, 그리고 음악과 책 뿐이다. 그리고 이렇게 취해 긁적이는 글들.
또 하루 멀어져간다. 내 꿈은 담배연기처럼. 12월이 들어서자 나는 하루 또 하루 이별같은 날들을 살고 있다. 아니 이건 뻥이다. 침대에서 일어나며 항상 12월, 내 20대의 마지막 달임을 자각하지만 회사 문을 통과하는 순간 14인치 노트북 모니터에 빠져 허우적 대고 있다. 퇴근하면 공부해야지! 책 읽어야지! 좆까. 12시간씩 소진당한 뇌에게는 독서나 공부에게 허락되는 공간은 없다. 매번 뜨는 해를 보지 못하고, 결국에는 지는 해의 뒤꽁무니를 바라보며 차가운 공기 속에 뜨거운 한숨을 훅 불어넣는다.
내가 뭘쓰고 있는지 모르겠다. 어디갔는지 아니, 어디로 향했는지 모를 나의 20대. 내 20대를 정리하겠다고 썼으나 사실 정리할 시간이 있으려나. 오늘은 약속도 없고, 맥주 몇 병에 취한 취기에 똥같은 글을 써본다. 왜냐면 내가 존경해마지 않는 김연수 작가가 무조건 쓰라고 했기 때문에. 문장만이 단어만이 나를 살릴 것이다. 내가 가야할 곳이다. 시작은 미약하지만 끝은 창대하지 않아도 좋다. 언제고 이런 글이라도 쓸 여유가 있다면.
어딜 가십니까 나의 20대여. 아직도 할 말이, 아니 쓸 글이 많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