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화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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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이여 (자)소설가가 되라!

영원한 화자 2014. 9. 24. 00:10


취업준비생들이라면 요즘 제일 많이 듣는 얘기 중 하나가 바로 '스토리'일 것이다. 취업 전문가, 기업 CEO, 취업 선배, 교수들까지 모두 자신의 이야기를 쓰라고 말한다. 스토리가 스펙을 이긴다는 말은 무슨 금언처럼 출판 시장과 취업시장을 떠돌고 있다.

스토리! 좋다. '이야기'에 대한 인간의 욕구는 본능적인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인사담당자들은 우리가 천일야화의 세헤라자드라도 되는 것 마냥 더 새롭고, 더 창의적이고, 더 도전적인 이야기를 원한다. 이야기와 지식, 정보가 결합될 때 그것이 가장 효과적으로 전달된다고 하니 우리의 스펙과 경험을 전달하기 위해서 '이야기'라는 방법은 한 편으로 맞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초중고등학교는 물론 성인으로서 자율성을 얻는 대학교까지 천편일률적인 교육을 받아오고 비슷비슷하게 자라온 한국 대학생들에게 '나만의 스토리'를 써내기는 쉽지 않다. 언제 우리가 창의적인 일을 해 본 역사가 있었나? 조금만 사회적 통념에 어긋나는 '도전'을 하게 된다면 온갖 무시와 손가락질을 받는게 아직까지의 한국 사회다. 부모의 애틋한 사랑속에서 자라 조교에게 질문 한 마디 할 용기가 없어 어머니로 하여금 과사무실에 졸업요건을 물어보게 하는 철부지 20대들은 막노동 판에서 삽질이라도 한 번 해봤을까? 자기가 뭘 하고 싶은지 조차 모르는 학생들이 수두룩한데 남들과 다른 경험, 자기만의 이야기가 있을리 만무하다. 그러니 애초에 자신만의 스토리, 누구보다 창조적이고, 도전적이며, 글로벌한-아 근데 도대체 글로벌의 정체는 무엇인가- 스토리를 1000자 내외로 쓰라는 것은 '픽션'을 쓰라는 말에 다름아니다. 자기소개서 자소설로 바뀌는 순간이다. 어디한번 구라를 털어봐!


결국 청춘들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나와는 또 다른 자아를 만든다. 동아리 부회장으로서 갈등을 해결하고, 팀플 수업 팀장을 맡으며 성공적으로 과제를 끝내 교수님에게 칭찬을 받고, 미국 어학연수를 통해 글로벌마인드를 함양하는 것 정도는 이제 클리셰가 돼버렸다. 결국 타인의 자소서를 베끼고, 가고싶은 회사에 합격했다는 선배의 자소서를 복붙 신공으로 지원하거나, 에라 모르겠다 정말 소설을 쓰는 지경에까지 이른다. 난 오늘에서야 당신의 회사를 알았는데 3000자씩이나 되는 구라를 털어 인사담당자의 눈에 들 능력은 아마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에게도 없을 것이다.


나는 상하반기 취업시즌을 신춘문예에 비유하고 싶다. 수 많은 작가 지망생들이 끝도 없는 고배를 마시다 결국 등단의 기쁨을 맞는 것 처럼 취준생들도 셀 수 없는 '광탈'을 경험 한 뒤 '최종합격'이라는 결과를 얻는다. 소설가가 됐든 자소설가가 됐든 우리가 꾸며낸 세상이 문단에게 회사에게 인정을 받는 그 과정은 참 고독해보인다. 일을 하고 싶은데 일을 못하는 것, 난 이미 소설을 쓰고 있는데 소설가라 불리지 못하는 것은 다른 듯 닮았다. 오늘도 자소설 집필로 밤을 새는 그대들에게 박수와 격려를 보낸다.



p.s 수십개의 자소서를 쓰다 지쳐 이런 분에 찬 글을 썼던 저도 어딘가에서 밥을 벌어 먹고 있게됐습니다. 조급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조급하다고 무작정 붙은 회사에 덜컥 가지도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들어가는 순간 인생은 걷잡을 수 없는 급류를 타게 되더라구요. 요행을 바라지 않고 성실하게 살며, 준비해왔다면 언젠가는 자기에게 꼭 맞는 기회가 올겁니다. 지금은 조금 힘들겠지만, 취업하고 한 달 지나면 백수 생활을 그리워하게 될껍니다. 어떤 말도 위로가 되지 않을 시간이라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지만, 멘탈 꼭 붙들어매고 조금만 더 힘냈으면 좋겠습니다.



p.s 2. 사실 경험=이야기로 치환할 수 있는데 대학 생활을 반추해보면 경험=돈 이라고 바꿔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어학연수, 배낭여행, 공모전 등 흔히 대외 활동이라는 것들은 부모님의 경제적 지원을 암묵적으로 전제하고 있다. 그러나 모든 대학생이 다 용돈을 받으며 다니는 것은 아니다. 물론 예외도 있겠으나 내 주변의 경우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친구들의 취업속도가 더 빠르거나 좋은 회사에 들어간 경향이 있다. 부모의 재산까지 적어내라고 하는 기업들이 자소서에 적어낸 악전고투 아르바이트 생활기를 기꺼워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기업들의 채용방식에 대해 근본적인 부분부터 다시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