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화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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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로운 공간/ijuswanaseing

역주행

영원한 화자 2009. 2. 22. 19:49
 

 
  언젠가 설기현이 국대 경기에 나와서 역주행-그러니까 우리 진영쪽으로 공을 몰고-을 매섭게 했던 적이 있다. 기가 찼다. 윙 포워드 혹은 윙어 역할을 했던 그가 상대편 진영으로 가서 크로스를 올려도 시원찮을 판국에 우리 진영으로 멋들어지게 파고들다니. 다음날 인터넷은 들끓었다. "설기현 역주행"

_또 언젠가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은메달리스트인 유도선수 김민수가 K-1 경기에서 상대방에게 등을 보이며 반대편 링으로 달음질쳤다. 격투기 경기였다. 서해안 고속도로 역주행 보다 더 아찔해보이는 역주행이었다. 인터넷과 언론은 또 술렁였다. "김민수 역주행"

_그리고 또, 언젠가, 아마 작년 6월. 상병 정기 휴가 때였다. 술집에 있어도 시원찮을 군바리는 광화문에 있었고 또, 그 곳엔 촛불이 있었다. 집회에 참여할 수 없었던 군바리는 오금이 찔끔거려 밤 9시경 시청역으로 발검음을 돌렸으나 뭔가 찝찝함이 남아 다시 광화문 한복판으로 향했다. 캔맥주 하나와 비루한 과자 한봉지를 사들고 형님들과 난 광화문 대로에 앉았다. 내 앞엔 너무 귀엽게 신문지 속에 무전기를 숨긴 경찰 양반이 얼쩡거렸다. 시위는 평화적이었고, 종로경찰서의 목소리 예쁜 여경 양반은-그게 여경인지 성우인지 모르겠으나-당신네들은 도로를 불법점거하고 있다며, 해산하라고 속삭였다. 아, 도로를 불법점거하고 있는 저 어린 전경 아해들과 닭장차는 왜 이순신 장군님의 좌우를 가로막고 서있는걸까. 난 이해할 수 없었다. 얼마후, 갑자기 광화문 골목골목에서 무시무시한 여경들과 간부급들로 보이는 경찰관들이 쏟아져 나왔다. 시커먼 전경들이 닭장차 사이사이에서 줄줄이 비엔나 소세지처럼 몰려나오기 시작했다. 중학생인지 고등학생인지 모르는 여학생들은 한쪽에서 민중가요에 맞춰 율동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 때였다. 학익진인지 배수의 진인지 김진인지 뭔지 경찰떼들은 소녀들을 둘러싸고 강제해산 시키기 시작했다. 시민들은 소녀들을 둘러싸서 막기 시작했지만 '잘' 훈련된 전경들과 경찰들 앞에선 추풍낙엽보다 못했다. 시민들은 우수수 끌려나갔고 소녀들은 도미노 쓰러지듯  아스팔트 길바닥에 쓰러졌다. 이미 집시법을 위반한 상병짬 군바리는 오금이 저려 어쩔 줄 몰랐다. 가슴은 쿵쾅쿵쾅 뛰는데, 눈물은 주룩주룩 나는데 손쓸 도리가 없었다. 아, 생각해보니 그 날은 2008년  6월. 소설속에서나 봤던 국가적 폭력의 장에 내가 있었다. 그날은 대한민국이 '역주행' 하던 날이었다.

 _전역을 하고 사회란 곳으로 한 발짝 내딛는 순간 마치 타임머신에라도 탄듯한 느낌이다. 70~80년에 불렸던 민중가요가 여전히 여의도와 광화문에서 울려퍼지고, 법무부에선 공안기능을 강화하겠다는 걸 2009년의 목표로 삼았다. 대통령과 여당대표는 전국토에 해머소리가 울려퍼지게 해야된다고 역설했고, 국민의 입-언론-을 틀어막으려 하고 있다. 분명 난 2009년도의 사람인데 세상은 1980년대의 그것과 다름없다.

 _1985년 유시민 전 장관이 '서울대 프락치 사건'으로 기소됐을 때 재판관에게 제출한 항소이유서를 보게됐다. A4용지 15장 분량의 글엔 이런 문구가 있었다. '경제성장' 즉 자본주의 발전을 위하여 '비효율적인' 각종 민주제도(삼권분립, 정당, 노동조합, 자유언론, 자유로운 집회결사) 등을 폐기 시키려 하는 사상적 경향을 우리는 파시즘이라 부릅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유시민은 1985년에 전두환 정권을 파시즘이라 일컬으며 항송이유서를 적었다. 20여년이 지난 지금 우린 다시금 파시즘을 얘기하며 현 정권을 규탄한다. 시간을 거스르는 역주행이다.

 풀뿌리 시민들은 무기력하다. 올해부턴 대통령 욕을 하다 쥐도 새도 모르게 검찰 공안과 요원들에게 잡혀갈지도 모른다. '탁'치니 '억'죽을지도 모른다. 모든 법과 제도는 역주행하고 있다. 패션에만 '복고'가 있는게 아니었다. 이명박은 정치의 '복고'를 꿈꾸고 있는지도 모른다. 바로 지금 2009년의 대한민국에서.


                                                                    2009년 1월 20일의 글을 옮겨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