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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라노 게이치로 - 휴대전화의 연애학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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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라노 게이치로 - 휴대전화의 연애학

영원한 화자 2014. 4. 14. 00:16


  언젠가 카페에서 히라노 게이치로의 <문명의 우울>을 읽다가 필사해 놓았던 글이다. 그의 말처럼 휴대전화(스마트폰)은 비단 연애 뿐만 아니라 모든 것에 있어 '인내'와 '고민', '생각', '성찰', '상상'의 미학을 절멸케 만들었다. 수 시간 동안 고민과 상상을 거쳐 꾹꾹 써 내려간 편지가 아닌 일회적이고 즉각적인 말들처럼 사람들과 연인들의 관계도 다분히 충동적이며 즉각적이다. 꼭 부정적인 면만을 부각하고 싶진 않지만, 문명의 이기와 기술로 인해 중요한 가치들이 사라지는 것은 고민해 봐야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휴대전화의 연애학


  주로 십대, 이십대 남녀 사이에서 활약했던 연애에서의 삐삐의 역할은 더 충실해진 기능과 더불어 그대로 휴대 전화에 확장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휴대전화는 단적으로 말해 연애의 상상력을 고갈시키고 그것을 꽤나 단순하고 직접적인 것으로 만들었다. 또한 연애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이나 이별이라는 원래 상당히 복잡한 과정을 대폭적으로 간략화해 어떤 의미에서는 머리 쓰는 연애를 없애고 말았다.


  이전의 연애는 서로 완벽하게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다. 그러는 동안 여러가지 상상이 가능했을 것이며 서로 만나지 못하는 그 긴 시간에 의해 문학이 탄생할 수 있었을 것이다. 물론 날마다 연애에 관한 생각만 할 수는 없는 일이다. 만나지 못한 그 시간 동안의 휴식은 두사람의 관계를 신선하게 유지할 수 있기 위해 꼭 필요했을 것이다. 휴대 전화는 연애에 있어서 고독이 가지는 그러한 의의를 빼앗아 버렸으며, 틈만 나면 상대가 지금 어디서 누구랑 같이 있는지 서로 감시하지 않으면 불안해서 견디지 못하는 이상한 사람들마저 생겨나게 만들었다.


  그런 한편 비밀스런 연락이 너무나도 쉽게 가능하게 되어 그 위험을 어떻게 회피하는가 하는 기술은 완전히 쇠퇴해버렸다. 부모나 남편 또는 친구들에게 알리지 않기 위해서 어떻게 하면 좋을까, 모든 연애극의 주인공들이 그런 것들에 얼마나 많은 머리를 짜내야 했던가. 로미오와 줄리엣도 휴대전화만 있었더라면 어렵게 발코니에서 남의 눈을 피해 애절한 속상임을 주고 받을 필요가 없었을텐데. 마지막 장면에서도 휴대전화를 사용해 면밀하게 계획을 짰더라면 그런 비극을 맞이하진 않았을 텐데. 시험 삼아 고전 작품의 걸작이라는 불리는 연애소설 속에 휴대전화를 한번 집어넣어 보자. 거의 모든 작품이 괴멸되지 않을까? 이것은 현대 연애소설의 난점과 깊이 연관되는 문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