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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로운 공간/읽다

이적 - 지문사냥꾼

영원한 화자 2013. 12. 14. 02:34



지문사냥꾼

저자
이적 지음
출판사
웅진지식하우스. | 2005-05-15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1. 뮤지션 이적이 쓴 열두 편의 판타스틱 픽션! 한국의 대표적...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다재다능한 천재들을 보고있자면 인류가 공히 나눠가져야 할 지능에 관여하는 유전가 한 사람에게 '몰빵'된게 아닌가하는 의심이 든다. 불공평하다. 뮤지션 이적도 그런 천재 중의 한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샤대 출신에 대한민국 대표 싱어송라이터에 요샌 '맹꽁이형'르로 활약하며 나쁘지 않은 개그도 보여준다. 소설집이 출간된 후로 봐야지 봐야지 하다가 뒤늦게서야 그의 소설집을 샀다. 글을 잘 쓴다는 얘기도 익히 들어왔고, 그의 가사도 너무 좋아해 잔뜩 기대를 하며 펴들었는데, 그러니까 세상은 참 불공평한 것들 투성이란 사실에 다시 한 번 직면했다.


먼저 내용보다 이 말도 안되는 책 편집에 한 마디 하고싶다. 편집자는 무슨 생각으로 이런 삽화를 넣었고 이런식으로 구성했는지 묻고 싶다. 작가를 떠난 글은 순전히 독자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같은 글이지만 각각의 독자에게 다르게 읽힐 권리가 있고, 그래야 자연스러운거다. 근데 책 꼼꼼히 박힌 이 말도 안되는 삽화들은 그런 독자의 권리를 박탈한다. 완전히 그로테스크하다면 그나마 좀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야기와 연관된 뭔가 어설픈 그림들은 글을 읽으며 공간과 인물을 상상하는 걸 완벽하게 제약한다. 글을 읽어가며 배경을 상상하고 등장인물의 모습을 그리는 건 독자의 상상력이어야만 하는데 말이다. 나는 주로 책을 읽으며 그 분위기를 하나의 색채로 기억하거나 상상하는데 거무튀튀하게 채색된 페이지는 그걸 방해한다. 역대 내가 읽은 소설책 중 최악의 편집이다.

(이적은 얼마전 위즈덤하우스의 팟캐스트 빨간책방에 출연해서 그림책과 같은 디자인으로 만들어 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허허. 편집자님 미안해요 내가 괜한 오해를. 그렇지만 그림이 들어간 것에 대해서는 여전히 별로라고 생각한다.)


사실 매우 의외의 책이다. '다행이다'나 '빨래',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의 가사로 미루어 짐작해보면(물론 책은 그 전에 나왔지만) 서정적인 이야기들로 가득 채워져있을줄 알았는데. 그건 편견이었다. 압구정 날라리 부를 때 알아봤어야 했나. 이적의 이야기는 말 그대로 재기넘친다. 이야기는 짧지만 강렬하게 읽힌다. 사랑 노래만 부르는 사람인줄 알았던 뮤지션의 머릿속에 이런 상상력이 있었다니, 하며 놀라기 일쑤였다. 기성작가가 아닌만큼 직업적 작가들이 보여주던 작법과 소재가 아니라 신선한 맛도 있다. 특히 화자가 1인칭인 <자백>은 그와는 전혀 매치가 되지 않아 숨겨진 변태성(?)을 엿보는 기회(!)랄까. 작품의 소재는 대부분 일상적인 것들이지만 거기서 나오는 말그대로 판타지다. 개인적으로는 소설의 작법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된 책이기도 하다.


대충 여행하며 사진 찍어놓고 억지 감수성 폭발류의 돈벌이용 활자 쓰레기를 양산해내는 연예인들 사이에서 이적과 루시드폴, 이석원의 글솜씨는 단연 돋보인다. 물론 내가 애정하는 뮤지션이기도 하지만 그 전에 시인이라고 불러도 어색함이 없을만큼 훌륭한 작사가이기도하니 반대하는 사람들은 없을거다. 음악도 잘하고 글도 잘 쓰는 이 천재들에게는 부러움의 감정도 아깝다. 그냥 찬양하고 경배해야겠다.


사족. 2006년에 개정판이 나왔던데 그 책은 제발 삽화가 빠져있길 바란다. 내 별점 중 빈 칸은 편집자가 깎아먹은 것.


사족2. 그러고보면 작가나 배우의 개인적인 모습이 독자와 시청자들에게 많이 노출되는 것은 좋은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사적 정보들이 주는 고정관념들이 '저 사람은 이럴꺼야'라는 기대를 갖게하며 작품을 감상하게 만드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