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화자

<보통의 존재> - 지문을 가진 문장.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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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의 존재> - 지문을 가진 문장.

영원한 화자 2013. 4. 12. 23:50

 







보통의 존재

저자
이석원 지음
출판사
| 2009-11-04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서른여덟, 평범한 생의 아름다움을 탐색하는 이석원, 그가 전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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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전 들었던 창비 팟캐스트에서 김두식 교수는 게스트로 나온 박민규 작가에게 문체에 관해 물었다. 당신은 당신만의 독특한 문체와 스타일로 유명한데 이를 의식하고 쓰는 것이냐고. 박민규는 답했다. 문체라는 것은 작가의 호흡과 리듬, 정신, 습관 등 머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닌 몸 전체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그의 말을 듣고 내 방식대로 해석해 보자면 글이라는 것은 작가의 결과물이 아니라 온전히 작가의 신체 일부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고유의 문체가 있고, 스타일이 있다. 각자의 생김새가 다르고, 지문이 다르듯이.


  그러나 그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많이 읽기도 해야되고 또, 많이 써봐야 할 것이고, 무엇보다 자신에 대해, 타인에 대해 혹을 삶에 대해 누구보다 많이 질문하고, 답하며, 생각해야 할 것이다. 그런 다음에야 비로소 자신만의 지문을 가진 문장이 나오는 게 아닌가 한다. 


  그런 관점에서 이석원의 <보통의 존재>는 누구보다 선명한 지문을 가진 문장으로 가득 채워져있다. 몇몇 주제를 제외하곤, 자신의 이혼과 지병, 우울한 기분들, 그다지 행복하지 못한 가족사 등등 우울한 주제들 투성이였지만 착 가라앉은 글의 무게에도 불구하고, 기분이 나쁘기는 커녕 담담히 읽혀나갔다. 책을 읽는 내내 그 이유를 고민해봤고,마지막 장을 덮고서야 비로소 알았다. 그건 바로 그의 솔직함이었다.


  그가 써내려간 대부분의 것들은 평범한 사람들이라면 치부라고 말할 법한 것들이다. 이혼한 과거, 자신의 지병, 둥글지 못한 성격, 순탄치 못한 가족사 등 누구에게 쉬이 보여줄 수 없고, 숨기고 싶고, 가리고 싶은 지극히 개인적인 상처와 기억들이 이 노란색의 책 한 권에 빼곡히 담겨있다.정석원은 모두 다 내려놓은 사람처럼 자신의 모든 것을 말한다. 나같으면 결단코 말하지 않은 것들을, 마치 옆 집 철수네 이야기인양 늘어놓는다. 책 뒤에 쓰여진 정성일의 추천사처럼 마치 유서와도 같은 모골이 송연한 자포자기다. 타인의 사생활을 훔쳐보는 관음증같은 즐거움을 가지고 지켜보다 10 페이지도 지나지 않아 내 마음도 담담해졌다. 여느 작가들처럼 아름다운 수사나 빼어난 비유가 있는 것도 아니지만 단지 자신과 세상에 대한 발가벗겨진 것 같은 솔직함은 진심을 다 해 눌러쓴 듯 푸르고 슬프나, 자신의 삶에 대한 사랑으로 빛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