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화자

국경의 밤. 본문

사사로운 공간/ijuswanaseing

국경의 밤.

영원한 화자 2011. 4. 17. 06:58

 

한반도, 한반도. 어렸을 땐 이 단어가 하나의 단어 그러니까 단일어인 줄 알았다. 나중에야 半島의 합성어라는 것을 알았고, 아차 우리나라는 반도라는 것을 몰랐다는 듯 상기시켰다. 고향집 부엌에서 창 밖을 쳐다보면 바다가 보이지만 그건 다만 바다와 육지의 경계지 국경은 아니다. 바다에서 국경을 따지자면 배타적 경제수역이니, 200해리가 어쩌니 어려운 말들을 찾아야 했기에 국경을 간다는 것은 나랑은 관련 없는 먼 얘기 같았다. 어쨌든 반도에서 자란 내가 국경에 서 본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나이아가라 폭포는 엄청난 규모 덕택에 캐나다와 미국을 끼고 세차게 떨어진다. 연신 대박, 대박!”을 외치며 그리고 입을 다물지 못하며 쿨하지 못하게 소국(小國)에서 온 티를 내며 난 연신 코를 훌쩍거리고, 고개를 두리번 거리기 바빴다. 유명환이 장관이 아니라 이런 게 바로 장관이지.

 

 그러고 나서 미국으로 건너가는 레인보우 브리지로 향했다. To U.S.A. 하하. 이게 다 뭐야. 여기로 가면 미국인가. 정말로? 50센트의 요금만 내면 난 미국으로 갈 수 있는 곳에 있었다. 단지 50센트로 국가와 국가를 넘나들다니. 비행기도 아니요, 배도 아니요, 그렇다고 자전거도 오토바이도, 자전거도 아닌 내 이 두 다리로? 반도인에게 이건 너무 비현실적인 광경이 아닌가. 몸도 녹일 겸 톨게이트 안에서 웅성거리던 우리를 비웃기라도 하듯 키가 큰 흑형은 50센트를 게이트에 넣고는 휘적휘적 국경을 넘는다. 두 다리로.

 

국경, 국경하니 루시드 폴의 국경의 밤이 생각 나더니, 곧이어 김연수의 책 <여행할 권리>에서 읽었던 구절들이 떠올랐다.  국경에 가서 아무런 사상의 전환 없이도, 혹은 어떤 권리도 포기하지 않은 채, 자신의 두 다리로 국경을 넘을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싶다던 그 구절 말이다.

 

국경이 시끄럽다. 그 곳을 국경이라 표현하자니 참 섧다. 국경이 없는 우리와, 그러니까 제대로 된 국경을 가지지 못한 우리와 50센트도 아니고 목숨을 걸고 국경을 넘어야 하는 그들이라니. 정치가 다 무어고, 전쟁이 다 무어냐. 철마는 달리고 싶고, 나도 아마 당신도 국경에 서고 싶을텐데, 김연수의 바람처럼 사상이니 뭐니 생각하지 않고 이 나라에서 저 나라로 가고 싶을텐데.

 

이제 포까지 쏴대는 그들을 마냥 감싸주고 한 없는 사랑으로 덮어줄 수는 없지만서도, 그래도 전쟁이 무서우니까, 라는 이기심으로 그저 그냥 잘 되길 바랄 뿐이다.

 

기행문으로 시작해 이상하게 국경을 넘나들고 결국엔 반전(反戰)으로 끝을 맺는 이상한 글.

 

 

 

겨울 어느 날인가 무작정 나이아가라 폭포를 다녀오고 나서 쓴 글이다. 이 때는 국경을 바라만 보았지 국경을 넘지는 않았다. 50센트만 있으면 나라와 나라를 왕래할 수 있다는 그 사실이 생경스러워 한 참 국경 주변을 서성였었더랬다.

 

여행을 시작하고 두 번의 국경을 넘었다. 첫 번째는 토론토에서 뉴욕으로 향하던 밤이었다. 버스는 큼직한, 누가봐도 국경인가보군하고 느낌을 주는 큰 건물이었다. 버스의 승객들은 모든 소지품을 가지고 하차했고, 버스기사는 카고에 실려있던 짐들을 모두 내렸다. 엑스레이 검사기로 소지품들을 검색한 뒤 난 이민관과 마주했다. 어디서 왔느냐, 무얼 하러 어디에 가느냐 등등의 사무적이고도 필수적인 몇 마디를 던진다. 긴장해있는 내게 10개월 정도 토론토에 있었으면서 어떻게 그렇게 영어를 잘 하냐고 칭찬을 건넨다. 느닷없는 칭찬에 난 웃음이 나왔고 이민관은 나에게 감사합니다라는 어색한 한국말과 함께 초록색 비자딱지가 붙어있는 여권을 건냈다. 그렇게 난 6달러를 지불하고 캐나다와 미국의 국경을 넘었다.
 

 두 번째는 에콰도르에서 페루를 넘어간 바로 얼마 전의 일이었다. 꾸엔까에서 탄 버스는 공기가 점점 습해지는가 싶더니 바나나 공화국이라 불리는 에콰도르의 남부해안도시 마찰라에 도착했다.  덥고 습한 공기 속에서 탄 버스는 땀에 찌든 배낭여행객과 히피들로, 피로에 찌든 에콰도르 사람들로 가득했다. 텁텁하고 쾨쾨한 공기 속에서 꾸벅꾸벅 졸던 나는 어느 새 에콰도르의 출입국 사무소에 도착했다.


 사실 내가 생각하던 출입국 사무소는 그런 것이었다
. 입구는 무장한 경찰이나 군인이 지키고 서 있으며, 깔끔하게 지어진 현대식 건물에 너댓명의 이민관들이 각국에서 온 사람들의 여권을 가지고 그야말로 필수적인 몇 마디를 묻는 광경. 그러고 나서는 이 나라에 머물 수 있다는 그 시퍼런 도장을 쾅 찍어주고 또 다시 다른 사람의 여권을 펴 드는 그런 모습 말이다.


 허나 내가 도착한 곳은 마치 지은 지
30년은 됐을법한 위병초소와 똑같은 모습이었다. 밤을 잊은 날파리들은 형광등 앞을 미친듯 날아다녔고, 간만에 맞은 휴식에 히피들은 담배를 꼬나물고 연신 연기를 내뿜었다. 그곳엔 앉는 곳도 없었고, 서슬퍼런 무장을 하고 날카로운 눈빛으로 사람들을 보는 경찰도 군인도 없었다. 물론 우린 우리의 소지품을 휴대할 필요도 검색당할 필요도 없었다. 그렇게 에콰도르를 떠났다.


 30
분 후 도착한 페루 출입국 사무소도 다를 바가 없었다. 날 보자 치나, 치나!’ 외치던 환전상들만 빼곤 말이다. 여권을 들이민 나에게 정복 차림도 그렇다고 사무직의 옷차림도 아닌, 전혀 이민관 같지 않은 이민관은 나에게 에스빠뇰로 몇 마디를 해왔다. 여느 때처럼 난 말했다. 노 뿌에도 아블라 에스빠뇰. 난 스페인어를 못합니다. 알았다는 듯 입을 닫고는 쾅쾅. 나의 여권엔 너는 법적으로 이 나라에 머무를 수 있다는 도장을 찍어준다. 대체 이 도장이 어떻게 나의 국제법적 지위를 결정할까 의심이 들게 만드는 그 초라한 도장을 말이다.


 국경엔 아무것도 없었다
. 그러니까 뉴스나 아니 내가 화천에서 으레 보던 그 튼튼해보이던 철창도 없었고, K2 M16이나 AK소총 따위를 메고 완전 무장한 채 반대편을 쏘아보던 군인도 없었다. 긴장도 없었고, 그럴싸한 이민국 건물도 없었다. 사상 따위가 있을래야 있을 수 없는 곳이었다. 그들은 나에게 국경을 넘는다고 해서 국적 포기나 사상 전환을 강요하지도 않았다. 내가 그 곳의 국경을 넘었다고해서 비난받거나 구속당할 일도 없었다. 아니 오히려 그 순간, 그 곳에서 사상이나 철학 따위를 생각하는 것이 어색한 일이었다. 이들에게 월경(
越境)은 생활의 연속에 다름아니었다.


 반쯤 섬이 아닌 완전한 섬과 같은 곳에 사는 우리들이 서글퍼졌다
. 그 섬을 거슬러 올라가려면 가족, 친구도, 국적도, 사상도 버려야하는 우리들이 말이다. 아무렇지 않게 우리의 생활처럼 중국의 국경을, 러시아의 국경을 몽골의 국경을 넘는 상상은 정말 상상일런지. 이제는 유행가보다 더 식상해진 꿈은 이루어진다는 말을 믿어도 될지 모르겠지만 그 날이 어서 오길 바랄 따름이다. 그럼 우린 이번 휴가 때 버스타고 하얼빈에 가볼까?” 따위의 말들을 할 수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