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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에서 만나는 사람들.

영원한 화자 2011. 4. 15. 11:51

무작정 혼자 떠나는 여행이라 좀 두렵기도 했다. 영어도 제대로 못하는데 스페인어는 무슨. 출발전 스페인어 포켓북이라도 하나 산다는걸 깜빡하고 무작정 끼또로 들어왔다. 그나마 준비한다고 프린팅해온 종이 쪼가리들은 버스 안에서 분실. 호스텔도 예약하고 가본 적이 없고, 그 도시에 대해서 알아보고 이동한 적도 없다. 내 성격과는 전혀 180도 다르게 여행을 하고 있다. 어쨌든 큰 일 한 번 없이 페루까지 왔으니 아버지 말씀대로 정말 잘 돌아다니고 있다.


가면 어떻게든 누군가를 만나겠지! 하고 출발했으나 사실 누군가를 만나기가 쉽지 않다. 도미터리 룸을 묵으면 왜 묵는 사람이 나 혼자 인건지. 4인 1실 방을 3일을 혼자 쓰고 4일째는 결국 2인 1실 방으로 쫓겨(?)나기도 했다. 거기에 내 친구들에게도 연락하고 말걸고 하는 걸 귀찮아 하는 내가 처음 보는 외국인에게 인사하며 말을 거는 건 참 겸연쩍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주째 접어든 여행에서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처음 묵었던 끼또의 Hostal Belmont에서는 스위스에서 쉐프형님 Hanse를 만나서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고 같이 밥을 먹으러 다녔다. 처음 여행에서 만난 친구라 어찌나 반갑던지. 형님이 몬따니따를 강추해줬지만 제대로 된 정보가 없어서 바뇨스로 향했다가 동선이 꼬여 결국 몬따니따를 가지 못하고 에콰도를 떠나서 아쉬울 따름. 그리고 또 호스텔에서 만난 Dane과 Pablo. Dane 은 나중에 알고보니 79년생. 자신이 살고있는 남부 캘리포니아에서 콜롬비아 메데진까지 오토바이를 타고 왔단다. 보조개까지 들어간 얼굴이 참 친근하게 생겼지만 온몸이 근육덩어리였다. 그리고 이 형님들과 같이 만난 잉글랜드 소녀떼들. 영화로만 보던 영국 발음을 실제로 들으니 신기했다. 이 소녀을 바뇨스에서 다시 만났는데 아는 체하기 쑥쓰러워서 그냥 지나쳤다. 

그리고 바뇨스 정글투어에서 만난 Ignacio. 보자마자 오 이선균 닮았다!라고 생각했던 스페인 형님이다. 나중에 얘기를 하면서 알게됐는데 BBC 기자란다. 26살인데 멕시코시티에서 남미쪽 뉴스 담당하는 듯. 여튼 같이 정글투어하고 헤어졌는데, 나중에 꾸엔까에서 거짓말처럼 다시 만났다. 이 전 날엔 같이 래프팅을 했던 프랑스에서 온 Caroline을 민예품 시장에서 마주쳤었는데. 여행자들의 루트가 다 비슷하군! 생각하면서 한 편으론 신기했다. Caroline은 꼭 다시 페루에서 보자면서 전화번호를 알려줬다.

 꾸엔까의 호스텔에서 만난 Vinoo. 찾아 들어간 호스텔 도미터리 룸이 너무 시끄러웠다. 문도 제대로 닫히지 않는데다가 길가에 있었기 때문이다. 호스텔 아주머니는 영어를 못하시고 난 스페인어를 못해 서로 힘겨워하고 있을 때 Vinoo가 나타나 통역을 하기 시작. 결국 옆 싱글룸을 8달러에 쇼부를 치고 묵기로했다. Vinoo는 뭐 먹고싶거나 술 마시고싶으면 언제든 자기 방문을 두드리라고 했다. 마침 그 날은 꾸엔까 독립기념일(?) 뭐 그런 날이어서 축제가 한창이었는데 같이 대충 둘러보고 주방에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맥주를 마셨다. 그러다가 한떼의 젊은 것들이 들어왔는데 Vinoo처럼 다 네덜란드에서 온 애들. 다리밑에서 일렉트로닉 파티한다고 같이 가자고 끌길래 나도 모르게 합류. 보헠트라는 놈이 내가 한국에서 왔다니까 눈에서 하트를 쏘면서 좋아하더라.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게 스타크래프트라고. 드디어 내가 한국인을 만났다고. 내가 스타크래프트 안 좋아한다니까 급실망하면서 어떻게 한국인인데 그럴수가 있냐고 그랬다. 그러면서 프로리그 보냐고 묻는다. 이건 미친거라고. 티비를 키면 스타리그를 하고 있다니 부럽댄다. 캘거리에서 왔다는 친구는 내가 토론토에 있었다니까 메이플 맆스 게임 봤냐고 그러면서 훡킹 어썸이라고 해줬더니 힙합 악수를 하며 좋아해줬다. 얘들 중에 한명이 파티스탭 중과 아는 사이였는지 우리는 VIP 구역에서 놀았다. 비가 억수같이 오는데 남자고 여자고 미친듯이 춤을 추더라. 결국 20대 중반을 넘긴 나와 Vinoo는 다른 친구들을 남기고 귀가했다. 어쨌든 이 Vinoo와는 떠나기 전까지 밥도 같이 먹고 얘기도 많이 나눴다. 영어도 완벽, 스페인어도 완벽, 프렌치와, 이탈리언도 조금 한다는 동갑내기 Vinoo는 귀국해서 부동산 관련 에이전시에서 일을 한다고 한다. 아마 우리나라로 치면 감평사 정도 되는 듯. 

꾸엔까를 떠나 페루로 향하는 버스에 탔는데 옆자리에 왠 여성분이 앉아있었다. Habla ingles? 영어할줄 아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한단다! 이거 피우라 가는 버스 맞아? 응 맞아. 그러면서 남미여행 얘기로 꽃을 피웠다. 멕시코에서 온 Noemi 양은 두 달간의 남미여행을 마치고 항공편이 있는 리마로 향하던 중이었다. Noemi 덕분에 국경에서도 당황하지 않고 비자를 잘 받고 넘어갈 수 있었다. 그러면서 여행중 궁금한 거 있으면 언제든 연락하라고 하며 먼저 만꼬라에서 내렸다. 완전 쿨한 녀성.

 그러고는 피우라를 거쳐, 치클라요를 거쳐 뜨루히요로 다시 버스를타고 완차꼬로 들어왔다. 다섯개의 호스텔을 돌아보고 가장 가격과 방이 맘에 들었던 J&J 호스텔에 묵기로했다. 사건은 바로 어제. 저녁을 먹은게 탈이 났는지 설사와 복통이 엄청났다. 데굴데굴 구르다가 화장실에 가기를 반복.. 10시가 넘었을 무렵 화장지가 얼마 남지 않은 것을 깨달은 난 배를 부여잡고 호스텔 주인할머니에게 화장지를 달라고 했다. 그랬더니 왜 그러냐며 걱정을해주신다. 저녁으로 아빠나도를 먹었는데 그게 잘못된것 같다고 바디랭귀지로 말하자 방에 있던 할아버지를 부르셔서는 약을 사오라고 시키셨다. 그 밤중에. 할아버지는 약을 사오셨고 그 약 덕분인지 한국에서 가져온 내 지사제 덕분인지 복통과 설사는 좀 진정되었다. 할머니는 걱정이 되셨는지 자다가 아프면 내려와서 자기 이름을 부르라고 하시고는 차를 끓여주셨다. 다음날 일어났더니 두 분모두 괜찮냐고 물어주신다.. 갑자기 맘이 바뀌어 뜨루히요로 나간다고 하자 할아버지는 친절하게 어디로 어떻게 가야된다고 손수 적어주셨다. 적어주셔도 난 해석을 못하는데 그래도 길가는 사람한테 보여주면 되니까 고맙게 챙겼다. 그러곤 할아버지는 버스가 올 때까지 내 옆에서 같이 기다려주시고 버스가 오자 버스안내원에게 이놈새키 아르마스 광장 간다고 내릴 때 되면 알려달라고 말까지 해주셨다. 어휴. 너무너무 고마워서 배낭에 있던 한국기념품을 주섬주섬 꺼내서 드렸다. 너무 좋아하셔서 다행. 손가락만 안다치고 밥값만 비싸지 않았어도 사나흘은 더 머무르고 싶었던 동네였는데.


죽 적어놓고 보니 참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딱 한 달남은 여행 어떤 사람을 또 어디서 만날지 기대된다. 예쁜 브라질 언니와 친해질 수 있는 기회가 왔으면 좋겠다. 으하하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