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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화자
메모. 본문
언제쓸지 모를 글 들이지만 요즘 보고 듣고 생각한 것들.
트위터.
맞팔은 기본이라는 사람들과 정보 습득의 미디어로 이용하는 나같은 사람들과 말이 너무 많다며 언팔과 블락의 간극 속에서 갈등하고 불평하는 사람들. 어쨌든 자명한 사실은 아즈마 히로키의 말대로 닫혀있던 개인의 텍스트를 공적인 공간으로 확산시켜준다는 것. 그게 어떤 가능성을 가졌고 결과를 보여줄지 모르지만, 한국의 보궐선거에서나 이집트 사태에서의 역할에서 보여줬든 그 영향력은 상당해 보인다. 이것이 또 언제 어떻게 쇠퇴하고, 어떤 미디어가 등장할지 궁금하다.
고 최고은 작가의 죽음.
다시 한번 언론의 문제를 보다. 조중동은 말할 것도 없이 요즘은 한겨레고 경향이고 한 마디로 다 찌질하다. 요즘의 언론은 보도가 아닌 보도에 대한 비판을 통해서 자기 정체성을 획득한다는 누구의 말처럼 어이가 없다. 옐로 저널리즘, 그래 찌라시가 아닌 신문이 없다. (손석춘의 신문읽기 혁명 2권이 나왔다. 필독리스트!)
구조의 문제를 당연하다는 듯이 받아들이는 체념이 여기저기에 만연해있다. 물론 나부터도. 물론 '굶어죽었다'는 선정적인 문구를 사용한 언론 탓에 논의의 핀트가 빗나간 감이 없진 않지만, 어찌됐든 나의 관점에서 보자면 한국의 예술계는 구조 자체가 몹시도 기형적이다. 고 이진원씨(달빛요정만루홈런)의 사후에서야 스트리밍 업체나 싸이월드 등과 뮤지션과의 기형적 수익 분배구조가 불거져 나왔고, 고 최고은 작가의 일이 발생하자 한국 영화계의 곰삭은 문제가 마치 새로운 것인냥 튀어나왔다. 전태일의 분신에도 여전히 노동과 노동 운동에 대한 차가운 시선이 여전한 한국에서 뭐가 얼마나 더 일어나야 이 잘못된 퍼즐이 그나마 분해될 수 있을지 답답하다.
글과 말.
영어에 대한 스트레스와 한국어에 대한 그리움으로 사무치는 요즘, 한국말을 할 기회가 생기면 너무 많이 말한다. 돌아서면 내가 왜 그랬지, 왜 그러는거지 라는 후회가 올 때가 많다. 칼을 뱉는 심정으로 말하고 써야한다. 그 칼은 나는 물론, 타인도 벨 수 있기 때문이다. 나의 소화되지도 숙성되지도 않는 글들을 기록하기 위한 곳이기도 하지만 어쨌든 타인이 봐주길 바라며 쓰는 글들이기 때문에 조금 더 조심하고 정제해서 쓰도록 해야겠다.
독서.
생각해보니 이 만큼 긴 시간동안 독서의 끈을 놓아본 적이 없다. 고3 수험생 시절에도 난 조정래 작가의 한강을 읽고, 잠자는 시간을 아껴 책을 읽었다. 한쪽으로 매몰된 독서편력은 전혀 이롭지 못하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막내 동생이 벌써 17살이다. 한국으로 돌아가면 무엇보다 많이 읽고 넓게 읽으라고 말해주고 싶다. 26살. 똑똑한 누군가들은 벌써부터 두각을 나타내고 나보다 앞서 나가고 있지만 조급해 하지말고 그 동안 지나쳤던 것들을 하나 하나 차곡차곡 밟아 나가듯 읽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