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화자

조정의 시간. 본문

사사로운 공간/캐나다

조정의 시간.

영원한 화자 2010. 9. 11. 15:38
하앜. 숨가쁘게 달려왔더니 어느 새 일기예보의 숫자가 한자리로, 9월의 달력도 어느새 두자리로 변했다. 난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 일을 그만둔다고 말했다. 적절한 약간의 일종의 미원같은 적절한 구라를 섞어서. 아무리 멀티컬쳐럴한 도시라지만 그래도 캐네디언 틈바구니에서 영어도 유창하지 못한 내가 끼어있으니 차별이 없진 않았다. 그렇다고 욕하거나 비하하거나 그런건 없어지만 나를 포함한 외국인-코워커중엔 인도친구와 스리랑카 친구가 한명씩 있다-친구들에게 대하는 태도를 보아하니 괜한 자격지심이 일었고 소스라치게 짜증이 솟구쳤다. 아니 이 새끼들이 날 뭘로보고.

일하는 시간도 그랬다. 오후 4시에 시작해 밤 12시~1시에 끝나는 일과는 항상 날 새벽 3시쯤에서야 잠들게했다. 힘든 몸을 이끌고 공부도해보려하고, 도서관에도 가보고, 운동도 해봤지만 낮과 밤이 바뀐 노동의 피로사는 우루사의 곰마냥 상대할 수 없이 거대했다. 결국 평소 수면시간이 6시간이 될까말까한 나의 수면시간은 우후죽순처럼 자라나 마침내 이것 또한 두자리수를 기록하게 되었다. 정리는 하지 못해도 청소는 하고 살았는데 청소마저 귀찮아졌다. 다른건 몰라도 먹는거 하난 기똥차게 잘해먹는 내가 이 놈의 땅에서도 라면이 주식이 되어버렸고 조금 더 신경을 쓰는 날엔 닥치는 대로 집어넣고 마지막엔 인류 최대의 발명품 굴소스를 투하하는 아나키스트적인 볶음밥이 주식이 되었다. 

한 달동안 제일 많이 했던 생각은 이러려고 온게 아닌데. 아 정말 난 이러려고 온 것도 아니고 이렇게 될 줄도 몰랐다. 각오는 했지만 설마 군대보다 힘들 줄이야. 이등병때 진지공사에서 하루죙일 뺑이치고 근무나가서 선임에게 걷어차였던 날보다 쪼금 더 서러운 날들이 많았다. 정확히 말하면 서럽다기보단 뭔가 더욱 진하게 한국을 그립게 만들었다. 그 더러운 광화문의 공기조차도.

아 그래서 이제 조정의 시간. 대한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해야하니 방전되서 아주 못쓰게 되버리기 전에 조정과 충전과 재활의 시간을 가져야겠다. 그래봐야 책을 읽거나 걷거나 음악을 듣거나 영화를 보겠지만 말이다. 아참 쇼핑.

이를 닦다 문득 아버지는 얼마나 힘이드셨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내 몸 하나 건사하면 되지만 아버지는 우리 여섯식구를 짊어지고 계신다. 더울땐 더운 곳에서 추울땐 추운곳에서도, 가장이라는 무게에 지탱해 여태 버텨 오신걸까. 그런 부모님의 기대에 충족되지 않는 삶을 사는 난 참 불효자다. 아빠한테 전화하고 자야지. 분명히 골프를 치고계시거나, 당구를 치고계시겠지만.

어쨌든 경험과 고생을 하러간다는 소기의 목적은 이미 달성했다. 나같은 놈은 고생을 더 해봐야되고 그래서 더 할 것이지만 이런 고생은 이제 그만. 내일 토론토에 에드뱅어가 온다는데 난 일을 해야되니까 아쉬운 맘에 땐쓰. 저스티는 안온다지만 그래도 땐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