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화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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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로운 공간/캐나다

독서

영원한 화자 2010. 7. 27. 11:41
드디어 일자릴 구했다. 그래서 남은 이 며칠을 야무지게 쓰고 싶었다. 느지막히 일어나 미드를 보며 아침을 먹고 또 미드를 보고 운동을 좀 하고 미드를 보며 밥을 먹고 뭐할까를 고민했다. 양껏 책이 읽고 싶었다. 근처 공원으로 가면 또 한두어시간 보다가 쪼르르 집으로 올 것 같아 퀸스파크로 가기로 했다.



후보정 좀 했더니 뭔가 팝아트적인 사진으로 변해버렸다. College st. 을 지날때마다 느끼는거지만 U of T (Universtiy of Toronto)는 정말 크다. 사회과학 쪽으로 꽤 발달해 있고, 칼 폴라니가 토론토 근교 피커링에 정착한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폴라니에대한 연구도 활발한 듯 하다. 홍기빈 교수도 여기서 박사학위를 받았다고.

여튼 크다!


여기저기 있는 벤치를 물색한뒤 자리를 잡고 Paul Auster의 Man in the dark를 읽기 시작했다. 모르는 단어 투성이지만 어쨌든 바득바득 우겨서 읽다보면 대충 스토리의 흐름과 문맥 상의 의미는 유추해 낼 수 있으니 재미삼아 공부삼아 읽고있는 책이다. 조금 보다 졸려서 책을 덮고 눈을 부쳤다. 그러나 이노무 개미들이 몸을 타고 오르는 바람에 잠이 달아나 다시 일어나 책 읽고, 사람 구경, 풍경구경 하기를 반복했다.


점점 서쪽으로 기우는 태양 덕에 나무가 더 이상 그늘을 만들어주지 못해 결국 다른 장소로 이동. 계속 영어를 읽었더니 눈이 팽글팽글 돌아 한 권 더 가져갔던 2009 이상문학상 작품집을 꺼내들었다. 2009년엔 내가 제일 좋아하는 김연수 작가가 이상문학상을 수상했다. <나는 유령작가 입니다>에 실렸던 <다시 한 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을 읽었다. 또 졸려 또 자고. 추레한 차림새가 자칫 노숙자로 보였을진 모르겠지만 덥지도 않은 것이 바람이 상쾌하니 너무 좋아 잠을 청했다. 어떤 이는 뜀박질을 하고, 어떤 이는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고, 어떤 이는 유모차를 끌고 지나가고. 하늘을 보고, 구름을 보고, 지나가던 갓난 아이의 얼굴을 한번 보고. 친구들은, 후배들은, 선배들은 빡빡한 서울에서 고생하고 있을텐데 여기서 나는 신선놀음이라니. 유쾌한 괴리감에 기분이 좋았다.


단편 하나를 읽어제꼈더니 시계는 8시를 향해가고 있었다. 4시간을 공연에서 빈둥거리다니. 너무 좋았다. 햐. 이런 삶이라니. 그저 내 몸 뉘일 작은 방과, 책과, 음악과, 영화만 있으면 죽을때까지 심심하진 않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