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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화자
이유. 본문
얼마 전 반가운 연락을 받았다. 함께 같은 회사에서 인턴을 하고, 인턴이 끝난 후에는 입사시험 스터디를 했던 동생이었다. 그 회사에서 합격했다는 소식을 알려왔다. 통화를 하면서 우리가 인턴을 했던게 언젠지 손가락을 꼽아봤다. 3년 만이다. 결국 3년 만에 그 친구는 목표를 이뤘다.
고등학교 동창회를 하고 돌아오던 날이었다. 증권사 대리가 된 친구, 대기업에서 일하는 친구, 경찰간부 시험에 합격해 청와대에서 근무하는 친구, 얼마전 아나운서가 된 후배도 떠올랐고, 판사가 됐다는 싸이코 동창놈도 떠올랐다. 행시를 때려치고 한방에 삼성전자 재무팀에 들어간 친구는 얼마 전 결혼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나는 뭐. 31세 무직이다.
31세 무직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봤다. 고등학교 때도 공부를 못하는 편은 아니었고, 대학에서도 학점은 낮지 않았다. 정치학이란 이상한 곳(!)에 꽂혀서 잠깐 헤매긴 했지만 괜찮은 공기업에서 인턴을 하기도 했고, 토익 점수도 나쁘지 않다. 어거지로 딴 HSK 점수도 있다. 그럼 난 나름의 목표를 이룬 친구들과 뭐가 다를까. 며칠을 생각했다. 내가 뭘 잘못하고 있는 것일까.
조급함이다. 거창한 목표를 세워두고도 나는 그것이 단기간에 이뤄지길 바랐다.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다시 도전했던게 아니라 방향을 바꿨던게 부지기수다. 대학원에 모두 떨어지고 나서 재정비를 하거나 다른 방안을 강구할 생각은 하지 않고 '아마 난 안 될꺼야'라며 체념했다. 취업준비도, 진학준비도 하지 않은 채 얼레벌레 마지막 학기를 다니고 있다가 얼떨결에 인턴이 됐다. 인턴을 마치고 그 회사 입사시험을 준비했을 때도 그랬다. 비전공자면서 겨우 1년 준비했으니 떨어지는게 당연한 법이다. 정말 그 곳에 가고 싶었다면 이를 악물고 1년을 더 준비했어야 했다. 물론 장남 컴플렉스와 체면, 경제적인 문제 등의 문제들이 있었지만 절실했다면 그런 것쯤은 이겨냈어야 하지 않을까.
투자자산운용사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12월 말부터 시작했지만 동영상 강의를 채 10개도 보지 않았다. 거시경제가 끝나고 포트폴리오이론으로 넘어가자 온갖 해괴한 공식들이 등장했고, 난 또 의욕을 잃고, 템포도 잃었다. 스멀스멀 내가 지금 이걸 하고있는 것이 맞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 우회로를 찾고 있었다. 남들보다 몇 권 더 읽은 책을 들먹이며 똑똑한 체를 했지만 결국 나는 끈기없는 병신이었던 것이다.
내가 그렇다고 정말 끈기라고 1%도 없는 병신은 아니다. 캐나다에서 스물다섯의 정력을 다해 접시를 닦으며 체화해 온 영어도 있고, 지도교수도 없이 집념으로 써 낸 3편의 논문도 있다. 아, 씨, 뭔가 더 적고싶은데 생각나는 게 없어서 안타깝지만 뭐 그래도 나름 이룬게 있다. 그러니까 그런 것을 떠올리면서라도 올해는 목표를 위해 정진하는 한 해가 되었으면 한다. 남들한테 인정받는 사람이 되진 못하더라도 나 스스로에게는 떳떳할 수 있는 노력을 하자 이 백수새끼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