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화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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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두 번째 이사.

영원한 화자 2015. 5. 31. 22:58

쭈욱 학교 앞에 살다 졸업을 하고, 인턴이 끝나고 이제 더 이상 학교 앞에 살 이유가 없어졌다. 워낙 외져있는 곳이기도 했고, 그 집은 정말 말도 안되게 좁았다. 전세 2000에 관리비 10만원 짜리 방이었으니 오죽했을까. 거기에서 나는 2년을 살았다. 좁은 공간에서 오는 스트레스와 소음에서 오는 스트레스는 정말 어마무시했다.


낙성대로 집을 옮겼을 땐 정말 좋았다. 여자친구와 밤을 새 짐을 싸고-그땐 우리 모두 백수였으니까- 아무런 연고도, 이유도, 사연도 없는 곳으로 옮겨왔다. 그저 집값이 싸단 이유로. 침대에 앉아서도 한창 공간이 남는 방바닥을 보면서 몇명이 누울 수 있는지 계산을 하며, 넓다, 진짜 넓다라며 혼자 중얼거렸다.


그렇게 넓었던 방이 점차 좁아지기 시작했다. 취직을 하며 평상시 전혀 입지 않았던 셔츠와 정장을 입기 시작하자 전국 방방곡곡의 원룸에 수백만개쯤은 놓여있을 옷장 하나로는 턱없이 부족함을 느꼈다. 행거를 사고, 돈에 여유가 있어지자 읽지도 않을 책을 사고. 방안에 들어있던 살림살이들은 원래 유기체였던 것 마냥 무럭무럭 손바닥만한 방을 채우며 자랐다.


좁다. 좁아. 전세자금 대출이란 것을 알게되고 나서부턴 무조건 넓은 집을 찾기 시작했다. 피터팬 카페에서 모든 게시물을 하루에도 몇 시간씩 클릭하길 며칠째. 넓은 방을 찾았다. 애초의 예산을 훌쩍 넘긴 8천만원 짜리 원룸이었지만 그냥 그때 살던 방보다 더 큰 곳이라면 좋았다. 여자친구의 말대로라면 "도망치듯" 그 집을 나왔다. 복비에 한달치 월세까지 주고 나와버렸다.


그 집을 3달만에 떠났다. 집주인은 인터넷에서 유명했다. 이미 여러 건의 송사를 치뤘고, 여전히 몇 건은 진행중이었다. 피터팬, 클리앙에는 내가 들어간 집에서의 고생담이 절절히 기록돼 있었다. 그 글을 찾은게 이사를 마친 당일날 밤이었다. 그즘 한 달은 정말 신경쇠약에 걸릴 정도로 힘든 시간을 보냈다. 지금 생각해보면 사서한 걱정이었지만 힘들게 이사를 한 결과가 그런 집이라니. 바로 윗층은 주인집이었는데 매일밤이면 주인 아저씨가 술에 만취해 욕을 하거나, 노래를 부르는 소리를 들어야했다. 아침에 출근 준비를 하고 있노라면 그의 코고는 소리까지 들려왔다. 방음이 형편없는 건지, 코고는 소리가 우렁찬 건지 궁금할 정도였다.


정말 이번엔 도망쳐 나왔다. 지방 발령이라는 뻔한 거짓말을 하고, 이번에도 복비와 청소비, 이사비 등 거의 백만원이 깨졌다. 그러나 이번에 구한집은 그야말로 로또 같은 집이다. 전세금을 3천만원이나 줄여왔는데 방은 더 크고 동네도 좋다. 큼지막한 냉장고와 넓은 부엌이 있어 한동안 하지 않던 요리를 다시 할 수 있게 됐다. 집 근처엔 시장이 있고, 자전거를 타고 10분을 가면 안양천도 있다. 기껏 경기도에서 서울로 입성한 여자친구 집과는 훌쩍 더 멀어졌지만 서울 올라온지 10년 만에 집 다운 집에서 살게 됐다. 


10년 전 서울에 올라올때 박스 세 개 들고 올라왔는데 일톤 트럭에 그득한 내 짐을 보며 묘한 감정이 일었다. 이렇게 사는거구나. 이런게 사는거구나. 뭐 이런 어른이 된 것 같은 기분.


홀가분한 일요일 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