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화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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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로운 공간/ijuswanaseing

야밤.

영원한 화자 2013. 4. 21. 02:25

야밤. 이라면 동어반복아닌가.

뭐 여튼. 

마트에서 맥주 피처를 3980원에 세일하길래 너무 많지만 괜히 한 병 주어 담았다.

제육볶음을 만들어 저녁을 먹으면서 맥주가 생각났지만, 꾹 참고 따지 않았다.

12시가 넘어 무한도전을 보다가 과자를 하나 까먹었는데, 무조건 반사처럼 맥주생각이 나서 결국 개봉.


티비를 봤으니 책을 읽어야지 하며 맥주를 마시며 황정은의 '백의 그림자'를 펴들었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문득 생각이 났는데, 황정은 내가 읽은 작가중에 유일하게 작품보다 목소리를 먼저들은 작가다.

창비 책다방 팟캐스트를 간간히 듣는데, 김두식 교수의 어색한 톤과 어투와 달리 황정은 작가의 목소리는 차분하여 듣기좋다.

사실 목소리가 너무 좋아서 책을 찾아봤다. 작가의 완성이 목소리는 아니지만, 목소리가 좋은 사람은 왠지 부럽고, 또 멋지다.

거기에 작품까지 좋으니. 금상첨화, 화료정점.


이런 분위기에 음악이 빠질 수 없지하며 뭘 틀을까 고민하다 데미언 라이스의 라이브 앨범을 틀었다.

첫 트랙으로 Delicate이 나왔다. 5월에 온다하니 어찌 찾아보지 않을 수 있겠는가 생각하며 전의를 불태웠다.


이놈의 시간이란 건 더럽게 빨라서, 어휴 벌써 스물여덟이네, 어이구 벌써 1월이 다 갔네, 어이구 벌써 봄이네, 어이구 벌써 4월이네, 어이구 벌써 생일이네, 어이구, 어이구, 어이구. 어이구 화들짝 놀라다보면 어느 새 시간은 그렇게 훌쩍, 훌쩍, 지하철에서 깜빡 졸았을 뿐인데 몇 정거장을 휘휘 지나친 것 처럼, 순간이동 한 것처럼 지나가있다.


그러면 또 무조건 반사처럼 드는 생각은, 더 많이 읽어야지, 더 많이 뛰어야지, 더 많이 공부해야지.

더 많이, 더 많이, 더 많이. 매달 중순을 지나며 결심한 '더 많이'만큼 더 많이 무언갈 했다며 내가 지금 이러고 있진 않겠지.

그러니 더 많이, 또 더 많이, '더 많이'를 외치며 더 많이 무언갈 해야한다. 그러면 내가 밥값을 하는 뭔가가 되어있겠지?


흐드러지게 핀 벚꽃을 보니 진짜 봄임을 느낀다.

고향인 군산에는 일본인들이 심어놓은 벚꽃나무가 잔뜩인 탓에 벚꽃을 특별치 않게 보고자랐다. 해마다 벚꽃 축제를 했지만 벚꽃축제가 '축제'인 이유는 야시장에서 틀어놓은 촌스러운 뽕짝과 여기저기서 굽고있는 비둘기인지 참새인지 모를 닭꼬치 냄새와 번데기 냄새, 부모님을 졸라 얻어먹던 이런 저런 길거리 음식 때문이었다. 근데 지금은 늙었는지 풍성하게 피어있는 벚꽃 그 자체가 축제처럼 다가온다. 아, 이제 춥지 않겠구나. 두껍고 불편한 오리털 잠바를 꺼내입지 않아도 되겠구나. 청바지 안에 불편한 내복을 입을까 말까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구나, 하는 계절이 온 거니까 축제는 축제다. 바람이라도 한 번 일렁여 눈발처럼 벚꽃잎이라도 날릴라치면 '아! 그림같구나!'하며 감탄사를 내뿜으며 축제를 만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