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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화자
21 본문
_ 스물한 살에 지금은 덩치가 엄청커진 어느 어학원의 계열사(?)에서 알바를 했던 적이 있다. 그 때가 생각나서 문득 웃음이 났다.
그날은 21살 여름. 그러니까 2학년이 되어 맞는 여름방학이었다. 새벽까지 술을 마시고 기숙사에 널부러져 있는데 알람이 울려서 일어났다. 머리는 깨질 것 같이 아픈데 그 와중에도 10시 반에 알바인수인계를 받는 날이란 게 무조건 반사처럼 떠올랐다. 알바에 뽑힌 과정이 웃겼다. 이모모씨냐며 전화가와서는 일 할 수 있어요? 네. 그럼 내일 10시 반까지 학여울역 어디어디로 오세요. 전광석화같은 채용과정. 효율의 극치.
수 없이 쏠리는 위장을 부여잡고 난생처음 학여울 역을 방문. 역에서 회사 건물까지는 왜이리 먼지. 어찌어찌 인수인계를 받고, 퇴사자 및 입사자를 위한 점심 회식이 있었다. 메뉴는 무려 근처 유명 중식당의 코스요리. 아 근데 이게 웬걸. 모든 메뉴가 새우가 아니겠는가. 전 날 술안주가 새우튀김이었는데. 새우탕수육부터 칠리새우, 거기에 해장의 정점을 찍는 새우마요까지. 사회 경험도 없었거니와 어려운 자리에선 절대 빼거나 거절하는 법이 없던 내가 나이가 나보다 한참이나 많은 분들 앞에서 내 앞에 친히 덜어주신 음식을 거절했다. "어제 새우튀김 안주로 새벽 까지 술을 마셔서 이건 좀..."
내 나이가 스물일곱. 생각해보니 21살의 새파란 어린 애가 그런 데서 일을 했다는게 웃음이났고, 그 때의 내가 참 기특하다. 초중고 시절엔 솔선수범해서 까불고, 선생님을 놀리고, 떠드는 데 선수였지만, 어쩐지 나는 어른들 앞에선 요조숙녀가 되는 이중적인 삶을 살았다. 지금도 그건 여전한데, 처음 해보는 회사 생활에선 얼마나 심했을까. 싹싹하게 말 한 번 제대로 붙이지 못하고, 그저 내 일만 하고 점심 먹으러가서는 묻는 말에 대답하는 게 전부였을 정도다. 대다수가 30대인 틈바구니 속에서 반바지를 입고 모자를 쓰고 10시반에 쭐래쭐래 출근하고, 7시가 되면 칼같이 퇴근하는 스물한 살의 내 모습이라니. 으하하, 지금으로썬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회식의 첫 경험(!)도 엄청났다. 대치동에 있는 그럴싸한 갈비집에서 회식을 했었는데 아니 무슨 술을 그렇게 빨리 먹는지. 잔이 비기가 무섭게 건배를 외쳤고, 눈치를 보며 이걸 다 마셔, 말어 고민하면서 비운 술 잔은 "아이고, 모모씨 술 잘 마시네!"하면서 평소 말 한 마디 나눠보지 않았던 대리님과 과장님들은 꼼꼼하게 내 잔을 채웠다. 다들 얼큰하게 취하자, 마치 대학생들 종강파티인냥 술병을 들고 이 테이블 저 테이블로 돌아다니던 직원들은, 하나 둘 내 옆에 앉아, 나이를 묻고, 내 나이에 놀라고, 잔을 비우는 나를 보며 놀랐다. 나이가 지긋했던 과장님은 옆에 앉은 여직원이 아직 노처녀라며, 나보고 누님께 한 잔 따라 드리라느니, 저 누나가 어떠냐느니하며 나를 희롱했다. 그곳은 아노미 상태였다.
얼큰하게 취해 회식자리를 나왔는데, 글쎄 2차를 가자고 했다. 여기가 좋니, 저기가 좋니 하는 사이에 난 슬쩍 인사를 하고 빠질려는 찰나, 얼큰 하게 취해서는 '왜 화장실에서 나한테 인사안했냐'고 꾸짖던 실장님이 나는 꼭 가야된다고 그랬다. 내가 왜? 그래요 모모씨 가요. 같이 가요. 하는 수 없이 따라 나섰던 어느 건물 지하의 호프집에서는 끝없는 맥주의 파도가 넘실거렸다. 어머니, 아버지가 비슷한 연배의 분들 사이에서 취해계신 모습을 본 적이 없던 나는 혹시나 당신들도 이러실까 궁금증이 들기도 했다. 그런 의문과 함께 다시 넘실거리는 500cc 생맥주의 파도. 아 그냥 한 잔씩 목축이며 얘기나 하며 될 것을, 열댓 명이 죄다 기립해서 소리를 지르고, 박수를 치며, 깔깔깔 웃고, 따끔거리는 목에 0.5리터의 알콜을 들이 붓는 광경은 여전히 생생하다.
지금도 어디에선가 알바를 하고 있다. 이젠 어딜가도 나이가 어리다고 놀라는 경우는 없다. 여전히 싹싹함도 붙임성도 없지만 그래도 나이를 먹으니 점심을 먹으며 시덥잖은 농담도 던지게 된다. 그러곤 회사로 돌아와 한 달 뒤에 있을 대기업들의 공채 일정을 확인한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 다는 시간이 6년이 흘렀으니 변할 법도하다. 그때의 난 이 여름과 가을이 지나면 다가올 군입대가 두려웠지만, 지금의 난 이 여름과 가을이 지나면 다가올 진짜 사회생활이 두렵다.
아. 딱 6년 전의 그 때로 돌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