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화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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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 - 제 정신을 갖고 사는 사람은 없는가

영원한 화자 2012. 2. 20. 15:42
제 精神을 갖고 사는 사람은 없는가
김수영 전집2(민음사, 1981), 139-144쪽

제 정신을 갖고 사는 사람은 없는가? 근대의 자아 발달사의 견지에서 민주주의 사회의 구성원으로서의 자격을 요점으로 해서 생각할 때는 극히 쉬운 문제이고, 고대 희랍을 촛불을 대낮에 켜고 다니면서 <사람>을 찾은 철학자의 견지에서 全人에 요점을 두고 생각할 때는 한없이 어려운 영원한 문제가 된다. 한쪽을 대체로 정치적이며 세속적이며 상식적인 것으로 볼 때, 또 한쪽은 정신적이며 철학적인 형이상학적인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本欄[靑脈 66.5]의 요청은 아무래도 진단적인 서술에보다는 처방적인 답변의 시사에 강점을 두고 있는 것 같고, 다분히 작금의 우리의 주위의 사회현상의 전후관계를 염두에 둔 고발성을 띠운 답변의 시사를 바라는 것 같다.

제 정신을 갖고 사는 사람은 없는가? 나는 이 제목을, <제 詩를 쓸 수 있는 사람은 없는가>로 바꾸어 생각해보아도 좋을 것 같다. 범위를 詩壇에 국한시켜 위선 생각해보자. 우리 시단에 詩人다운 시인이 있는가. 이렇게 말하면 <시인다운 시인>의 해석에 으레 구구한 반발이 뒤따라 오겠지만, 간단히 말해서 정의와 자유를 평화를 사랑하고 인류의 운명에 적극 관심을 가진, 이 시대의 지성을 갖춘, 시정신의 새로운 육성을 발할 수 있는 사람을 오늘날 우리 사회가 요청하는 <시인다운 시인>이라고 생각하면서, 금년도에 접해온 시 작품들을 한 번 생각해볼 때 내가 본 전망은 매우 희망적이다. 좀더 전문적인 말을 하자면 우리 시단의 경우, 시의 현실참여니 하는 문제가 시를 제작하는 사람의 의식에 오른 지는 오래이고, 그런 경향에서 노력하는 사람들의 수도 적지 않았는데 이런 경향의 작품이 작품으로서 갖추어야 할 최소한도의 예술성의 보증이 약했다는 것이 커다란 약점이며 숙제로 되어 있다. 그런데 이런 약점을 훌륭하게 극복하고 있는 젊은 작품들이 작품에 나타나기 시작하고 있다. 이것은 국한된 조그만 시단 안의 경사만이 아닐 것이다.

四월이 오면
곰나루서 피 터진 東學의 함성,
光化門서 목 터진 四月의 勝利여.

江山을 덮어, 화창한
진달래는 피어나는데,
출렁이는 네 가슴만 남겨놓고,
갈아 엎었으면
이 군스러운 부패와 享樂의 不夜城
갈아 엎었으면
갈아 엎은 漢江沿岸에다
보리를 뿌리면
비단처럼 물결 칠, 아 푸른 보리밭
― 申東曄 「4월은 갈아 엎는 달」에서


  제 정신을 갖고 사는 사람은 없는가. 이것을 이번에는 좀 범위를 넓혀서 시를 행할 수 있는 사람은 없는가로 바꾸어 생각해보자. 시를 행할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4월 19일이 아직도 공휴일이 안 된 채로, 달력 위에서 까만 활자대로 아직도 우리를 흘겨보고 있을 리가 없다. 그 까만 19는 아직도 무엇인가를 두려워하고 있다. 우리 국민을 믿지 못하고 있고, 우리의 지성을 말살하다시피 하고 있다. 그것이 통행금지 시간을 해제하지 못하고 있고, 윤비의 국장을 다음 선거의 득표를 위한 쇼오로 만들었고, 부정 공무원의 처단조차도 선거의 투표를 계산에 넣고, 노동조합을 질식상태에 있고, 언론자유는 이불 속에서도 활개를 못치고 있다. 그런데 이보다도 더 위험한 일은 지식층들의 피로다. 이것은 우리나라뿐이 아닌 세계적인 현상이라고 보면 그뿐이겟지만 좌우간 비어홀이나 고급 술집의 대학교수들이 모인 술자리에서 <목석같은 나이가 나를 울린다>를 부르면 좋아하지만, 언론자유 운운하면 세련되지 않은 촌닭이라고 핀잔을 맞는 것이 상식이다. 얼마 전에 모신문의 부정부패 캠페인의 설문을 받은 명사 궁ㄴ데에 바로 며칠 전에 그 집에 가서 한 개에 4천8백원짜리 쿠션을 10여개나 꼬매주고 왔다고 여편네가 나에게 말하던 그 노 경제학자가 있는 것을 보고 낙담을 한 일이 있었다.

  그러나 이런 일은 남의 일이 아니다. 남의 일로 낙담을 했다고 간단하게 처리될 수 없는 심각한 병상이 우리 주위와 내 자신의 생활 속에 뿌리깊이 박혀 있다. 나의 주위에서만 보더라도 글을 쓰는 사람들 가운데 6부니 7부니 8부니 하고 돈놀이를 하는 사람이 있다. 나 자신만 하더라도 여편네더러 되도록 그런 짓은 하지 말라고 구두선처럼 뇌까리고 있기는 하지만 할 수 없다. 계를 드는 여편네를 막을 수가 없고, 돈을 빌려쓰지 않을 수가 없고, 딱한 경우에 돈을 꾸어주지 않을 수가 없고, 돈을 꾸어주면 이자를 받는 것이 상식으로 되어버렸다.

  우리들 중에 누가 죄없는 사람이 있겠는가. 인간은 神도 아니고 악마도 아니다. 그러나 건강한 개인도 그렇고 건강한 사회도 그렇고 적어도 자기의 죄에 대해서 몸부림은 쳐야 한다. 몸부림은칠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가장 민감하고 세차고 진지하게 몸부림을 쳐야 하는 것이 지식인이다. 진지하게라는 말은 가볍게 쓸 수 없는 말이다. 나의 연상에서는 진지한 침묵으로 통한다. 가장 진지한 시는 가장 큰 침묵으로 승화되는 시다. 시를 행할 수 있는 사람의 경우를 생각해보더라도 지금의 가장 진지한 시의 행위는 형무소에 갇혀있는 수인의 행동이 극치가 될 것이다. 아니면 폐인이나 광인. 아니면 바보. 그러나 이 글의 주문의 취지는 英雄待望論이 아닐 것이다.
앞에서 시사한 유망한 젊은 시인들의 작품과도 유관한 말이지만 우리 사회의문화정도는 아직도 영웅주의의 잔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김재원의 「立春에 묶여온 개나리」나 신동엽의 「발」이나 「4월은 갈아 엎는 달」의 因數에는 영웅 대망론의 냄새가 아직도 빠지지 않고 있다. 이것은 한편으로는 아직도 우리의 진정한 정치적 안정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는 말도 된다.

  나의 직관적인 추측으로는, 표면상의 지식인들의 피곤에도 불구하고 역시 이들의 내면에는 개인의 책임에 대한 각성과 합리주의에 대한 이행이 은연중에 강행되고 있다고 생각된다. 결국 모든 문제는 <나>의 문제로 귀착된다.

  제 정신을 갖고 사는 사람은 없는가, 따라서 나는 내 정신을 갖고 살고 있는가로 귀착된다. 그리고 이 문제는 나를 무한히 신나게 한다. 나는 나의 최근작을 열애한다. 나의 서가의 페이퍼 홀더 속에는 최근에 쓴 아직 미발표 중의 초고가 세 편이나 있다. 「식모」「풀의 影像」「엔카운터誌」라는 제목이 붙은 시들―아직은 사실은 부정을 탈 것 같아서 제목도 알리고 싶지 않았는데―이 중의 「엔카운터誌」 한 편만으로도 나는 이병철이나 서갑호보다 더 큰 부자다. 사실은 앞서 말한 김재원의 「입춘에 묶여온 개나리」를 읽고 나서 나는 한참동안 어리둥절해 있었다. 젊은 세대들의 성장에 놀랐다기보다도 이 작품에 놀랐다. 나는 무서워지기까지도 하고 질투조차도 느꼈다. 그래서 그달치의 「詩壇月評」에 감히 붓이 들어지지 않았다. 그런 私心이 가시기 전에는 비평이란 쓰여지는 법이 아니다. 그러다가 그 장벽을 뚫고 나온 것이 「엔카운터誌」다. 나는 비로소 그를 비평할 수 있는 차원을 획득했다. 그리고 나는 여유 있게 그의 시를 칭찬할 수 있었다. 이것은 내가 「立春에 묶여온 개나리」의 작자보다 우수하다거나 앞서있다거나 하는 말이 아니다.

  <제 정신>을 갖고 산다는 것은, 어떤 정지된 상태로서의 <남>을 생각할 수도 없고, 정지된 <나>를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다. 엄격히 말하자면 <제 정신을 갖고 사는> <남>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그것이 <제 정신을 가진> 비평의 객체나 주체가 되기 위해서는 창조생활(넓은 의미의 창조생활)을 한다는 전제가 필요하다. 그리고 이러한 모든 창조생활은 유동적인 것이고 발전적인 것이다. 여기에는 순간을 다투는 어떤 윤리가 있다. 이것이 현대의 양심이다. 「입춘에 묶여온 개나리」와 나와의 관계만 하더라도 이 윤리의 밀도를 말하고 싶은 것이 나의 목적이었다. 「엔카운터誌」를 쓰지 못하고 「입춘에 묶여온 개나리」의 월평을 썼더라면 나는 私心ㅌ이 가시지 않은 글을, 따라서 邪心 있는 글을 썼을 것이다. 개운치 않은 칭찬을 하게 되었을 것이고, 그를 살리기 위해서 나를 죽이거나 다치거나 했을 것이다. 그러나 「엔카운터誌」의 고민을 뚫고 나옴으로써 나는 그를 살리고 나를 살리고 그를 <제 정신을 가진 사람>으로 보고 나를 <내 정신을 가진 사람>으로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니까 쉽게 말하자면 제 정신을 갖고 사는 사람이란 끊임없는 창조의 향상을 하면서 순간 속에 진리와 美의 全身의 이행을 위탁하는 사람이다. 다시 말해두지만 제 정신을 갖고 사는 사람이란 어느 특정된 인물이 될 수도 없고, 어떤 특정된 시간이 될 수도 없다. 우리는 일순간도 마음을 못 놓는다. 흔히 인용되는 예를 들자면 우리는 「시지프의 신화」에 나오는 육중한 바윗돌을 밀고 낭떠러지를 기어올라가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러한 自覺人의 세계의 대열 속에 미약한 한국의 발랄한 젊은 세대가 한 사람이라도 더 끼이게 된다는 것은 우리들의 오늘날의 그지없는 기쁨이다. 끝으로 《現代》지 4월호에 게재된 「立春에 묶여온 개나리」의 전문을 감상해보기로 하자.

開花는 강 건너 春分의 겨드랑이에 球根으로 꽂혀있는데 바퀴와 발자국으로 寧日 없는 鐘路바닥에 난데없는 개나리의 行列.
한겨울 溫室에서, 公約하는 햇볕에 마음도 없는 몸을 내맡겼다가, 太陽이 住所를 잊어버린 마을의 울타리에 늘어져 있다가, 副業에 궁한 어느 中年사내, 다음 季節을 豫感할 줄 아는 어느 中年사내의 등에 업힌 채 鐘路거리를 묶여가는 것이다.
뿌리에 바싹 베개를 베고 新婦처럼 눈을 감은 우리의 冬眠은 아직도 아랫목에서 밤이 긴 날씨, 새벽도 오기 전에 목청을 터뜨린 닭 때문에 마음을 풀었다가……
닭은 무슨 못견딜 짓눌림에 그 깊은 時間의 테로리즘 밑에서 목청을 질렀을까.
엉킨 未亡人의 繡실처럼 길을 잃은 세상에, 잠을 깬 개구리와 지렁이의 입김이 氣化하는 아지랑이가 되어, 암내에 참지 못해 請婚할 제 나이를 두고도 손으로 찍어낸 花甁의 執權의 앞손이 되기 위해, 알몸으로 都心地에 뛰어나온 스님처럼, 업혀서 亡身길 눈 뜨고 갈까.
금방이라도 눈이 밟힐 것같이 눈이 와야 어울릴, 손금만 가지고 握手하는 남의 동네를, 우선 옷 벗을 철을 기다리는 時代女性들의 目禮를 받으며 우리 아버지가 때없이 한데 묶어 세상에 업어다놓은 나와 내 兄弟같은 얼굴로 行列을 이루어 끌려가는 것이다. 溫度에 속은 罪 뿐, 입술 노란 개나리떼.


  이것은 제 정신을 갖고 쓴 시다. 이 정도의 제 정신을 갖고 지은 집이나, 제 정신을 갖고 경영하는 극장이나, 제 정신을 갖고 방송하는 방송국이나, 제 정신을 갖고 제작하는 신문이나 잡지나, 제 정신을 갖고 가르치는 교육자를 생각해볼 때 그것은 양식을 가진 건물이며 극장이며 방송국이며 신문이며 잡지이며 교육자를 연상할 수 있는데, 아직은 시단의 경우처럼 제나름의 양식을 가진 것이 지극히 드물다. 균형과 색조의 조화가 없는 부정의 건물이 너무 많이 신축되고, 서부영화나 그것을 본딴 국산영화로 관객을 타락시키는 극장이 너무 많이 장을 치고, 약광고의 선전에 미친 방송국이 너무 많고, 신문과 잡지는 보수주의와 상업주의의 탈을 벗지 못하고, 교육자는 <6학년 담임 헌장>이라는 기괴한 운동까지 벌이게 되었다.

  제 정신을 갖고 사는 사람은 없는가. 이에 대한 처방전인 나의 답변은, 아직도 과격하고 아직도 수감 중에 있다.
<1966.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