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화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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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그리고 당신에게 집이 없는 이유

영원한 화자 2012. 1. 16. 00:04


책에 대한 총평. 만약 당신이 이민을 손톱만큼이라도 생각해봤다면 이 책은 그 고민에 방점을 찍어주는 노릇을 해준다. 숫자 통계 하나로 삶의 비참함을 바닥 끝까지 송두리채 끌어내린다. 해결책을 말하고 있지만 이미 일부는 실패를 했고, 일부는 한국 사회에 적용하기에는 당장엔 너무 급진적이다. 그럼에도 유익한 책이 분명한 것은 왜 우리가 이러한 상황에 처했는가를 반추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수 많은 통계수치의 나열과 해석임에도 재미있는 것은 바로 '우리 삶'의 통계이기 때문이다. 이 책과 더불어 같은 출판사(후마니타스)에서 나온 발레리 줄레조의 '아파트 공화국'까지 읽게 된다면 이민에 대한 고민에 방점을 찍은 후 비행기 표를 사는 당신을 발견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손낙구가 통계 수치로 한국의 부동산을 해부했다면, 발레리 줄레조는 조금더 미시적인 관점에서 한국의 아파트 역사를 살피고, 그 안에 자리잡은 '아파트 문화'를 분석한다. 발레리 줄레조의 책이 조금 더 재미있는 편이다. 프랑스의 지리학자가 바라 본 한국의 아파트라니 신기하지 않은가?)


 

(지하철 버스 등에서 <부동산 계급사회>를 읽으며 오며가며 틈틈히 에버노트로 스케치 해 본 글이다. 에버노트의 맥북과 아이폰에서의 연동은 글쓰기를 더 편하게 만든다.)

  

  공부를 거듭하면 할 수록 한국은 참 신기한 나라다. 겨우 반 세기만에  전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발전을 이뤄냈고 세계 최초로 원소 수혜국에서 원조국으로 돌아선 나라가 아니던가. 경제규모는 물론 세계적 거시경제 지표나 기술력 순위에서 한국을 찾는 일은 이제 어렵지 않은일이 됐다. 우리는 이것을 한강의 기적이라 말한다. 그렇다 대한민국 국민들은 전지전능한 신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기적'을 행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이런 기적을 일으킨 국가와 국민들에게도 그 기적의 기반을 마련한 50년간 이룰 수 없었던 꿈이 있다. 바로 '내 집 마련의 꿈'이다. 한국무협협회 추산 경제효과 31조의 G20 정상회의를 개최했고, 400억 달러 규모의 원자력 발전소를 수출했으며-나중에 우리 돈을 퍼주는 '뻘짓'임이 드러났지만-, 지난 해에는 세계에서 9번째로 무역규모 1조달러의 반열에 올라섰지만 여전히 한국 국민의 절반 이상은 자기 소유의 집이 없다. 거 참 아이러니 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한국이 이렇게 발전한 기반이 된 것은 국민 하나 하나의 노동력이었을텐데, 세계 10위 경제대국이라 여기저기 떠벌리고 다니는 나라의 국민들 자기 집이 없다니. 그 많은 돈은 모두 어디로 간 것일까.


 손낙구의 분석에 따르면 우리 나라 부동산 시장은 크게 4번의 폭등기를 거쳤다. 1963년을 기준으로 했을때 2007년 서울의 땅값은 1176배가 올랐으며 대도시 땅값은 923배가 올랐다. 같은 기간동안 소비자 물가가 43배가 올랐으며, 비슷한 기간의 도시노동자 가구 월평균 실질 소득은 고작 15배 증가했다. 이 통계만 보더라도 평범한 노동자라면 우린 절대 집을 살 수 없다는 것이 명약관화해진다. 그렇지만 한국의 부동산 및 주택 정책이 기형적인지, 서민들이 얼마만큼 고통받고 있는지를 살펴보기 위해 이 불편한 통계를 좀 더 훑어보자. 4차 부동산 투기 때인 2000년~2005년 주택은 175만 채가 늘었지만 셋방 사는 가구 수는 615만에서 657만 가구로 42만 가구가 더 늘었다. 셋방 가구 중에서 전세 가구가 48만이 줄어든 반면 월세 가구는 90만 가구가 늘어났다. 셋방을 살게되면 당연히 이사를 다니는 횟수가 늘어난다. 인구이동률 통계에 따르면 1971~95년 사이 한국 전체 인구의 4분의1이 거의 매년 이동했다. 비슷한 시기 일본의 인구 이동률은 5.4%이며, 대만은 8.1%이다. 간단하게 말하면 한국인들은 세계에서 이사를 제일 많이 다니는 나라라는 거다.

 좀더 피부에 와닿는 통계를 살펴보자. 신혼부부 결혼 비용의 약 70%는 주택 마련비용으로 들어가며 이 마저도 대부분은 대출에 의존한다. 가계 부채의 70%는 부동산 관련대출이며며, 소득의 30% 가까이 이런 빚을 갚는데 쓰인다. 결국 쓸 돈이 없기 때문에 다른 소비를 줄이게 되고, 결국 내수 시장은 침체되기 마련이다. 결혼을 하려해도 집을 구하는 데 엄청난 돈이 들어가니 결혼이 늦어지고, 대출을 받아 집을 마련한다 하더라도 대출금을 갚기 위해 소비를 줄이다 보니 결국 이는 출산율에도 영향을 미친다. 자식을 대학까지 졸업시키는 데 드는 양육비가 2억이 넘게 되며, 신혼부부들은 ㅈ '집이냐 자식이냐'라는 선택의 기로에 서게된다. 저출산의 여파는 유아용품 시장에서 극명하게 나타난다. 분유 판매량은 02년~04년에 35%가 축소됐고, 유아복은 4년간(1999~2003) 매출액이 20%가 줄었다.

 혹시 주택이 부족해 이런 현상이 나타난건 아닌가 의심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2005년 통계청의 발표에 따르면 한국의 주택공급률은 105%로 전 국민이 가구당 한 채씩 집을 가져도 100만 채가 남는다고 한다. 그러나 2주택 이상을 보유하고 있는 전체 국민의 6%가 전체 주택의 49%를 소유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더 안타까운 것은 고위공직자들의 부동산 자산 소유가 두드러진다는 것이다. 2008년 통계에 따르면 고위 공직자 100명의 부동산 재산은 8909억으로 1인당 89억씩 소유하고 있다. 재테크 정신이 투철하신 가카께서는 당당히 1위에 이름을 올리시며 382억 가량의 부동산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이 지경까지 오는 동안 정부는 뭘하고 있었을까. 안타깝게도 부동산 정책은 정권을 잡기 위해 이용할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수단이었다.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로 이어지는 군사독재 시절엔 말할 것도 없고, 김대중 정부는 외환 위기 극복 수단으로 부동산 경기 활성화를 선택해 투기 방지 규제를 대부분 풀었으며, 이어 수도권 신도시, 기업도시, 행정도시 등의 각종 개발정책이 이어지면서 투기를 부추겼다. 부동산만은 꼭 잡겠다며 들어선 노무현 정부도 다를 바 없었다. 세계적 부동산 가격상승과 과잉유동성이라는 대내외적 상황을 감안한다손 치더라도, 결과적으로 크게 오른 부동산 가격은 그를 뽑아준 '서민'들을 울렸다. 뒤늦게 종부세의 영향으로 부동산 가격이 하락하기 시작했지만 다음 들어선 이명박 정권은 이를 원점으로 되돌려 놓았다. 건설사 CEO 출신답게 공급만이 살 길임을 천명하며 뉴타운, 재개발 사업에 열을 올렸고, 결국 누그러든 부동산 투기의 불씨에 불을 지폈다. 시민운동을 했던 박원순 조차도 최근 있었던 가락시영-염창 1구역에 대해 종상향을 결정하며 토건족들의 손을 들어줬다. 가락시영의 세입자 비율이 70%이고, 뉴타운 개발 지역민들의 재정착률이 37%임을 감안해본다면 결국 새로 들어설 아파트도 가진자들의 알뜰한 자산이 될 게 뻔하다.

  강용석의 고소로 한껏 주가를 올린 최효종의 계산식을 빌려와보자. 너그럽게 좋은 조건으로 계산을 해보자. 연봉 5000만원의 회사원이 강남(서초, 송파, 강남 기준)에 아파트 한 채를 얻으려면 20년 동안 숨만 쉬고 일을 하면된다. 그래 좀 재테크를 해서 돈을 불렸다 치자. 그래도 숨만 쉬고 15년을 일해야 한다. 그러니 내 집 마련은 '꿈'일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해결 방법은 없는 것일까? 손낙구의 지적처럼 사유재산의 이데올로기가 철저한 남한사회에서 부동산 정책을 급선회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렇다면 점진적으로 풀어가야 하는 게 당연하다. 가장 먼저 실질 거주하고 있지 않은 집에 대한 세금과, 고액 부동산 거래에 대한 중과세가 필요하다. 재벌의 배만 부르게 해줬던 아파트 선분양 제도와 분양 원가를 공개하고, 각종 특혜를 폐지해야 한다. 이보다 먼저 선행해야 하는 것은 국민들이 최소한의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정부가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손낙구의 추정치에 따르면 약 300만 가구 1000만 명 이상이 법정 최저주거기준에 미달되는 집에 살고 있다. 반지하는 물론이고, 아직도 비닐 움막이나 동굴에 거주하는 인구가 상당하다는 것은 세계 10위 경제 대국의 '국격'에 어울리지 않는 현실 아닌가.

  대한민국 국민들이 하나의 꿈을 더 갖게 되었다. 바로 '취업의 꿈'이다. 경제 생활을 하는 것이 '꿈'이 되어버렸으니 '내 집 마련의 꿈'은 저만치 더 뒤로 도망쳐 버린 상태다. 흔히들 '먹고 사는 게 일'이라고 말하지만 이런 상태로 가다간 '먹고 사는 것' 조차도 꿈이 되는 현실이 오지 않으리란 보장은 없다. 이런 현실을 바꿀 수 있는 것은 오직 한 가지, 국민들의 정치에 대한 참여 뿐이다. 지난 4년간 우리는 충분히 혹독하게 정치의 중요성을 학습했다. '닥치고 정치' 따위의 말도 결국은 정치에 대한 중요성 더 구체적으로는 참여에 대한 중요성으로 귀결된다. 부동산 얘기를 하다 갑자기 삼천포로 빠졌지만 어쨌든 방법은 정치뿐이니 어색하게 이렇게 끝을 맺을 수 밖에. It's the politics, Stupid! 


부동산계급사회
카테고리 정치/사회 > 사회학
지은이 손낙구 (후마니타스,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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