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화자

김연수는 노래한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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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는 노래한다.

영원한 화자 2010. 1. 10. 18:37
  
김연수에 대한 나의 애착은 대단하다. 군대에서 처음 접한 그의 책에 홀딱 반해, 소설책이라곤 거의 사는 일이 드물었던 내 책장에 꽂힌 그의 소설은 벌써 4권, 내가 읽은 그의 소설은 서너권 정도를 제외하면 거의 다 일것이다. 학기 중 언젠가 포럼 준비로 새벽 3시까지 발표문을 쓰고 논물을 헤집어 다니던 와중에도, 도서상품권을 얻기위해 김연수의 책 『나는 유령작가 입니다』의 서평을 학교 도서관 서평공모전에 제출했고, 상품인 만원짜리 도서 상품권 두장을 획득했다. 당연히 이 상품은 김연수의 책을 사는데 이용했고 남은 액수 일부는 루시드 폴의 새 앨범을 사는데 일조했다. 여하튼 최근 내 문학의 온 관심은 김연수에 집중돼있다.

  받자마자 샀던 책은 2008년 출간된 『밤은 노래한다』와 2009년 말에 나와 단숨에 베스트 셀러 차트에 이름을 올린 단편집 『세계의 끝 여자친구』였다. 무척이나 읽고 싶었던 책이었지만 포럼이 마치고 바로 이어졌던 수 많은 발표수업과 레포트 그리고 기말고사는 책 한장 넘길 틈을 주지 않았고 결국에는 방학 후 잉여생활의 방점을 찍는 도구로 활용되었다. 맙소사.

  혹시나 이 글을 읽고 『밤은 노래한다』를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면 나는 326쪽 부터 331쪽의 한홍구 교수의 해제부터 읽으라고 권하고 싶다. 수능에도 근현대사를 선택했었고(..응?) 최근 들어서도 근현대사에 대해 관심을 갖고 기웃기웃 거리기도 했지만 '민생단 사건'은 일반인들에게 조금은 낯설다. 그렇기 때문에 우선 해제를 읽은(반드시 331쪽'까지만' 읽어야 한다. 그 뒷부분은 본문의 내용이 요약되어있기 때문에 자칫하면 스포일러가 될 수 있다.)뒤 책을 읽으면 소설의 내용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을꺼라고 생각된다.

  각설하고 감상을 얘기하자면 이 소설은 한편의 장편 산문시라는 느낌이 들었다. 문장에서 우아함과 시적 감성이 뚝뚝 묻어나는 표현들을 워낙 잘 쓰는 작가이기도 하지만 소설의 시대적, 공간적 배경이 주는 어두운 분위기와 함께 그 문장들은 더욱 더 빛을 발한다.  " 눈동자. 내 눈동자. 두 개의 검은 눈동자. 서로 연결돼 있으되 귀와 코와 입과는 전혀 다른 기관. 듣고 맡고 맛보는 것만으로는 결코 이를 수 없는 단 하나의 감각. 바라볼 수 있다는 것, 그건 믿는다는 것. 그러기에 귀와 코와 입을 의심할 수는 있지만, 눈을 의심할 수는 없다는 것. 물론 내게도 그런 눈동자라는게 있었다. 하지만 캄캄했다. 그 무엇도 내 망막에는 맺히지 않았다. 검정이 검정을 직시할 수 없듯이 이 모든 암흑을 검은 눈동자는 바라볼 수 없기에 나는 어둠을 믿지 않았다. 그런 눈동자. 내 눈동자. 자신과 다른 것만을 알아 볼 수 있는 눈동자. 바라보는 바를 믿어 의심치 않는 눈동자. (후략)"  이 문단처럼 소설의 적재적소에는 종결형이 아닌 명사형으로 뭉툭하게 끝나는 문장들이 사용돼 해연(주인공)의 상황과 그가 느꼈을 감정들을 잘 나타내고 있다. 이렇게 이 소설에서는 시를 노래하는 시인들처럼 소설을 노래하는 김연수의 문장을 마음껏 음미할 수 있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내용도 압권이지만 '민생단 사건'을 가지고 소설을 쓴 김연수의 작가적 노력과 작가 정신이 존경심을 갖게 만든다. 읽은지가 꽤 되어 그 때 느꼈던 그 감상들과 느낌을 제대로 적을 순 없지만 여튼 또 하나의 수작이라는 것은 확실하다.


밤은 노래한다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김연수 (문학과지성사,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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