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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화자
관계 본문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밤에 어두컴컴한 5평 짜리 방안에 우두커니 앉아서 내가 맺고 있는 관계들에 대해 생각해봤다. 누군가들이 하는 것처럼 내가 힘든 상황에 있을 때 물불 안가리고 달려와줄 사람이 몇 있을까. 부끄럽지만 다섯 손가락을 다 펴기도 힘들다. 눈물이 핑 돌 정도로 슬펐다.
내가 타인과 맺고 있는 절대 다수의 관계는 점선에 불과했다. 언제라도 지워지거나 이어질 수 있는 불확실한 관계다. 내 필요에 의해서 만나는 것일 수도 있고, 타인의 필요로 의해 내가 만남을 당하는 것일 수 도 있다. 지금 당장은 웃고 떠들며 서로 칭찬하고 있겠지만 각자의 생활로 돌아가면 절대적으로 우린 타인이 되버린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 <잘 알지도 못하면서>에서 구감독(김태우)의 '술 한잔 살께요' 라는 말에 강팀장(엄지원)이 지키지도 못 할 약속을 왜 하냐며 날카롭게 쏘아붙이는 이유를 조금은 알 듯 하다.
어찌됐든 이렇게 편협한 관계를 반성해야 될 때인 것 같다. 바쁘다는 핑계로, 돈 핑계로, 이런 저런 핑계들로 만나기를 거절해왔다. 그러나 생각해보니 사람보다, 관계보다 더 중요한 핑계는 없다.
대학교 1학년 때 부터 언제나 내 삶의 가장 중요한 모토는 관계와 소통이었다. 3년이 지난 지금 소통은 모르겠으나 관계에 있어선 낙제점이 확실하다. A+의 성적표가 밥을 먹여주진 않는다. 내 모든걸 다 포기하고 공부에 매달려도 공부 시간과 성적표는 절대적으로 비례하진 않는다는 것을 이번 학기에 절실히 느꼈다-지지리 복도 없는나에게는 말이다.
이제 좀 주변을 둘러봐야겠다. 빠트리고 간 것들은 없는지, 두고 온 사람은 없는지. 어쩌면 내 자신 조차도 두고온지 모르겠다. 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