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화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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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로운 공간/ijuswanaseing

빈 자리

영원한 화자 2018. 11. 26. 22:22

아내가 2박 3일로 제주도 여행을 떠났다. 야호, 야호, 야야호. 친구들을 불러다 술판을 벌여볼까 했더니 A그룹은 선약, B그룹은 당직과 신혼의 이유로 무산되었다. 결국 친한 형, 동생과 만나 근황, 미래의 투자 트렌드, 내년의 목표에 대해 논하고, 오리탕을 먹고, 맥주 한 잔을 마시고 집으로 돌아왔다. 나가기 전에는 없던 아내의 가방이 식탁 위에 올려져 있다. 설레임으로 가득 채운 트렁크가 없어진 방 한 켠이 휑했다. 괜히 헛헛해져 편의점에서 캔맥주를 하나 사와서는 TV리모콘을 안주 삼아 마셨다. 채널만 뒤적거리다 잠자리에 들었다.

올해 초 유럽출장을 갔을 때 아내는 내 잠옷을 사람처럼 펴놓고 잔다며 사진을 찍어 보냈다. 그땐 그저 웃어 넘겼는데, 진짜 혼자 자려니까 옆이 허전했다. 작은 소리에도 잠이 깼고, 괜히 뭔가 불편해 뒤척였다. 주말에 같이 있으면 내가 아침을 먹고 싶기도 하고, 아내도 먹이고 싶어 일어나기도 하는데 혼자 있으면 그냥 총각때 처럼 배고픔을 무시해 넘긴다. 잠깐 소파에 앉아 또 애꿏은 채널만 돌렸다.

12시쯤 천안에 누나와 아빠를 만나 밥을 먹고 돌아왔데도 시간은 4시. 혼자 있으니 눈치볼 사람도 없고 집은 엉망진창이지만 치우고 싶지 않았다. 이리저리 발에 치이는 옷더미와 식탁위의 쓰레기를 무시하고 영화를 보고는 느지막히 저녁식사 준비를 시작했다. 밥을 하고, 국을 끓이고. 아내와 둘이라면 이걸 먹을까, 저걸 먹을까 고민했을텐데 혼자라면 그럴 고민없이 대충대충이다.

든자린 몰라도 난자린 안다고 했던가. 매일 같이 붙어있다가 이렇게 또 떨어져 있으니 내가 낯설고 내 생활이 낯설다. 아내가 돌아오면 더 잘해줘야지 생각했다. 마누라 빨리와라. 나 심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