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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화자 2014. 1. 30. 23:37




1980년대 말 사회주의 붕괴 이후 자본주의의 완전 승리에 지나치게 도취된 경험, 분석적 사회과학은 이제 그것이 몸담고 있는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 능력, 반성 능력을 상실한 채 온 세상을 완전히 자기조절 능력을 갖춘 시장으로 만들 수 있다는 착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이들은 인간의 정신을 다루는 인문학, 특히 과거를 반성하는 기회를 제공해주는 역사학을 완전히 무대의 뒷전으로 쫓아냈다. 이것이 범세계적인 지성의 위기, 대학의 위기, 인문사회과학의 위기를 불러온 중요한 요인이었다.


Philip G. Altbach, "An International Academic Crisis?: The American Professoriate in Comparative Perspective", 1997


- p.132, <한국의 지식인들은 왜 외환위기를 읽지 못했는가>, 김동춘



한국의 대학은 중병을 앓고 있다. 단지 그 구성원 누구도 그것이 중병이라고 공개적으로 떠들고 다니지 않기 때문에 마치 병이 없는 것처럼 보일 따름이다. 대학이 중병을 앓고 있다는 것은 도덕적으로 완전히 타락했다는 것만을 지칭하는 것은 아니다. 교수 채용 때 담함과 자기 사람 심기도 용납할 수 없는 현상이기는 하나, 더 심각한 것은 한국의 대학에서는 비판과 논쟁이 없으며 대학을 움직이는 논리가 학문이 아닌 정치와 경제의 논리라는 사실이다. 정치가 그러하듯이 자신의 사상과 입장을 세우려면 상당한 위험 부담을 안게 되는 한국의 현실에서 박사과정생들이나 젊은 학자들이 선배 교수들과 충돌할 소지가 있는 소신 있는 주장을 내세울리 없고, 따라서 미국에서 수입한 이론의 권위에 기대는 것만이 가장 안전한 길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니 대학이 연구기관으로 설 날은 까마득하고 교수들은 대학에서 그저 '교사'로만 만족해야 하는 실정인 것이다. 예로부터 주장이나 이론을 강하게 내세우는 사람은 성격적으로 원만하기보다는 고집이 세고, 따라서 공격적으로 보일 소지가 많은데, 우리나라의 이러한 대학에서 강한 주장을 내세우는 학자가 자리잡을 수 있을 것인가? 외환위기 사태가 발생하기 훨씬 이전부터 한국 대학의 사회과학 분과들은 큰 병을 앓고 있었다.


- 같은 책, p.142



사족. 98년에 당시 외환위기를 겪으며 왜 한국의 지식인들은 그러한 위기를 제대로 예측하고, 진단해내지 못했는가를 질타한 글이다. 15년 전의 글이지만 2014년 현재에도 뭐 하나 개선된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오히려 더 확실하게 기업과 시장의 논리에 포섭된게 작금의 현실이다.취업시장에선 '경영학, 경제학'만이 우대받고, 절대다수의 학생이 저 두 학문을 복수전공하고자 하는 지금의 한국이 경제적으로 올바르게 경영될지는 두고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