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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번역서?

영원한 화자 2012. 12. 4. 14:23



<교수신문> 추천 ‘최고의 번역서’들 이모저모

《삼국지》, 《군주론》, 《자본》 번역의 문제점
오창엽 기자 메일보내기

△ 왼쪽부터 《자본》독일어판, 영어판, 비봉, 이론과실천, 백의 번역서
ⓒ 프로메테우스 오창엽
설 연휴를 앞두고 고향길 채비를 하는 사람들이 많다. 친척 집에 가거나 음식 준비를 하는 집도 있을 것이다. 연휴 때는 공중파에서 영화도 많이 방영한다. 가족들과 먹고 놀고 텔레비전을 보며 휴식(?)하겠지만 오랜만에 일상에서 벗어나 그 동안 눈여겨 두었던 고전을 지겹도록 읽는 것도 명절연휴를 보내는 한 방법일 것이다.

지난 11일 <교수신문>은 7개월간에 걸쳐 진행된 ‘고전번역비평’ 특집 기사를 발표했다. 우리시대의 ‘최고 번역본’을 추천해 왔고 그 특집을 결산하는 것이었다. 기사의 제목은 <기획_교수신문, 최고의 번역본을 찾아서>이고 부제는 ‘국내 전공교수들의 추천 번역본…고전읽기는 제대로 된 번역서로 시작해야’다.

최근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통계를 보면, 만원 대에 머무르는 도서구입비는 그나마 신문구독료를 빼면 남는 게 없다. 반면 대입시험에서 논술의 비중이 커져감에 따라 대학과 일간지와 출판사들은 꾸준히 ‘고전읽기’를 강조하고 있다.

좋은 번역서 추천과 고전의 이해

고전이라는 게 대부분 외국 저작을 번역한 것들인데 그동안 학계에서 어떤 고전번역서를 선택해야 할지 추천하거나 평가하는 작업이 드물었다. 정확한 번역서를 선정하고 추천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좋은 번역서를 선택하는 것부터가 해당 고전에 제대로 접근하는 길을 찾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기획은 기획 자체로 의미가 깊다. <교수신문>은 “기본적으로는 10명 이상의 전공자들로부터 추천을 받는 것을 원칙으로 하였다. 물론 일부 고전의 경우 전문가들의 의견이 전혀 취합되지 않는 관계로 다수추천을 진행하지 못하였으므로, 원고를 집필한 전공학자의 의견을 바탕으로 추천번역을 밝혀두었다.”고 그 과정을 밝혔다.

<교수신문>이 선정한 고전 텍스트와 29종의 번역서

<교수신문>이 고전번역비평을 위해 진행했던 순서는 다음과 같다. 모두 29종이다. 6종은 중복됐다.

1. 논어 2. 근사록 3. 삼국유사 4. 맹자 5. 장자 6. 시경 7. 금강삼매경론 8. 루쉰소설 9. 사기열전 10. 삼국지연의 11. 이백·두보시선 12. 대학·중용 13. 주역 14. 수호전 15. 설국·마음 16. 국가 17. 정치학·시학 18. 군주론 19. 통치론 20. 자유론 21. 자본론·공산당선언 22.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비극의 탄생 23. 꿈의 해석

이 텍스트들을 대상으로 해서 전공자들과 <교수신문>이 추천한 해당 번역서는 다음과 같다.

△ 근사록 집해 I, II(여조겸·주희 엮음, 이광호 옮김, 아카넷 刊)
△ 삼국유사 1~2(이재호 옮김, 솔 刊)
△ 장자(장자 지음, 안동림 역주, 현암사 刊) 
△ 금강삼매경론(원효 지음, 은정희·송진현 옮김, 일지사 刊) 
△ 루쉰 소설전집(루쉰 지음, 김시준 옮김, 서울대출판부 刊)
△ 아Q정전(루쉰 지음, 전형준 옮김, 창비 刊) 
△ 사기열전 상·하(사마천 지음, 김원중 옮김, 을유문화사 刊) 
△ 史記(이성규 편역, 서울대출판부 刊)
△ 삼국지연의(나관중 지음, 김구용 옮김, 솔 刊)
△ 삼국지(나관중 지음, 황석영 옮김, 창비 刊)
△ 大學·中庸(김학주 역주, 서울대출판부 刊)
△ 大學 / 中庸 (박완식 편저, 여강 刊)
△ 譯註 周易本義(주희 지음, 백은기 역해, 여강 刊) 
△ 懸吐 完譯 周易傳義 上, 下(성백효 역주, 전통문화연구회 刊) 
△ 수호지 1~7(연변대학수호전번역조역, 청년사 刊)
△ 마음(나쓰메 소세키 지음, 박유하 옮김, 웅진 刊) 
△ 국가(플라톤 지음, 박종현 역주, 서광사 刊)
△ 정치학(나종일 옮김, 삼성 刊)
△ 군주론(니콜로 마키아벨리 지음, 강정인 옮김, 까치 刊)
△ 로마사 논고(니콜로 마키아벨리 지음, 강정인·안선재 공역, 한길사 刊) 
△ 통치론(존 로크 지음, 강정인 옮김, 까치 刊)
△ 자유론(존 스튜어트 밀 지음, 김형철 옮김, 서광사 刊)
△ 자유론(존 스튜어트 밀 지음, 서병훈 옮김, 책세상 刊)
△ 자본론(칼 맑스 지음, 김수행 옮김, 비봉 刊) 
△ 마르크스·엥겔스 저작선집1(칼 맑스 지음, 김세균 감수, 박종철출판사 刊) ·공산주의 선언(김태호 옮김, 박종철출판사 刊) 
△ 비극의 탄생(니체 지음, 김대경 옮김, 청하 刊)
△ 니체전집 13: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니체 지음, 정동호 옮김, 책세상 刊) 
△ 꿈의 해석(프로이트 지음, 조대경 옮김, 서울대출판부 刊) 
△ 꿈의 해석-프로이트 전집 4(프로이트 지음, 김인순 옮김, 열린책들 刊)

‘추천 이유’와 선정 결과의 문제점

<교수신문>은 각 추천번역서마다 짧은 ‘추천 이유’를 덧붙이고 있는데 두 가지 점에서 아쉽다. 우선 같은 종류의 텍스트에 대한 두 개 이상의 추천이 몇 개 있는데 비록 우열을 가리기 힘든 훌륭한 번역들일지라도 그 가운데 하나만을 선정해야 할 것이다.

연말 방송국에서 연기상에서 공동수상 남발이 볼썽 사나운 것처럼 단 하나의 번역서를 최종적으로 걸러내어 추천하는 것이야말로 이런 기획의 취지에 걸맞을 것이다. 가령 이 고전들을 전혀 접하지 않은 청소년이나 독자들이 이 추천 목록 가운데에서도 또 고민해서 고르게 할 게 아니라 말그대로 ‘최고’를 가려야 한다.

또한 익명의 추천 이유가 아니라 각 번역서 추천에 참여한 전공자들, 교수들, 학자들, 번역자들의 명단을 밝혀서 책임성을 높여야 할 것이다. 이견이 있었다면 다수 의견과 소수 의견을 밝혀야 하며 추천 이유를 작성한 사람도 밝혀야 한다. 비슷비슷한 수준의 번역 성과를 놓고 그 가운데서 하나만을 골라내는 게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그런 수고를 감당해야만 더욱 권위 있고 책임 있는 추천 결과로 남을 것이다.

난무하는 삼국지 번역 가운데 정역 김구용, 평역 황석영!

이제 추천번역서와 그 이유 가운데 몇 개를 구체적으로 소개하며 문제점을 지적해 본다. 우선 눈에 띄는 것은 《삼국지》에 대한 번역과 추천 결과다.

<교수신문>은 김구용이 옮긴 《삼국지연의》와 황석영이 옮긴 《삼국지》를 꼽았다. 전자는 “정역류로서 최고”이고 “적절한 주석을 싣고 있어”서 추천한다. 후자는 “전문성이 확실할 뿐만 아니라 한국 최고의 소설가 황석영이 특유의 필치를 발휘했다는 점에서 가히 ‘최고의 번역’이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난무하는 삼국지 번역서들”로 밀려난 이문열이나 장정일의 ‘삼국지’들에 대한 평가도 있었다면 어땠을까. 두 종을 추천했지만 하나는 정역이고 하나는 평역이니 그렇게 선정한 것도 적절한 결과로 보인다. 결국 평역서들 가운데 황석영의 번역이 제일 낫다는 것인데 이념적 차이가 확연한 번역자들 가운데 이문열을 황석영이 눌렀다는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 《군주론》(까치)와 《공산주의 선언》(박종철출판사)
ⓒ 프로메테우스 오창엽
《군주론》의 영역판 텍스트

다음은 《군주론》과 《로마사 논고》와 《통치론》이다. 강정인 서강대 교수가 번역했다. 강 교수는 “정치철학전공자로서 로크 사상과 연구에 있어 권위자로 인정받”으며 그의 “까치판 『통치론』은 각 대학과 대학원에서 두루 교재로 사용되며 로크사상을 대중적으로 널리 알리고 있다”고 한다.

안선재와 공역한 《로마사 논고》 번역은 “원전에 매우 근접해 있고, 가독성과 성실성 면에서 완성도가 높아 일반인과 전문가가 읽기에 부족함이 없다”고 하고 “무엇보다 정치철학자와 서구의 서술방식에 대한 권위자의 공역답게 마키아벨리가 사상사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끊임없이 고민한 흔적이 역력하고, 논쟁적인 부분에서 균형감을 잃지 않았다는 점이 돋보인다”고도 했다.

강정인의 《군주론》을 읽었을 때 번역이 상당히 매끄럽다고 느꼈다. 문제는 다른 데 있다. 강정인은 원어가 아닌 영역판을 텍스트로 했으며 영역판 가운데서도 왜 스키너와 프라이스의 《The Prince》(1988)를 선택했는지 밝히지 않았다.

이중오역의 위험, 안타깝고 한심하고 엄연한 현실

강정인은 《군주론》(까치)의 <역자 후기>에서 “옮긴이는 이탈리아어를 전혀 모른다”며 “영어로 된 「군주론」을 한글로 번역하는 수밖에 없는데, 이는 이중오역이라는 심각한 위험을 제기한다”고 고백했다. 그는 “고전이 쓰여진 원어에 능통하고 고전의 주제와 직접적으로 연관된 전공분야에 종사하는 학자가 그 고전을 번역하는 것이 이상적”이라고도 했다.

그리하여 강정인은 “이탈리아어를 모르는 옮긴이가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영역본에 의거하여 번역해야 한다는 사실은 일면 ‘안타깝고’, 일면 ‘한심한’ 일인 한편 ‘엄연한’ 한국의 문화현실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라고도 말할 수 있겠다. 이러한 현실은 가급적 빨리 타파되어야 할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한겨레 신기섭 논설위원은 “《로마사 논고》의 경우 ‘한국학술진흥재단 학술명저번역총서’로 지원받아 나온 것인데, 영어본을 번역한 것”이라며 “학술진흥재단에서 지원하는 사업도 이런 정도인 우리나라 학문 상황”이 부끄럽다고 지적했다. 강정인 교수의 연구와 번역 작업은 높이 평가할 만하며 그의 번역서가 훌륭하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그렇기에 더욱 아쉬운 대목이다.

<교수신문>은 이런 사정을 밝히지 않고 추천했는데 이런 문제는 쉬쉬 하며 감출 게 아니라 분명히 공론화해서 전공자들을 분발하게 해야 한다. 또한 전문번역자들에 대한 지원이 이루어지도록 학계와 정부의 노력을 촉구해야 한다.

맑스 《Das Kapital》과 《Capital》, 《資本論》의 중역

끝으로 문제의 저작이다. <교수신문>은 맑스의 《Das Kapital》의 추천번역서로 김수행 교수의 《자본론》을 꼽았다. 그 추천이유가 가관이다.

{‘국내 최고의 맑스 전문가’의 번역이란 점에서 ‘최고의 번역’으로 꼽히고 있다. 맑스 전공자나 맑스를 알고자 하는 비전공자들 가운데 김수행 번역을 거쳐 가지 않은 이들은 거의 없다. 영국에서 정치경제학을 공부한 학자로서의 역량을 총체적으로 발휘하고 있는 이 번역은 맑스 사상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바탕으로 개념의 정확한 번역과 충실한 주석, 쉬운 번역어 선택으로 맑스 사상으로 가는 가이드가 되어준다. 특히 한글화 작업을 비롯해 꾸준한 개역작업을 한 점도 높이 살만하다.}

이런 추천 이유를 독자들이 접하면 마치 흠결이 없는 완벽한 번역물과 번역자를 한국이 갖게 되어 무한한 자부심을 느껴도 될 지경이다. 어떤 교수, 전공자들이 이 번역서를 “최고의 번역본”이라고 추천했는지 그 명단이 몹시 궁금하다.

맑스의 《Das Kapital》 번역은 한국어로 세 종류가 있다. 백의판, 이론과실천판, 비봉판이다. “‘국내 최고의 맑스 전문가’의 번역이란 점에서 ‘최고의 번역’으로 꼽히고 있다”고 했는데 김수행 교수를 한국 최고의 맑스 전문가라고 할 수 있을까? 한국의 진보, 좌파 교수들의 연구의 폭과 깊이가 부족한 것은 사실이고 그 가운데에서 상대적으로 김수행 교수가 선배로서 기여한 면이 많다.

그렇다고 해서 ‘최고’나 ‘전문가’라는 말을 그렇게 쉽게 붙여서는 안 된다. 또한 최고의 전문가라고 해서 자동적으로 ‘최고의 번역’을 했다 보장도 없다. 맑스를 ‘경제학자’로만 가두어서도 안 되고 비봉판 《資本論》 역시 영역판(Penguin)의 중역이다.

정치경제학 ‘비판’이라는 핵심 놓쳐

이어 “맑스 전공자나 맑스를 알고자 하는 비전공자들 가운데 김수행 번역을 거쳐 가지 않은 이들은 거의 없다”고 하는데 백의의 《자본론》이나 이론과실천의 《자본》은 현재 서점에서 구할 수 없다. 이론과실천의 경우 MEW 23, 24, 25권을 텍스트로 한 번역이다. 통독의 경우 비봉판이 읽기 편하지만 《자본》의 경우 독일어판을 직접 읽지 못한다면 번역서들을 비교 대조해 가면서 읽어야 한다.

“영국에서 정치경제학을 공부한 학자로서의 역량을 총체적으로 발휘하고 있는 이 번역은 맑스 사상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바탕으로 개념의 정확한 번역과 충실한 주석, 쉬운 번역어 선택으로 맑스 사상으로 가는 가이드가 되어준다”라고 했는데 이것은 과장이거나 사실과 다르다.

김수행 교수는 맑스가 평생 작업해온 ‘정치경제학 비판’의 전체적인 의미와 핵심을 정확히 전달하지 않았다. 《자본》과 <정치경제학 비판 요강>(백의)의 연속성도 주목하지 않았다. 영국 정치경제학의 흐름이나 소련 정치경제학 교과서식의 관점으로 맑스의 《자본》을 이해하고 전파했기에 “영국에서 정치경제학을 공부한 학자로서의 역량을 총체적으로 발휘하고 있”다는 것은 일면 맞는 말이지만 그것은 영국 정치경제학에 대한 소개지 맑스의 비판적 작업의 온전한 의미를 담고 있는 게 아니다. 또한 “이 번역은 맑스 사상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바탕으로 개념의 정확한 번역”을 담았다고 하는데 ‘깊이 있는 이해’도 ‘개념의 정확’도 의문이다.

《Das Kapital》은 《자본》인가 《資本論》인가?

특히 “충실한 주석”은 사태의 왜곡이다. 《자본》 번역서의 충실한 주석이라면 맑스가 직접 붙인 각주를 빠짐없이 번역하고 MEW와 여러 독일어판과 영어판 등의 편집자나 역자들의 주석을 참조하여 소개하고 기존 번역서들의 주석 역시 참조해야 한다. 그런 가운데 번역자의 해설이나 의견, 기억해 둘 만한 정보와 출처들을 덧붙여야 한다.

이러한 주석 작업을 소홀히 한 번역서를 놓고 ‘충실한 주석’이라고 호도한다는 것은 추천자들이 김수행 교수의 《資本論》을 펴보기라도 한 것인지 의심스럽게 만든다. 그들이 존경해마지 않은 위대한 저자 칼 맑스는 각주를 꼼꼼히 작업하기로 유명한 저자인데, 정작 번역자도 추천자들도 학자로서 당연히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태도를 따르지 않는다.

아울러 《Das Kapital》의 번역판 제목을 《자본》이 아니라 《資本論》이라고 붙인 것도 바로잡아야 한다. ‘맑스 사상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바탕으로’ 정확한 개념을 파악하고 있다면 제목의 정확함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알 것이다. 번역서의 제목이 한번 어긋나면 후학들의 논문작업과 저술에서도 엄청나게 소모적인 갈등을 낳는다.

김태호 <공산주의 선언>은 “가장 신뢰할만한 번역서”

《자본》과 함께 《칼 맑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저작선집》(박종철출판사)과 《공산주의 선언》도 추천번역서로 꼽혔다. 1998년 150주년 기념판 <공산주의 선언>은 “엥겔스가 새로운 서문을 붙여 1890년에 출판한” 독일어 제 4판 <Das Kommunistische Manifest>를 텍스트로 했다. 추천 이유 전문은 다음과 같다.

{‘공산당선언’ 번역은 마르크스주의 운동과 결부되어 1980년대 이후 본격적으로 번역되기 시작했다. 1980년대 이후 번역출간 된 것은 총 13종. 이 가운데, 마르크시즘 전공자들의 의견을 조사한 결과 대부분이 박종철출판사 역을 “가장 신뢰할만한 번역서”로 꼽는 것으로 나타났다. 박승호 경상대 연구원 등은 “박종철출판사 역이 노력을 번역에 심혈을 기울였고, 치밀한 검토를 거쳤으며, 마르크스의 여러 초기저작들을 토론하는 가운데서 이뤄졌다”라고 평가한다. 박종철출판사 역도 2종이 있는데, 단행본은 선집에 비해 역주를 좀더 보충했고 한글로 매끄럽게 가다듬으며 오역부분을 검토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이와 관련 박종철출판사 김태호 대표는 《공산주의 선언》의 번역에 쏟아진 찬사에 대해 “그 동안 번역을 돌아보면서 아쉬운 부분들도 발견됐는데 ‘가장 신뢰할만한 번역서’로 꼽히게 되어 얼굴이 화끈거릴 지경”이라고 했다. 전문가들이 그 동안 번역된 <공산당 선언>들 가운데 가장 낫다고 평가했지만 번역자 자신으로서는 아직도 더 욕심이 남은 듯 하다.

한편 김태호 대표는 《자본》 관련해서 지난날 소장학자들 사이에 새로운 《자본》 번역을 해보자는 논의가 있었으나 “3권 전체를 한꺼번에 출간해야 하며 여러 난감한 사정이 있어 추진하지 못했다”고 아쉬워했다. 기존 번역서들을 대체할 새 《자본》이 필요하지만 워낙 방대한 작업이기에 초인적인 의지와 ‘자본’이 없으면 어려운 일이다. 그런 면에서 김수행 교수의 노고 자체는 충분히 인정 받을만하다.

원어와 주제에 정통한 전문가들의 공역이 필요

전문번역가이며 본격 서평 문화의 개척에 주력해온 강유원은 이 추천 번역서들에 대해 “김수행 교수의 《자본론》 번역이 ‘최고’가 아님은 분명하고, 읽을만하다고 해야 적절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박종철출판사의 《공산주의 선언》과 서광사의 《국가》에 대해 이견이 없지만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은 당연히 원전을 텍스트로 한 김완수, 천병희 공역을 꼽아야 할 것”이라고 논평했다.

학계와 정부는 전문번역자들이 충실한 번역서를 낼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하고 출판사 역시 원로에 대한 예우나 대학강단의 영향력을 고려할 게 아니라 제대로 된 번역자에게 맡겨야 할 것이다.

강유원은 “어떤 학자가 원어에 능숙하지 못할 경우 중역을 할 게 아니라 그 언어를 전공한 전문가와 공동번역을 하는 게 적절하다”는 의견을 밝혔다. 강정인 교수의 경우 마키아벨리와 정치철학 전문가로서 그 주제에 대한 식견은 높으나 그가 이탈리아어 전공자와 함께 작업했다면 ‘최고의 번역’으로서 꼽히는 데 손색이 없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