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화자

시뮬라크르 본문

공부할 것/예술

시뮬라크르

영원한 화자 2011. 12. 15. 05:50
 공부해야될 게 천지다. 얼른 읽어야 되는 건 벤야민의 기술복제 블라블라.


포스트구조주의의 대표적인 철학자 프랑스의 들뢰즈(Gilles Deleuze)가 확립한 철학 개념이다. 공간 위주의 사유와 합리적이고 법칙적인 사유를 지향하는 20세기 중엽의 구조주의 틀을 이어받으면서도, 포스트구조주의가 이전의 구조주의와 구분되게 하는 데 핵심 역할을 한 중요한 개념 가운데 하나이다.

시뮬라크르는 원래 플라톤에 의해 정의된 개념이다. 플라톤에 의하면, 사람이 살고 있는 이 세계는 원형인 이데아, 복제물인 현실, 복제의 복제물인 시뮬라크르로 이루어져 있다. 여기서 현실은 인간의 삶 자체가 복제물이고, 시뮬라크르는 복제물을 다시 복제한 것을 말한다.

그러나 엄밀한 의미에서 완전한 복제란 있을 수 없다. 사진을 찍을 때, 모델의 겉모습은 사진에 그대로 나타나지만 사진을 찍는 바로 그 순간의 모델의 진짜 모습을 담은 것은 아니다. 사진을 찍는 사건이 일어나는 순간적인 시점에 모델의 마음 속을 스쳐 지나간 수많은 생각·느낌까지 사진에 담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복제되면 복제될수록 진짜와는 점점 거리가 멀어진다. 이 때문에 플라톤은 시뮬라크르를 한 순간도 자기 동일로 있을 수 없는 존재, 곧 지금 여기에 실재(實在)하지 않는 것이라 하여 전혀 가치가 없는 것으로 보았다. 시뮬라크르를 정의할 때, 최초의 한 모델에서 시작된 복제가 자꾸 거듭되어 나중에는 최초의 모델과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뒤바뀐 복사물을 의미하게 된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그러나 들뢰즈는 역사적인 큰 사건이 아니라 우주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 즉 순간적이고 지속성과 자기 동일성이 없으면서도 인간의 삶에 변화와 의미를 줄 수 있는 각각의 사건을 시뮬라크로로 규정하고, 여기에 커다란 가치를 부여하였다. 들뢰즈는 이를 '사건의 존재론'으로 설명하는데, 그가 말한 시뮬라크르는 위의 시뮬라크르 개념과 다르다.

들뢰즈가 생각하는 시뮬라크르는 단순한 복제의 복제물이 아니라, 이전의 모델이나 모델을 복제한 복제물과는 전혀 다른 독립성을 가지고 있다. 이는 모델의 진짜 모습을 복제하려 하지만, 복제하면 할수록 모델의 모습에서 멀어지는 단순한 복제물과는 다르다는 것을 의미한다. 들뢰즈의 시뮬라크르는 모델과 같아지려는 것이 아니라, 모델을 뛰어넘어 새로운 자신의 공간을 창조해 가는 역동성과 자기정체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단순한 흉내나 가짜(복제물)와는 확연히 구분된다.

들뢰즈가 시뮬라크르를 의미와 연계시켜 사건으로 다루면서 현실과 허구의 상관관계를 밝힌 이후, 시뮬라크르는 현대철학의 중요한 개념으로 자리잡았다.



시뮬라르크의 미학 글쓴이 김주석

노 베르트 볼츠는 현대인의 지각이 두 가지 상반되는 경향을 갖고 있음을 지적한다. 무대상성을 향해 모든 가시적 형상을 지워버리려는 경향과 가시적인 대상을 복제하여 언제, 어디서나 제 곁에 두려는 경향이 그것이다. 회화가 인간의 지각을 표현한다면, 현대회화에서 전자를 대변하는 것은 모노크롬이나 컬러필드 페인팅과 같은 색면추상, 후자를 대표하는 것은 레디 메이드, 팝 아트, 하이퍼리얼리즘 등 대량생산된 사물이나 대량복제되는 영상을 사용한 미디어 아트일 것이다. 이론적 미학의 관점에서 볼 때, 전자가 '숭고의 미학'을 지향한다면, 후자는 '시뮬라크르의 미학'을 추구한다고 할 수 있다.

시뮬라크르는 '복제의 복제'라는 뜻이다. 그것은 '원본 없는 복제', '원본과의 일치가 중요하지 않은 복제', 나아가 '원본보다 더 실재적인 복제'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 말을 제일 먼저 사용한 것은 플라톤으로, 그는 이 개념을 정치인들과 연인들 중에서 진짜(복제)와 가짜(복제의 복제)를 가리는 맥락에서 도입한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그는 양자를 구별하는 명확한 기준이 없음을 깨닫고, "시뮬라크르의 심연"을 들여다 보는 아찔한 경험을 하게 된다. 들뢰즈는 이 인식을 새로운 맥락에서 철학과 미학에 도입한다.

벤야 민은 들뢰즈보다 앞서서 사진과 영화의 '시뮬라크르'적 성격을 지적한 바 있다. 원본 없는 복제인 사진과 영화는 그저 원본을 반복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원본을 능가하는 새로운 힘을 가지고 원본의 창작에 거꾸로 영향을 기치고, 나아가 원작의 존재 자체를 위협하는 특성이 있다는 것이다. 처음 사진이 등장했을 때만 해도 원작을 복사하는 데에 제 역할을 한정했지만, 곧이어 사진은 원작의 창작에까지 영향을 끼치게 된다. 가령 드가와 같은 인상파 화가들이 사진을 활용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사 진의 등장은 회화에 위기를 가져다 주었다. 이때부터 이 복제영상은 전통적인 회화를, 그것의 고유한 임무, 즉 가시적 대상을 재현할 의무에서 해방시키게 된다. 아울러 사진은 전통적인 회화로 하여금 자신을 모방하는 전도 현상을 낳게 된다. 가령 드가는 무희들을 묘사할 때 전형적인 카메라 워크를 연상시키는 특이한 앵글을 사용한 바 있다. 뒤샹의 '계단을 내려오는 나부'는 에띠엔느 쥘 마레의 크로노포토그래피를 활용한 것이다. 이탈리아 미래파들도 속도감을 나타내기 위해 사진의 연속촬영의 효과를 활용한 바 있다.

앤디 워홀과 같은 팝 아티스트들은 가령 '25개의 색으로 이루어진 마릴린 먼로'에서 볼 수 있듯이 사진을 복제하여 계열적 작품을 만들어낸다. 하이퍼리얼리즘 계열의 예술가들은 클로즈업된 사진을 연상시키는 작품으로, 언젠가 아트제가 사진으로 했던 효과를 사진을 통해 추구하려 한다. 언뜻 보기에 사진처럼 보이는 이들의 극사실주의 작품에서, 원본과 가상의 관계는 뒤집힌다. 과거에는 사진이 원본을 복제했다면, 이제는 원작 페인팅이 사진을 닮으려 하는 것이다.

현대인의 시뮬라크르적 지각은 대량생산으로 이루어진 현대의 사물세계를 반영한 것이다. 자본주의적 생산은 더 이상 유일물의 생산이 아니라, 하나의 코드에 따른 대량생산의 체계다. 여기서 생산은 곧 코드에 따른 재생산, 즉 복제의 형태로 이루어진다. 그런 의미에서 뒤샹이 유일하게 원작의 생산의 영역으로 간주되어 왔던 예술창작의 영역에 대량생산된 변기를 도입했을 때, 그는 사진이 아닌 실물로써 시뮬라크르의 미학을 실천했다고 볼 수 있다.

작품에 사진을 사용한다고 모두 시뮬라크르의 미학을 긍정하는 것은 아니다. 가령 프랜시스 베이컨과 같은 화가는 사진을 파괴하기 위해 사진을 사용했다. 그의 작품의 바탕에는 신문, 잡지, 사진첩에서 발췌한 다양한 이미지들이 깔려 있지만, 그는 사진이 참칭하는 그 사실의 기록적 성격을 파괴하기 위해 사진을 사용한다고 말한다. 사진으로 포착할 수 없는 더 근원적인 현실을 드러내기 위해 사진을 파괴한다는 것이다.

모네는 루앵 성당의 모습을 여러 장의 계열적 작품으로 표현함으로써 회화의 영역에서 변화된 현대적 지각의 특성을 드러낸 바 있다. 이렇게 예술에 도입된 시뮬라크르적 지각에는 두 가지 상반된 가능성이 내재되어 있다. 하나는 르네 마그리트의 연작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세계를 늘 새로운 눈으로 보게 해주는 창조적 가능성 (니체, 푸코, 들뢰즈), 다른 하나는 앤디 워홀의 작품이 증언하는 것처럼 동일자의 무한증식과 같은 현대사회의 소모적 가능성(보드리야르)이다.

한편, 미디어 철학자 빌렘 플루서는 시뮬라크르적 영상의 세계를 '기술적 형상'이라 부른 바 있다. 자연의 적대성을 극복하기 위해 주술적 수단으로 그림을 그리던 시대, 주술적/신화적 세계관을 인간이 낯설게 여김으로써 이를 선형적인 알파벳으로 세계를 기술하려던 시대, 이 두 시대에 이어 현대는 더 이상 세계의 기술로 여겨질 수 없는 알파벳의 위기를 맞아 이를 다시 영상화하려는 기술적 형상의 시대라는 것이다. 시뮬라크적 지각은 이제 회화만이 아니라 글쓰기에까지도 혁명적인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