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화자

'87년 체제'에 대한 논의 본문

공부할 것/정치

'87년 체제'에 대한 논의

영원한 화자 2011. 12. 6. 22:15
존스튜어트밀의 사상에 대한 레포트를 쓰다가 글이 삼천포로 빠지면서 87년 체제를 언급하다 문득 생각나 기사 몇 개를 포스팅. 나중에 몰아서 읽어볼 생각이다. 

 

87년 체제냐, 97년 체제냐.

 진보 사회과학계에 다시 한번 ‘체제논쟁’이 점화될 조짐이다. 논쟁의 중심에는 1990년대 후반 노사관계 연구자들에 의해 처음 사용된 뒤, 2000년대 중반 계간 <창작과 비평>을 통해 민주화 이후 한국 사회의 특성을 총괄하는 용어로 공론화된 ‘87년 체제’가 자리잡고 있다.

 손호철 서강대 교수는 9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한국 민주주의와 87년 체제’라는 주제로 마련한 토론회에서 “87년 체제론으로 대표되는 한국의 체제논쟁은 더이상 ‘주먹구구식’ 논쟁이 아닌, 경제체제와 정치체제의 결합체인 ‘사회체제’와 헌정·노동·정당·젠더 체제 등 다양한 ‘부분 체제들’을 구분하는 체계적 방식으로 진행돼야 한다”며 논쟁의 방향 전환을 촉구했다.

 지금의 한국을 규정하는 총체적 사회질서가 1987년 불완전한 민주화를 통해 형성됐다고 보는 ‘87년체제론’에 대해선 6월항쟁 20년을 전후한 2007년 무렵부터 다양한 논의들이 쏟아졌다. 87년체제는 없다”는 전면부정론이 나왔는가 하면, 87년체제는 1997년 외환위기와 함께 종결됐다”는 시효소멸론도 주목을 받았다.

 대선과 이명박 정부 출범을 거치며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던 논쟁은 촛불시위와 미디어법 파동, 용산 참사 등을 계기로 꿈틀대기 시작했다. 공고화 단계에 진입했다고 여겨지던 정치적 민주주의가 퇴행 양상을 보이면서 이른바 ‘민주화 체제’로서 87년체제가 갖는 과도기적 불안정성이 거듭 주목받기 시작한 것이다. 여기에 창비그룹이 최근 87년체제를 둘러싼 학계의 논의를 <87년체제론>이란 책으로 묶어낸 것이 발화점 구실을 했다. 책의 서문에서 김종엽 한신대 교수는 97년체제의 우위를 주장하는 손 교수 등의 주장을 “우파의 ‘선진화론’과 동일한 프레임에서 87년체제를 평면화하고 있다”고 비판했는데, 이번에 손 교수가 작심한 듯 창비의 87년체제론을 반비판하고 나선 것이다.

 손 교수의 비판은 창비그룹이 1987년의 질적 전환에만 집착한 나머지 그 이후의 전환, 1997 경제위기와 신자유주의 체제의 전면화가 갖는 의미를 부당하게 축소하고 있다는 데 맞춰져 있다. 비정규직의 주류화와 청년 실업, 사회 양극화 등 “97년 이후 나타난 근본적 변화를 목격하면서도 한국의 사회체제가 여전히 87년체제라고 주장하는 것은 현실에 눈먼 ‘색맹 사회과학’에 다름 아니”라는 것이다. 이런 손 교수가 볼 때, 87년체제는 헌정체제 같은 부분 체제의 의미는 있지만, 사회를 총체적으로 규정하는 사회체제의 의미는 소멸됐다. 비슷한 맥락에서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의 변화에 주목하는 ‘08년체제론’에 대해서도 손 교수는 “권위주의 회귀와 경제의 우경화가 나타나고 있지만, 97년체제의 특징인 제한적 민주주의와 신자유주의를 벗어난 것이 아니란 점에서 08년체제를 말하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일축한다.

 이번 논쟁의 무게가 간단치 않은 것은 체제 성격을 둘러싼 이론적 경합의 차원에 머무르지 않고 ‘반신자유주의 연합’(97년체제론) 대 ‘반이명박 연합’(87년체제론) 같은 정치전략과 연동된다는 데 있다. 1980~90년대 엔엘·피디간 사회 성격 논쟁이 ‘민주대연합론 대 독자세력화론’이라는 정치 논쟁과 짝을 이뤄 진행된 것과 같은 이치다.

 손 교수는 헌정·노동·민주주의·분단·젠더 체제 등 다양한 부분 체제에 대한 논의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하지만 손 교수의 논의에서 이들 체제는 사회체제의 ‘하위체제’ 성격이 짙다는 점에서 그 안에 담긴 정치적 의미는 비교적 명확해 보인다. 97년체제가 요청하는 반신자유주의 연합을 기축으로 다양한 ‘하위연합’을 접합시켜야 한다는, 일종의 반헤게모니 전략이다. 손 교수의 97년체제론을 ‘신자유주의 환원론’으로 비판해온 반대 진영의 반응이 기다려지는 대목이다.

  


 
 
일부 진보학계를 중심으로 제기돼온 이른바 ‘87년 체제’에 대한 논쟁이 정치권으로까지 확산되고 있다. 지금의 혼란한 정치상황과 정국을 뜨겁게 달구는 대형 정치쟁점들이 이 ‘87년 체제’라는 틀 속에서 파악하면 쉽게 이해되기 때문이다


일반인에게는 다소 생소한 ‘87년 체제’란 1987 6월항쟁의 결과물로 실현된 정치·경제·사회체제를 일컫는데 한나라당 박형준 의원이 동아대 교수(사회학) 시절 처음 썼고, 일부 학계와 진보논객들이 즐겨 사용하면서 일반화된 개념이다.

이들이 말하는 ‘87년 체제’의 핵심은 민주화다. 시민항쟁과 6·29선언으로 대통령 직선제 개헌이 이뤄지고 노동계를 비롯한 시민사회의 힘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표면적으로는 급속도로 민주화가 이뤄져 정치·경제·사회적 대변화를 겪게 된 출발점이 바로 1987년이라는 얘기다

1987
6월항쟁 이후 실현된 체제

하지만 최근 정치권에서 논의되는 ‘87년 체제’는 이 시기의 긍정적인 부분이 아니라 부정적인 측면을 겨냥하고 있다. 절차적 민주화는 어느 정도 이뤄졌지만 지역주의나 권력집중 현상 등 국가 발전을 가로막는 요소들은 여전히 개선되지 않고 있다는 인식에서다. 뿐만 아니라 이념 대립, 국론 양분, 사회 양극화 등의 원인도 거슬러 올라가면 ‘87년 체제’에 있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이렇게 본다면 정치권의 논점은 결국 1987년 형성된 정치구조에 모아질 수밖에 없다. 13김의 야합으로 탄생한 5년 단임제 권력구조의 현행 헌법과 그로 인해 열린 ‘3김씨에 의한 정치지배’가 도마 위에 오르게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정치적 용어로서 ‘87년 체제’란 지역주의, 권위적 통치구조보스정치, 금권정치, 줄서기 정치 등으로 대변되는 ‘3김정치체제’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계승이 아니라 극복의 대상인 것이다.

지난 10 18일 서울 중구 장충동 분도빌딩에서 열린 새정치연대(대표 장기표)의 정책토론회는 ‘87년 체제’에 대한 정치권의 이런 인식을 엿볼 수 있는 좋은 자리였다. 토론 주제부터가 ‘87년 체제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였다. 부제는 ‘지역구도와 권력집중을 극복할 정치제도 모색’이었다.

제목만 봐도 현 정국을 관통하는 쟁점과 딱 맞아떨어지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직을 걸고 추진하려던 대연정도 ‘87년 체제’를 극복하려는 것이고, 향후 예상되는 소연정론이나 선거구제 개편 등도 그 방향으로 가려는 방법론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손혁재 성공회대 교수(정치학)의 기조발제는 ‘87년 체제’가 향후 정치권의 키워드가 될 것임을 더욱 분명히 했다. 손 교수는 개헌과 선거구제 개편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뤘다. 87년 체제’를 극복하기 위한 핵심 방안으로 권력과 의회의 구조 개편을 든 것이다.




87년 체제’는 향후 정치권 키워드

손 교수의 논리는 ‘87년 체제 극복론자’들의 일반적인 인식과 크게는 궤를 같이 하고 있다. 나라가 잘 되려면 지역주의와 권력집중 현상이 해소돼야 하고, 그것은 ‘87년 체제’를 뛰어넘는 새로운 정치의 틀이 구축될 때 가능하다는 얘기다. 정치의 틀을 바꾼다는 것은 곧 개헌과 선거구제 개편을 의미한다.

먼저 개헌 논의부터 살펴보면 이는 노 대통령이 연정론을 제안하기 이전부터 꾸준히 제기돼온 문제다. 헌법은 이미 제헌헌법 이후 9차례에 걸쳐 개정된 역사가 있다. 평균 6년을 못 넘기고 폐기됐다는 계산이 나온다. 반면 현행 헌법은 1987년 개정된 뒤 18년 동안 단 한 자의 수정도 없었다

개정 당시의 국민적·시대적 요구는 장기집권과 독재정치를 막는 것이었다. 그래서 채택된 것이 5년 단임제와 대통령 권한 축소 등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런 요소들이 오히려 문제점으로 부각되고 있다는 게 개헌론자의 주장이다. 과반을 밑도는 국민 지지로도 권력을 독식할 수 있는 구조는 정파간 치열한 경쟁을 초래했고, 이에 따라 지역 등을 바탕으로 한 맹목적 극한적 대립구도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여소야대 상황에 대통령과 국회가 충돌할 때 이를 조정할 기능이 없는 것 등도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그래서 나온 것이 4년 중임제, 미국식 정부통령제, 내각제, 결선투표제, 분권형 대통령제, 이원집정부제 등이다. 현재 정치권에서는 표면적으로는 4년중임·정부통령제를 지지하는 기류가 대세지만 내각제를 선호하는 세력도 상당수인 것으로 관측된다.

선거구제 문제는 노 대통령이 연정 제안의 직접적인 이유로 꼽을 만큼 정치권의 중요한 이슈이기도 하다. 노 대통령이 주장하는 지역구도 타파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현행 소선거구제를 폐기하는 것이 급선무이기 때문이다. 현재 중·대선거구제, 독일식 비례대표제, 소선거구+일률배분 권역별 정당명부 비례대표제, 도농복합형 선거구제 등 복잡다단한 방식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날 토론회에는 열린우리당 민병두 의원, 한나라당 박형준 의원, 민주당 유종필 대변인, 민주노동당 주대환 정책위의장이 대안발표자로 참석했다. 이들은 ‘87년 체제’를 극복할 새로운 정치의 틀을 만들어야 한다는 데는 공감하면서도 현실적 어려움 때문에 그 실현 가능성에 대해서는 회의적이었다

노무현 정치목표도 ‘87년 체제’ 극복

우선 정치권에서 개헌에 합의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정부형태에 대해 정치권이 내각제의 유혹을 떨치고 4년중임·정부통령제를 채택하기로 합의한다 하더라도 기본권·영토문제 등 짚고 넘어가야 할 쟁점 조항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국회에서 개헌안을 의결하려면 의석의 3분의 2가 필요하다. 그런데 지금과 같은 논의구조 하에서 여야가 완전 합의에 이를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다

선거구제 문제는 그보다 다소 사정이 낫다. 과반 의석으로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론적으로는 이해관계가 비슷한 열린우리당과 민주노동당의 합의만으로도 가능하다. 하지만 한나라당이 이를 그냥 두고 볼 리가 없다. 한나라당이 반대하는 한 노 대통령이 원하는 지역주의 극복을 겨냥한 선거구제 개편 역시 이뤄질 수 없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그 실현 가능성과 별도로 이에 대한 몇 가지 시나리오가 제시되고 있기는 하다. 우선 개헌과 관련해서는 노 대통령이 직접 총대를 메는 상황을 설정하고 있다.

노 대통령은 스스로 표현한 적은 없지만 궁극적인 정치목표가 ‘87년 체제’ 극복에 있음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이를 위해 대통령 직을 던지거나 임기를 포기할 각오가 있음도 이미 피력한 바 있다. 그렇다면 내년 상반기쯤 개헌안을 직접 발의하는 방법이 있다. 2년 가까운 임기를 포기하는 것이기 때문에 국민적 동정심을 유발할 수 있고, 대권레이스가 본격화되기 전이라 차기를 노리는 정치세력의 반발도 최소화할 수 있다. 대통령직까지 걸면 반대자의 입지도 약화된다. 국회에서 통과되든 부결되든 사퇴하는 것이기 때문에 국민에게 진정성만 보여준다면 탄핵사태와 같은 국면으로 갈 수도 있다.

이런 시나리오가 나오는 것은 기상천외한 승부수를 던지는 노 대통령 특유의 정치스타일 때문이다. 하지만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게 정치권의 일반적인 견해다. 그보다는 선거구제 개편에 ‘올인’할 가능성에 더 무게를 두는 편이다.

이 시나리오는 내년 2월쯤 노 대통령이 소연정을 하든 민주노동당과 연대를 하든 열린우리당을 앞세워 국회에서 선거구제 개편안을 강행처리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정치판은 난장판이 되고 여론도 둘로 쪼개져 들끓을 게 틀림없다. 전략적으로는 이런 상황이 노 대통령에게 나쁜 것만은 아니다. 청와대와 여당도 상처를 받겠지만 지역주의 극복이라는 명분을 앞세워 ‘한나라당=지역당’으로 몰아붙일 수 있기 때문이다.

87년 체제’를 극복해야 한다는 데 시비를 거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 할지라도 그 방법론인 개헌과 선거구제 개편을 놓고는 이처럼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현 정국의 숨은 키워드인 ‘87년 체제’ 극복이 향후 정국의 폭발적 변수가 될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지역구도보다 먼저 타파해야 할 것들

87년 체제’ 극복 토론회를 개최한 장기표 새정치연대 대표

http://images.khan.co.kr/nm/647/a7-3.jpg노무현 대통령이 추구하는 지역주의 극복이 선거구제 개편으로 이뤄질 수 있는가에 대한 회의적 시각도 만만찮다. 손혁재 성공회대 교수는 “중대선거구제가 지역구도를 완화시킬 것이라는 주장은 검증되지 않은 가설”이라고 말했다. 주대환 민주노동당 정책위의장도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소선거구제가 지역구도와 깊이 얽혀 있기는 하지만 실체가 동일하지는 않다”라고 말했다. 유종필 민주당 대변인은 “지역구도란 말 앞에 ‘망국적’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것부터가 정치적 필요에 의해 확대·과장한 면이 있다”며 “정치제도를 화끈하게 뜯어고치는 것으로 쉽게 해결된다면 애당초 ‘망국적’이라고 하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노 대통령이 지역구도 타파라는 메시아적 소명의식을 벗어던져야 한다는 주문도 있다. 비판론자 가운데는 “노 대통령의 시계가 3당합당을 거부한 1990년에 멈춰 있는 듯하다”며 “그동안 정치권에 엄청난 변화가 있었는데 여전히 그때의 낡은 코드로 지역주의를 운운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박형준 한나라당 의원은 “지금 우리 정치에서 더 문제가 되는 것은 합리성의 결여”라고 주장했다. 이를테면 진보진영에서 한나라당을 그냥 ‘수구 꼴통’으로 몰아붙이고, 보수진영이 반대편을 친북좌파니 빨갱이니 하면서 서로간의 대화 자체를 불가능하게 하는 것이 더 큰 문제라는 것이다. 장기표 새정치연대 대표도 “진보진영에서도 합리적인 주장을 했다가 따돌림 당할 수 있다”며 “집단심리든 그런 분위기든 그런 점이 우리가 먼저 극복해야 할 ‘87년 체제’라고 본다”고 말했다.

긍정적인 의미의 ‘87년 체제’를 쟁취한 주역 중에 하나가 당시 민통련을 비롯한 재야세력이었다. 그 재야세력이 부정적 의미의 ‘87년 체제’를 심화시키는 데 일조했다는 주장도 있다. 재야는 1987년 대선을 앞두고 이른바 ‘비지’ ‘후단’ ‘백본’ 등으로 극심한 분열상을 보였다. 그 뒤 일부는 기성정치권에 흡수돼 정치적 입지를 구축하고 신선한 바람을 불어넣기도 했지만 재야 자체는 사회적으로는 몰락의 길을 걸었다.

장 대표는 ‘87년 체제’ 극복 토론회 인사말에서 “여기 분도빌딩은 1987 6월 승리의 산실인 민통련이 출범해 둥지를 튼 곳”이라며 “20년 후 바로 그 자리에서 ‘87년 체제’ 극복 토론회를 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감회를 밝혔다.



<
신동호 편집위원 hudy@kyunghyang.com>





-
87년 체제’의 의미-


임혁백=현 체제는 ‘87년 체제’가 아니라 ‘97년 체제’로 보는 게 정확할 겁니다. 87년은 정치적 민주화가 이루어진 해입니다. 그런데 97년 외환위기를 계기로 세계화 시대의 민주주의, 즉 신자유주의가 자유민주주의와 결합한 체제로 바뀌었기 때문에 현재는 97년 체제 하에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그런데 현재를 87년 체제로 받아들이면서 이야기한다면, 87년 체제는 6·29 선언이라는 정치적 협약으로부터 출발했지요. 사회·경제적 개혁에 대한 언급 없이 민주적 경쟁을 회복하는 협약이었습니다. 여기에 노동자들이 강력하게 반발했는데, 87년 노동자 대투쟁이 그것입니다. 87년 체제 하에서 정치적 자유와 민주화는 빠르게 확산됐습니다. 노태우 정권의 권위주의 잔재 청산, 김영삼 정권의 문민화 그리고 김대중정권에서는 동아시아 최초로 여()에서 야()로 평화적 정권교체가 있었습니다. 노무현 정권 하에서 탈권위주의 정치개혁이 있었고 정치적 부패도 상당히 척결됐습니다. 그러나 97년 이후 IMF체제에서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이 시작되면서 경제·사회적 시민권은 오히려 위축됐다고 봅니다. 그 결과 비정규직 문제, 부동산 폭등에 따른 자산 양극화, 불평등한 계층·계급 구조가 심화되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박세일=87년 체제는 우리나라에 본격적인 민주화를 성공시킨 체제라 볼 수 있지요. 해방후 40~50년대는 건국의 시대, 60~70년대 산업화 시대, 80~90년대는 민주화 시대였습니다. 87년 체제든 97년 체제든 큰 흐름에서 민주화입니다. 정권 교체를 이루었고 군부 독재를 종식했습니다. 이제 21세기 정치 분야의 과제는 ‘민주화 단계’를 넘어 ‘자유화 단계’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절차적 측면에서 민주주의는 투표를 통해 정권을 바꿀 수 있는 것이죠. 그렇게 생긴 정부가 법치를 지키며 국민의 재산과 생명, 자유와 인권을 떠받드는 정부가 될 때 그것이 ‘자유화’입니다. 민주화와 자유화에 성공해야 자유민주주의죠. 자유민주주의로 가는 데 장애로 등장하는 게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입니다. 포퓰리즘이 성공하면 국정 운영의 원칙과 전문성은 무시되고 법치주의는 후퇴합니다. 입헌주의, 사법부의 독립, 언론의 자유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이 정착할 때 자유민주주의가 성립하는 것입니다. 공화주의적 민주주의로 나아가는 국민 의식 개혁이 있어야 합니다. 공화주의적 민주주의에서는 공익을, 각자가 자신의 집단이익을 자제하면서 공동체 전체의 이익을 함께 찾아가는 것으로 이해합니다.

임혁백=97년 체제가 안고 있는 문제는 신자유주의적인 시장 만능주의, 사회적 불평등이 커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불평등의 심화는 자유의 존립을 위태롭게 할 수 있어요. 신자유주의를 제어하기 위해 박교수가 말씀한 공동체주의, 공화주의도 바람직한 생각이라고 봅니다. 결국 공동체 입장에서 사회를 바라보고 적극적으로 공적인 문제에 참여해 공적인 이익을 지키기 위해 투쟁도 불사하는 공적인 인간, 공적인 시민 의식이 있어야 합니다.

-
세계화, 신자유주의와 불평등문제-

박세일=신자유주의 이후 사회경제 분야의 각종 불평등이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큰 도전이라는 문제제기에는 동감합니다. 하지만 급속한 세계화 속에서 사회·경제적 불평등이 커지는 나라도 있고, 줄어드는 나라도 있어요. 차이를 보면 세 가지 면에서 특징이 있습니다. 세계화하면서 불평등이 줄어드는 나라는 ‘고도성장 국가’이고, ‘교육개혁’에 성공한 나라가 많고, ‘효율적 사회안전망’을 갖고 있지요. 이 세 가지를 반성하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가 나옵니다.

임혁백=97년 이래 진보·개혁 세력이 사실상 집권했는데 그 세력의 지지기반이 취약해진 것은 신자유주의적 경제 정책을 취했기 때문입니다. 성장과 분배, 성장과 복지의 동반성장을 이야기했지만 이루어지지 않았어요. ‘런페어(learnfare·학습복지)’를 통해 시장에서 탈락한 노동자의 능력을 키우고, 유능한 인력이 양성되면 ‘워크페어(workfare·노동복지)’로 노동자들에게 일자리를 찾아주는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을 펼쳐야 합니다. 동시에 사회적 약자에 대해서는 국가가 최소한의 생활을 보장해주는 전통적 사회복지(welfare)를 펼쳐야 하고요. 그런데 세계화 시대의 문제는 그런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데 국가의 능력이 제한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자발적 시민사회의 협력과 같은 공식을 모색해야 합니다.

87
년 체제와 지역주의-박세일=우리나라 정당은 가치집단이 아니라 이익집단입니다. 한국 정당 구조의 특징은 ‘인물 중심의 사당’이고 ‘지역 중심의 지역당’이죠. 지금까지 대선을 보면 인물이 있고 그 인물 중심으로 정당이 생기고 정당간에 지역 연합해 정권을 잡는 식이었습니다. 국민들은 새 대통령이 무슨 정책을 어떻게 할지 잘 모르고 투표합니다. 그리고 나중에 실망하죠. 형식적·절차적 민주주의는 했지만, 내용은 인물·이미지 중심이고 지역주의 투표 행태입니다. 그러니 ‘새로운 국가 리더십’이 나오지 않는 거죠.

임혁백=87년 이전까지 정치의 기본적 균열 구조는 민주 대 반민주였고, 민주화가 진전되면서 그 구도가 약화됐습니다. 이 경우 다른 균열선을 따라 지지를 호소해야 하는데 쉽게 동원할 수 있는 게 지역감정, 연고주의였지요. 3김 정치의 핵심은 지역할거정당 체제이고, 인물 중심의 보스정당과 더불어 87년 체제의 특징이자 한계죠. 3김 정치가 사라지면서 지역주의는 약화되고 있습니다. 2002년 대선에서 여전히 지역주의적 투표가 견고한 것으로 나타났지만 젊은 세대가 참여해 대통령을 만들어냈어요. 87년 체제의 지역간 불평등·불균형이라는 ‘동서 균열선’은 97년 체제의 양극화 심화와 중앙·지방간 ‘남북균열선’의 형성으로 약화되고 있습니다. 양극화가 지역주의를 약화시키는 역설적 효과를 내고 있는 것이지요.

-
시민정치세력 ‘미래구상’의 등장-

임혁백=미래구상은 한나라당이 절대우위를 보이고, 열린우리당이 해체되며, 민주노동당은 이념적 급진성으로 대안이 될 수 없는 정치지형 하에서 진보개혁세력의 공백을 메우는 제3 대안으로서의 가능성은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시민사회의 정치참여운동에는 한계가 있어요. 시민사회가 직접 정치권력 장악에 나서는 순간, 그 시민사회는 파당적 이익을 대변하는 존재로 격하되고 도덕적 우위를 상실하게 됩니다. 대선 국면에서 진보적 시민사회가 할 일은 갈라진 진보개혁세력을 재통합해 집권 가능한 정당으로 거듭나게 하는 데 지원하고 감시를 게을리하지 않는 것이죠.

박세일=미래구상의 내용을 정확히 몰라서 코멘트하기 어렵습니다. 다만 진보진영의 학자와 사회운동가들이 모여 지난 4년간 노무현 정부의 정책을 평가하면서 우리나라에 보다 맞는 21세기형 새로운 진보의 정책프로그램을 구상하겠다고 나서는 것이라면 바람직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우리 사회에는 빈곤, 차별, 불평등 해소 같은 진보적 아젠다가 여전히 많고 중요하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2007
년 대선·2007년 체제의 시대정신-

임혁백=대선 선택의 세 가지 기준이 있습니다. 평화와 안전(peace), 번영(prosperity), 민주주의(democracy)입니다. 87년 체제가 이룩한 정치적 자유를 더욱 확장시키고 정치적 민주화를 사회적 민주화로 확산시키는 것이 시대정신이 될 것이고, 97년 체제가 낳은 양극화와 비정규직 문제의 해결방식이 중요한 선택의 화두가 될 것 같아요. 평화 측면을 보면, 국민들은 햇볕정책이 한반도의 평화를 가져다주는 유일한 길이라는 인식이 있었는데 북한 핵실험 이후, 햇볕정책과 다른 대안도 거론되고 있습니다. 2007년 체제 하에서 정치적 자유의 문제보다 평화와 번영의 문제가 좀더 중요한 이슈로 부각될 것 같습니다.

박세일=2007년 이후 시대정신은 ‘선진화’로 정리할 수 있어요. 정치·사회·경제 각 분야에서 세계 일류 국가가 되는 것입니다. 경제적으로는 1인당 3만달러 수준에 들어가야 합니다. 이번 대선이 ‘어떻게 대한민국을 선진국으로 만들 것인가’하는 비전, 전략, 정책이 경쟁하는 장이 됐으면 좋겠어요. 보수와 진보의 자성부터 있어야 합니다. 한국에는 ‘정치적 보수’는 있지만 ‘철학적 보수’가 적어요. 진보 역시 ‘정서적 진보’는 있지만 ‘정책적 진보’는 약하지요. 철저한 거듭남을 통해 새로운 선진화세력이 만들어져야 합니다.

임혁백=원래 진보는 국제주의적이고, 평화지향적입니다. 지나친 민족주의와 통일 지상주의는 오히려 통일을 저해할 가능성이 있어요. 남북간의 공존과 한반도 평화를 위한 국제적 협력이 병행돼야 평화가 지속됩니다. 번영과 관련해 진보가 일방적으로 나눠주는 분배에 치중하면, 중산층까지 껴안을 수 있는 기반이 약화됩니다. 성장 정책의 일환으로 분배 정책을 내놓는 게 중요하다고 봅니다.

박세일=평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맘에 걸려요. 도대체 누구를 위한 평화입니까. 평화통일이란 말은 그럴듯하지만, 악용하면 북한 인민의 고통을 연장하는 정책이 될 수 있습니다. 대북정책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 해요. 또 우리 경제의 실업, 빈곤, 양극화 문제를 풀려면 추락한 성장잠재력을 다시 살려내야 합니다. 진보·보수 모두 답을 내놔야죠.

임혁백=‘고용 없는 성장’이 야기한 사회적 양극화의 문제가 해결돼야 합니다. 기업의 투자의욕을 저하시키지 않으면서 ‘고용 없는 성장’을 ‘고용 있는 성장’으로 바꿔놓으려면 사회적 일자리를 창출해야 하고, 그 사회적 일자리 창출에 드는 비용을 나누는 데 노·사·정·민의 대타협이 필요합니다. 북한 인권 문제는 북한 주민의 인권이 실질적으로 향상될 수 있도록 ‘조용한 외교’를 통해 접근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진행·정리|최재영·김종목사진|김정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