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화자

신형철 - 느낌의 공동체 본문

사사로운 공간/읽다

신형철 - 느낌의 공동체

영원한 화자 2011. 11. 24. 23:26




  읽거나 쓰는 걸 좋아하는 사람들은 다 그러하겠지만, 가슴을 울리는 문장을 만났을 때의 희열은 그 무엇보다 벅차다. 그래서 언제나 난 김연수의 글을 읽을 때면 기대와 환희와 감동과 뭐 여튼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그런 기쁨으로 가득찬다. 신형철의 책을 구입한 것은 다분히 충동적이었다. 학교에서 열린 그의 특강을 간 것도 충동적이었으니 뭐  계획에 맞춰  살려고 노력하는 나에게는 빈번히 일어나는 일은 아니다. 충동적이었으니 그러한 문장을 만나리라고는 생각할 수도 없었다.

  특강은 꽤 좋았다. 하루 종일 수업을 들었던 지라 중간에 살짝 졸아서 죄송스러웠지만, 그저 읽을 줄만 알았던 나에게 '문학의 해석'에 관한 그의 견해는 매우 흥미로웠다. 저 인간은 도대체 얼마나 읽어댄 것인가-평론가니까 당연하겠지만!- 궁금할 만큼 지식의 장을 종횡무진 넘나들었다. 마르크스부터 이상까지, 과연 이 사람들이 혹은사상들이 어떻게 엮일지 종잡을 수도 없는 것들을 차곡차곡 엮어나가는 지식과 그 말솜씨는 탁월했다.

  그러니 이 책을 사지 않을 수 없었다. 여느때처럼 정신없는 하루를 보내고 잠에 들려고 불을 껐는데 마침 그 날 도착한 책 생각이 났다. 머리말이나 에필로그 혹은 작가의 말 같은 게 있겠지?라며 맛만 볼 요량으로 책을 펴들었다. 그리고 나는 김연수의 책을 읽을 때와 같은 기쁨에 휩싸였다. 



  나는  너를 사랑한다. 네가 즐겨 마시는 커피의 종류를 알고, 네가 하루에 몇 시간을 자야 개운함을 느끼는지 알고, 네가 좋아하는 가수와 그의 디스코그래피를 안다. 그러나 그것은 사랑인가? 나는 네가 커피 향을 맡을때 너를 천천히 물들이는 그 느낌을 모르고, 네가 일곱 시간을 자고 눈을 떴을 때 네 몸을 감싸는 그 느낌을 모르고, 네가 좋아하는 가수의 목소리가 네 귀에 가닿을 때의 그 느낌을 모른다. 일시적이고 희미한, 그러나 어쩌면 너의 가장 깊은 곳에서의 울림일 그것을 내가 모른다면 나는 너의 무엇을 사랑하고 있는 것인가.


  느낌이라는 층위에서 나와 너는 대체로 타자다. 나는 그저 '나'라는 느김, 너는 그냥 '너'라는 느낌. 그렇다면 사랑이란 무엇인가. 아마도 그것은 느낌의 세계 안에서 드물게 발생하는 사건일 것이다. 분명히 존재하지만 명확히 표명될 수 없는 느낌들의 기적적인 교류, 그러니까 어떤 느낌 안에서 두 존재가 만나는 짧은 순간. 나는 너를 사랑하기 때문에 지금 너를 사로잡고 있는 느낌을 알 수 있고 그 느낌의 세계로 드러갈 수 있다. 그렇게 느낌의 세계 안에서 우리는 만난다. 서로 사랑하는 이들만이 느낌의 공동체를 구성할 수 있다. 사랑은 능력이다.


                                                    -   <몰락의 에티카>에서 뽑아 다듬어 옮기다
 
 

책을 굳게 닫았다. 아마 이 책도 오랫동안 읽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정말 좋아하는 작가의 책은 아주 조금씩 나눠 읽는 내 버릇이다. 그리곤 읽지도 않은 책을 친구에게 마구 추천했다. 부디 그들의 겨울을 같이 나줄 따뜻한 문장이 되길.

헛헛. 감성돋네. 




                                                     
느낌의공동체신형철산문2006-2009
카테고리 시/에세이 > 나라별 에세이
지은이 신형철 (문학동네, 20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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