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한국과 아시아
정문태, 전선기자 정문태 - 전쟁 취재 16년의 기록, 한겨레신문사.
박명림, 한국 1950: 전쟁과 평화, 나남출판.
서중석,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한국 현대사, 웅진닷컴.
오오누키 에미코, 사쿠라가 지다 젊음도 지다, 모멘토.
존 키건, 전쟁의 얼굴, 지호.
강준만, 한국현대사 산책, 인물과사상사.
빅터 데이비드 핸슨, 살육과 문명 , 푸른숲.
마이클 매클리어, 베트남: 10,000일의 전쟁, 을유문화사.
유인선, 새로 쓴 베트남의 역사, 이산.
이삼성, 우메바야시 히로미치 외, 동북아시아 비핵지대, 살림출판사.
3. 미국의 패권주의와 이슬람 (또는 무슬림) 문화(문명)권
로버트 카플란, 타타르로 가는 길, 르네상스.
후안 고이티솔로, 전쟁의 풍경, 실천문학사.
노르만 핀켈슈타인, 홀로코스트 산업, 한겨레신문사.
찰스 킨들버거, 경제강대국 흥망사 1500-1990, 까치글방.
정수일, 이슬람 문명, 창작과비평사.
정수일, 고대문명교류사, 사계절.
프랜시스 로빈스 외,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케임브리지 이슬람사, 시공사.
하워드 터너, 이슬람의 과학과 문명, 르네상스.
타리크 알리, 근본주의의 충돌, 미토.
랄프 쇤만, 잔인한 이스라엘, 미세기.
4. 전쟁의 엔진, 자본주의
리오 휴버먼, 자본주의 역사 바로 알기, 책벌레.
어니스트 볼크먼, 전쟁과 과학, 그 야합의 역사, 이마고.
고바야시 히데오, 만철滿鐵, 산처럼.
고모리 요이치, 1945년 8월 15일, 천황 히로히토는 이렇게 말하였다, 뿌리와이파리.
에릭 홉스봄, 제국의 시대, 한길사.
더글러스 러미스, 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 녹색평론사.
장하준, 사다리 걷어차기, 부키.
에르네스트 만델, 즐거운 살인: 범죄소설의 사회사, 이후.
하워드 진, 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 이후.
로버트 브레너, 혼돈의 기원: 세계 경제 위기의 역사 1950~1998, 이후.
5. 민주주의
최장집,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한국 민주주의의 보수적 기원과 위기, 후마니타스.
로버트 달, 미국 헌법과 민주주의, 후마니타스.
로버트 퍼트남, 사회적 자본과 민주주의, 박영사.
한국정치연구회(편), 박정희를 넘어서, 푸른숲.
버나드 마넹, 선거는 민주적인가, 후마니타스.
허승일, 로마공화정, 서울대학출판부.
레오나르도 브루니, 피렌체 찬가, 책세상.
데이비드 브룩, 우익에 눈먼 미국: 어느 보수주의자의 고백, 나무와숲.
프랜시스 라페 외, 굶주리는 세계, 창비.
홍은택, 블루 아메리카를 찾아서, 창비.
6. 현대사회와 커뮤니케이션
사카이 나오키, 번역과 주체, 이산.
코린 쿨레, 고대 그리스의 의사소통, 영림카디널.
칼레 라슨 외, 애드버스터, 현실문화연구.
데스몬드 모리스, 인간의 친밀행동, 지성사.
톨스타인 베블렌, 한가한 무리들, 동인.
알버트 바라바시, 링크: 21세기를 지배하는 네트워크 과학 , 동아시아.
김경용, 기호학이란 무엇인가, 민음사.
벤야민,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
발자크, 기자의 본성에 관한 보고, 서해문집.
로버트 팩스턴, 파시즘, 교양인.
7. 정보화 사회
허버트 실러, 정보불평등, 민음사.
마뉴엘 카스텔, 정보도시, 한울.
웹스터, 정보사회이론, 사회비평사.
어슐러 휴즈, 싸이버타리아트, 갈무리.
제러미 리프킨, 소유의 종말, 민음사.
댄 쉴러, 미국의 새로운 세계지배 전략 디지털 자본주의, 나무와숲.
제이슨 엡스타인, 북 비즈니스, 미래사.
조셉 테인터, 문명의 붕괴, 대원사.
빌렘 플루서, 디지털시대의 글쓰기, 문예출판사.
이충웅, 과학은 열광이 아니라 성찰을 필요로 한다, 이제이북스.
8. 역사
하비 케이, 과거의 힘: 역사의식, 기억과 상상력, 삼인.
라인하르트 코젤렉, 지나간 미래, 문학동네.
에릭 홉스봄, 역사론, 민음사.
한스 위르겐 괴르츠, 역사학이란 무엇인가, 뿌리와이파리.
함석헌, 뜻으로 본 한국역사, 한길사.
레이 황, 허드슨 강변에서 중국사를 이야기하다, 푸른역사.
알베르토 망구엘, 독서의 역사, 세종서적.
에릭 홉스봄, 극단의 시대, 한길사.
에두아르트 푹스, 풍속의 역사, 까치.
리사 자딘, 상품의 역사, 영림카디널.
9. 동아시아
마루야마 마사오(외), 번역과 일본의 근대, 이산.
조너선 스펜스, 천안문, 이산.
윌리엄 시어도어 드 베리, 다섯 단계의 대화로 본 동아시아 문명, 실천문학사.
가시모토 미오/미야지마 히로시, 조선과 중국 근세 오백년을 가다, 역사비평사.
허수열, 개발없는 개발, 은행나무.
티모시 브룩, 쾌락의 혼돈, 이산.
마르티나 도이힐러, 한국 사회의 유교적 변환, 아카넷.
강재언, 선비의 나라 한국 유학 2천년, 한길사.
유길준, 서유견문, 서해문집.
후쿠자와 유키치, 학문의 권장, 소화.
10. 예술
곰브리치, 서양미술사, 예경.
하우저,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창비.
알베르토 망구엘, 나의 그림읽기, 세종서적.
고바야시 다다시, 우키요에의 미, 이다미디어.
진 쿠퍼, 그림으로 보는 세계문화상징사전, 까치.
데이비드 호크니, 명화의 비밀, 한길사.
오주석, 한국의 미 특강, 솔출판사.
▶▶ 2차
1. 역사이야기
강명관, 조선의 뒷골목 풍경, 푸른역사.
츠바이크, 어제의 세계, 지식공작소.
반 룬, 인류이야기, 아이필드.
단턴, 고양이 대학살, 문학과지성사.
홀랜드, 공화국의 몰락, 웅진닷컴.
리브홀릭 :: 정보화 사회 부분에서 마뉴엘 까스텔의 '정보도시'와 함께 정보시대 3부작 '네트워크 사회의 도래', '정체성의 힘(아직 미번역)', '밀레니엄의 종언' 도 같이 읽으면 더 좋겠네요. 제 경우 '정보도시'보다 3부작을 읽으면서 정보화 사회에 대해 더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기에 끄적여 봅니다.
강유원 :: 우리교육 교사 아카데미에서 수강자들에게 추천하고 매주 싸들고 가서 소개한 책들입니다. target=_blank>http://www.armarius.net/bbs/view.php?id=www_bbs&no=2206
▶▶ 요즘에는 우리 교육에서 아래와 같은 책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1. 책과 교양
망구엘, 독서의 역사.
에코, 장미의 이름.
딜타이, 체험 표현 이해.
2. 역사(1)
루카 드 블로와, 서양 고대 문명의 역사.
서던, 중세의 형성.
안드로 몬타넬리, 로마제국사.
훌륭한 학생들은 밤에 잠도 자지 않고 많은 공부를 합니다. 이것저것 온갖 것을 읽습니다. 문장 하나를 읽으면서도 가능한 모든 상상력을 동원합니다. 단어 하나를 해석하면서도 사전에 나오는 모든 뜻을 참조하여 읽어봅니다. 해당 텍스트에만 머물지 않고 그 텍스트와 관련이 된다 싶은 외부 텍스트들을 샅샅이 끌어오는 민감한 촉수를 발휘합니다. 그런 다음 그 모든 것을 앞에 두고 이제부터는 기가막힌 해석들을 창조해냅니다. 고작 석사논문을 쓰면서 석사(碩士)의 석자가 석학(碩學)의 석자와 같다하여 방대한 문헌에서 가져온 가지각색의 해석을 다 나열한 다음 그것들 각각에 다시 기나긴 자신의 해석을 덧붙여 A4용지 30매면 충분할(또는 더 쓰면 욕먹을) 논문을 무려 300매까지 쓰기도 합니다.
논문의 제목 역시 거창하기 이를데 없습니다. '헤겔 법철학의 재정립을 위한 변증법적 연구', 이런 식의 석학스러운 제목을 내겁니다. 제목이 이러하니 목차도 그 수준을 가집니다. '서론: 근대적 상황 속에서의 헤겔 법철학의 문제의식의 정위(定位), 제1장: 칸트에 의한 근대철학의 역사적 전복, 제2장: 칸트와 루소의 변증법적 통일과 새로운 시도로서의 헤겔 법철학', 이런 식입니다. 여기에 결론으로 '헤겔 법철학의 아리스토텔레스적 지양과 마르크스의 재전유 및 21세기 철학의 재정립을 향하여'까지 붙여지고 참고문헌 목록 200권쯤(이쯤 되면 참고문헌 목록이 아니라 소장도서 목록일 겁니다) 들어가면 화룡점정이 될 것입니다.
이런 사람 내버려두면 석사과정 다니면서 1,000페이지 짜리 책이라도 쓸 기세입니다. 이것은 제가 만들어낸 가상 상황이 아닙니다. 아주 자주 발견되는 상황입니다. 예전에 헤겔의 정신현상학으로 석사논문을 쓰겠다는 이가 있었는데 실제로 이와 유사한 제목과 목차를 가지고 지도교수에게 가져와서 내놓은 걸 본 적이 있습니다. 대답은 간단합니다. '지도하기 어려우니 독일로 가게나'입니다.
도대체 지도교수는 왜 그런 말을 하는 걸까요(물론 제정신 아닌 지도교수들은 이런 석학스러운 논문을 환영하면서 함께 상상력 놀이를 하면서 즐기기도 합니다)? 학생이 기껏 열심히 해왔는데 매정하게 그 많은 자료들을 불필요한 것이라 말하면서 무시하는 까닭이 도대체 어디에 있을까요? 간단합니다. 공부는 그렇게 하는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공부는 상상력 훈련이 아니라 우리 앞에 놓인 텍스트를 텍스트 안에 머물면서 '있는 그대로 이해하기'에서 출발하기 때문입니다. 비유를 하자면 학부과정을 공부하는 학생은 입문서 등을 읽으면서 공부하고자 하는 분야의 대강의 범위를 알아내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하고, 석사과정에 있는 학생들은 주어진 텍스트를 제대로 읽고 정리하는 것이 목표여야 하며, 박사과정에 있는 학생들은 기존의 텍스트에 대한 자신의 해석을 '하나 정도' 덧붙이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학생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열심히 정리하고 읽은 다음에 자신의 해석을 덧붙이면 그걸 가지고 토론의 자료로 삼을 수 있지 않는가. 좋은 말입니다. 그런데 이 지점에서 학생과 선생의 갈등이 시작합니다. 과정을 좀 풀어서 보면 이렇습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학생은 뭔가를 잔뜩 읽어서 짊어지고 갑니다. <<정신현상학>>을 강독할 경우 선생은 가방에서 호프마이스터판 원전 한 권만 달랑 꺼내는데 학생은 배낭에서 원전(그것도 여러 판본으로 준비합니다. 이를테면 과거 그 학생은 교재인 호프마이스터 판은 물론 주어캄프 판, 게잠멜테 베르케 판과 지금은 구하기도 어려운 글로크너 판까지 가지고 다녔습니다. 선생의 박사논문이 글로크너 판을 참조했기 때문에 그걸 참조해야 한다는 괴기스러운 이유에서였습니다)과 이뽈리트의 <<정신현상학의 구조>> 불어판, 영역본, 한국어본은 물론 기타 그때 그때 자신이 필요하다 싶은 '레퍼런스'들을 가지고 옵니다. 선생은 거들떠 보지도 않습니다. 대다수의 것을 불필요하다고 쳐냅니다. 쓸데없는 짓 하지 말라고 경고를 하기도 합니다. 학생은 선생을 욕합니다. 토론은 물론 대화조차 하지 않으려 한다고 선생을 욕합니다. 선생 자격이나 있냐고 힐난을 합니다. 선생이 원전의 판본을 다 가지고나 있는지 모르겠다고 궁시렁거립니다. '레퍼런스'도 안읽는다고 헐뜯는 건 당연한 일일겁니다.
이런 학생은 학생이면서도 학생이 아닙니다. 자신이 '지도'하는 스터디 그룹이 꼭 있습니다. 스터디 그룹이 한 두개가 아닙니다. 세미나까지 합니다. 스터디 지도하고 세미나 하느라 강독 준비를 못해옵니다. 선생이 '읽고 번역해보라'하면 번역은 하지 않고 해석을 합니다. '이렇게 봐야 하는거 아닌가요' -- 제가 여기에 물음표를 붙이지 않았습니다. 이건 묻는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자기 의견을 피력하고 있습니다. 지도와 세미나에 바쁘고 자신의 해석을 안출해내는 일에 너무 분주한 나머지 번역도 안합니다. 번역은 하찮은 일이라면서 깔봅니다. 자신이 지도하는 스터디 그룹 사람들 앞에서 누가 옳고 그른지는 시간이 판단할 것이라며 호언장담을 하기도 합니다. 그들의 경외에 찬 시선을 즐기기도 할 것입니다.
선생은 말합니다. 일단 주어진 텍스트를 있는 그대로 꼼꼼히 읽어오라, 그러면 그 다음에 할 일을 말해주겠다, 학생이 이 방향으로 읽겠다고 고집을 한다면 말릴 수는 없다고 말합니다. 학생은 전체의 대강이 무엇인지, 무엇에 힘을 쏟아야 하는지, 무엇을 놓쳤는지 알 수 없습니다. 알 수 없다고 전제해야 합니다. 그래야 배울 수 있습니다.
선생은 지시하고 명령합니다. '요약만 해올 것', 이렇게 명령합니다. 훌륭한 학생이 아닌 충실한 학생은 텍스트에 있는 단어들만을 사용하여 요약만 합니다. 선생은 그것을 읽고 잘 요약했는지 판단합니다. 부족한 부분이나 잘못 요약된 부분을 지적하기도 합니다. 구체적으로 지적하기도 하고 의문 부호를 남겨서 다시 요약할 것을 재촉하기도 합니다. 지나치게 길게 요약되어 있으면 줄일 것을 명령합니다. 학생은 가차없이 줄여야 합니다. 줄이다보면 쓸데없는 말들이 중언부언들어가 있음을 확연히 깨달을 수 있습니다. '다시 쓰라'는 명령을 따르기 싫으면 떠나면 됩니다. 세상에 선생은 많습니다.
어쨌든 요약이 완성되면, 선생은 그것을 바탕으로 더 공부할 것을 다시 명령합니다. '이 부분에 관하여 더 공부할 것'이 아니라, '이 부분에 관하여 이 책과 저 책만을 참조하여 어느 정도의 분량으로 정리할 것', 이런 식으로 명령합니다. 학생은 그 명령에 따라서 다시 공부를 합니다. 학생은 최종 결과가 무엇이 될 지 알 수 없습니다. 자신이 무엇을 중심으로 토론해야 하는지도 알 수 없습니다. 복종하면서 따라갑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완성된 논문은 학생이 쓴 것이라기 보다는 학생의 손을 빌려 선생이 쓴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이것이 지도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창의력을 말합니다. 학문 세계에서의 창의력은 그런 지도로는 나올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런 사람들이 창의적이기는 합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의 창의력은 다른 사람과 나누어 가질 수 없습니다. 자신만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쓰여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람은 선생이 하라는 말을 듣지 않습니다. 애초에 선생이 필요하지도 않았습니다. 행정적 절차 상의 도장 하나 받기 위해 지도교수 신청을 했을 뿐입니다. 겉으로는 복종하지만 속으로는 자신의 방법을 고집합니다. 그런 사람은 '독일로 가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자신의 해석과 자신의 이상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학문의 참다운 고장으로 가는게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