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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화자
볼리비아-칠레 국경을 넘던 날. 본문
나의 남미여행이 막바지로 치달을 즈음이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우유니에서 볼리비아-아르헨티나와의 국경인 비야손으로 이동해서 살타와 멘도사를 거쳐 산티아고 이동했어야 했다. 그러나 아르헨티나의 엄청난 물가와 이동시간은 도저히 엄두가 나질 않아서 결국 우유니에서의 체류기간을 좀 더 늘렸었다.
소금사막 투어 출발 전 나와 소연형은 볼리비아-칠레의 국경으로 향하는 버스티켓을 끊어놨었다. 라파즈에서 우유니로올 때 버스 등급을 속이는 사기를 맞았었기 때문에 난 두 번, 세 번 재차 확인을 하고 그제서야 티켓을 샀다. 그러나 버스 시간이 문제였다. 버스 출발 시간은 새벽 3시. 호스텔에 묵기도 뭐하고 그렇다고 다른데서 시간을 때우자니 때울만한 곳이 전무했다. 어쨌든 그 걱정은 미뤄두고 우리 일행은 1박 2일동안을 맘껏 즐겼다.
어렵사리 싼값에 거실을 내주겠다는 호스텔을 찾았다. 사실 하룻밤 숙박료라고 해봐야 비싸봐야 50볼리비아노, 그러니까 한국돈으로치면 6~7천원 하는 돈이었지만, 현지 통화를 손에 쥐는 순간 우리의 경제관념은 영낙없는 현지인으로 변한다. 알고보니 우리가 묵은 호스텔은 KOICA단원들이 묶고 간 곳이었다. 우린 연신 Gracias와 Thank you를 외쳤다.
기차를 타고 비야손으로 이동하는 다른 여행자들을 배웅하고 소연형과 난 호스텔에 들어갔다. 랩탑에 우유니에서 찍은 사진들을 옮겨놓고는 잠을 청했다. 그러나 허술한 문틈새로 들어오는 사막의 냉기덕에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다. 후두둑 소리가 들리더니 추적추적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왠 비. 5월은 건기라 비가내리는 일은 드물다. 소금사막의 거울 같은 풍경을 보기위해서는 우기 혹은 비가 온 다음날로 투어 일정을 잡아야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새벽 두 시 반이 좀 넘은 시각. 어설프게 잠을 떨치고 부리나케 짐을 쌌다. 생각보다 빗발은 굵었다.
아차. 또 당했다. 버스에 타고보니 semi cama 버스가 아니다. semi cama는 우리나라로 치면 우등버스 정도 수준인데 내가 탄 버스는 좌석 다닥다닥 4개씩 붙어있다. 화가 났지만 이미 탔으니 어쩔 수 없다. 한 두번도 아니고 이어폰을 끼고 잠을 청했다. 여기저기 멈춰서기를 반복했다. 버스가 서는 곳마다 을씨년스럽긴 마찬가지다. 한 4시간이 넘도록 달렸을까. 버스는 희뿌연 흙먼지를 일으키며 사막을 가르고 있었다. 생전처음보는 광경. 사막 저 멀리서 동이트고 있었다. 사진을 찍으려고 애썼지만 비포장 도로를 달리는 버스에서 균형을 잡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렇게 달리고 달려 도착한 국경. 국경이라고 하기에도 너무 초라한 건물들이 눈 앞에 놓여있었다. 아침시간을 맞춰 음식과 주전부리를 팔려고 나온 상인들이 보였다. 여느 남미 도시들처럼 볼품없이 늘어진 개들 몇 마리가 보였다. 우유니에 있는 immigracion에서 미리 출국 도장을 받았지만 출국 날짜를 잘못 찍어놓은 바람에 우린 조마조마했다. 그러나 이민관은 이런건 아무것도 아니란듯이 괜찮다고 말했다. 한 켠의 노점 식당에선 현지인들이 게걸스레 아침을 먹고 있었지만 왠지 먹기가 싫었다. 배는 고팠다.
볼리비와와 칠레의 국경을 가로지르는 녹슨 철로를 이리저리 배회했다. 우뚝 솟은 녹이슨 철제 기둥의 꼭대기엔 CHILE가 반대편엔 BOLIVIA가 위태위태 쓰여져있다. 여전히 현실감없는 국경이다. 버스기사가 밥을 다 먹었는지 사람들이 버스에 올라타기 시작했다. 오분여를 달려 허허벌판에 사람과 짐을 토하듯 쏟아냈다. 깔라마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란다. 추위와 배고픔에 벌벌 떨며 지독히 현실감이 없던 그 허허벌판에서 우린 두 시간여를 기다려 깔라마 행 버스를 탔다.
도서관에가는 버스를 탔다. 장마동안 내내 보아 온 빗줄긴데도, 문득 그 날의 기억이 떠올랐다. 피곤하고, 무섭고, 설레고, 초조한 그 기분도. 언제 또 다시 그런 기분을 느낄 수 있을런지. 비가오니 그런 것 같다. 이런 날은 비오는 구경하면서 여자친구랑 카페에서 나는 잘 마시지도 않는 커피를 시켜놓고 수다를 떨었으면 좋겠는데.
노래는 Mayer Hawthorne의 I wish it would rain. 이런 날엔 제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