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화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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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스미디어를 대하는 올바른 자세.

영원한 화자 2011. 7. 8. 12:32



 자주 방문하는 '부초'님의 블로그에서 퍼온 글.
원문 글을 퍼오고 싶었는데 찾을 수 없어서 직접 번역하신 글을 허락받고 퍼옴.
(http://textory.tistory.com/2822363 원본 포스트)

  


                                                                                                                            
  새로운 형태의 미디어는 언제나 공황을 야기한다. 인쇄기, 신문, 문고판 도서, TV 따위는 모두 일전에 소비자의 지능과 윤리적 기강을 해친다며 비난받은 바 있다. 파워포인트는 주요 쟁점에 대한 담론 형성의 가능성을 축소하고, 검색 엔진은 지적 능력을 약화시켜 무엇이든 깊이 파고들기보다는 표면적인 지식만을 훑고 지나가게 한다. 트위터는 주의 집중을 흐트러뜨린다. 
 
그러나 이 같은 지적은 종종 현실을 직시하는 데 실패한다. 만화책이 청소년들을 범죄자로 만든다고 비난했던 1950년대에 범죄율은 역대 최저를 기록했으며, 비디오 게임이 맹렬한 비난의 화살을 받던 1990년대, 우연의 일치겠지만 미국의 범죄율은 상당한 감소 추세를 보였다. TV와 라디오, 로큰롤 비디오가 전파를 탄 수십년의 시간 동안, 우리의 IQ 역시 끊임없이 높아졌다.

동시대 모든 과학자는 이메일로부터 결코 멀어질 수 없으며 파워포인트를 사용하지 않는 강의는 찾아보기 어렵다. 사실 종이를 손으로 만질 일 자체가 거의 없다. 전자적 매체가 지적 능력에 위해를 가한다면 오늘날 우리의 과학적 성취는 곤두박질쳐야 한다. 그런데 현실은 그 반대에 가깝다. 오늘날 우리가 새로이 발견해내고 있는 것들의 양과 질은 가히 아찔할 정도다. 철학, 역사, 문화비평 등 과학 외 분야 역시 전에 없이 융성하고 있다. Arts & Letters Daily 사이트를 둘러보느라 오전 시간을 허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에 동의할 것이다.

새로운 미디어를 비판하는 이들은 때론 과학적 방법론을 이용해 주장한다. "경험이 어떻게 우리의 뇌를 바꾸어 놓는가" 따위의 연구 결과를 인용하면서 말이다. 인지 신경과학자들은 이런 것들에 어깨를 으쓱하곤 한다. 어떤 사실이나 기술을 습득할 때 우리의 두뇌 회로가 변하는 건 맞다(췌장이 변하진 않을 것 아닌가?). 그런데 시냅스가소성(시냅스의 전달효율 혹은 형상이 양자 활동에 의해 지속적으로 변하는 현상)이 존재한다는 게 우리의 뇌가 경험에 의해 빚어지는 찰흙 덩이 같은 것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경험은 뇌의 기초적인 정보 처리 능력을 개조시키지 않는다. 가령 속독법 숭배자들은 그게 가능하다고 주장해 왔지만, 속독법을 배운 지 두 시간 만에 <전쟁과 평화>를 완독한 우디 앨런은 다음과 같이 말하지 않았던가. "러시아에 대한 책이더군." 멀티태스킹 능력에 대한 근거 없는 믿음은 또 어떤가. 권위 있는 실험 결과까지 갈 것도 없이 SUV 운전자들이 핸드폰을 사용하면서 운전을 얼마나 형편없게 하는지 생각해 보라.

심리학자 크리스토퍼 샤브리스와 대니얼 시몬스는 <투명 고릴라 : 직관은 어떻게 우리를 기만하는가>라는 책에서 경험이 갖는 효과는 바로 그 경험 자체에만 극도로 한정됨을 보여주었다. 누군가에게 어떤 한 가지를 훈련 시키면(형태 인식, 퍼즐 풀기, 단어 찾기 등) 당연히 발전 양상을 보이나, 그 경험과 수련이 다른 분야에까지 미치지는 않는다. 음악 수업은 당신이 수학을 잘하게 만들지 못하고, 라틴어를 배운다고 더 논리적인 사람이 되지는 못하며, 두뇌 게임이 당신을 더 똑똑하게 만들어주는 것도 아니다. 성공한 사람들은 두뇌 체조를 통해 똑똑한 뇌를 만들어서 성공한 게 아니다. 그저 자신이 속한 분야에 몰두했기 때문이다. 소설가가 많은 소설을 읽고, 과학자가 숱한 과학 논문을 읽듯이 말이다.

전자적 매체의 소비가 불러오는 효과 역시 우리가 걱정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미디어 비평가들은 그 상관 관계를 마치 "당신은 바로 당신이 먹은 음식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와 같은 말과 비슷하게 이야기하는 경향이 있다. 고대의 사람들은 사나운 동물을 먹으면 사나워진다고 믿었는데, 이와 비슷하게 미디어 비평가들은 트위터를 하면 사고가 트위터스러워진다고 믿는 것 같다.

거듭 불어나는 정보의 양이 우리의 주의를 산만하게 하거나 새로운 중독을 불러오는 것은 사실이다. 주의력 결핍 장애가 있는 사람에겐 더욱 그렇다. 그러나 이는 전혀 새로운 증상이 아닌 바, 테크놀로지를 비난하고 현실을 한탄하기보다는 자제력을 기르는 게 올바른 해결책이다. 일할 때는 이메일이나 트위터를 멀리 하고, 저녁 식사를 할 때는 블랙베리를 꺼두자. 지적인 깊이를 더하기 위해서는 파워포인트나 구글 의존도를 줄이자. 철두철미한 연구와 엄정한 논증이란 그렇게 쉽게 얻어지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특수한 기관과('대학'이라 불리곤 하는) 끊임 없는 유지비('분석, '비판', '토론'이라 일컬어지는)가 필요하다.

새로운 미디어가 등장하고 인기를 끄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지식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나 인간의 지적 능력은 그렇지 못하다. 다행히도 인터넷과 정보 기술은 여러 형태와 방식으로 존재하는 우리네 집단 지성의 결과물을 검색하고, 합리적으로 처리할 수 있게끔 돕는다. 이북(ebook)이나 온라인 백과사전, 트위터처럼 말이다. 이러한 정보 기술은 우리를 똑똑하게 만들 순 있어도, 멍청하게 만들지는 못한다.

June 10, 2010. NY Times
By Steven Pinker(http://pinker.wjh.harvard.edu)
Translated by 부초 (http://textory,tistor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