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cy Gray - I try (J Dilla Remix)Macy Gray - I try (J Dilla Remix)
Posted at 2012/02/20 23:25 | Posted in 듣다위로받을 구석이라곤 오래 누워있으면 허리가 아파오는 침대와 몇 권의 책들, 그리고 음악뿐이구나.
김수영 - 제 정신을 갖고 사는 사람은 없는가김수영 - 제 정신을 갖고 사는 사람은 없는가
Posted at 2012/02/20 15:42 | Posted in 읽다제 정신을 갖고 사는 사람은 없는가? 나는 이 제목을, <제 詩를 쓸 수 있는 사람은 없는가>로 바꾸어 생각해보아도 좋을 것 같다. 범위를 詩壇에 국한시켜 위선 생각해보자. 우리 시단에 詩人다운 시인이 있는가. 이렇게 말하면 <시인다운 시인>의 해석에 으레 구구한 반발이 뒤따라 오겠지만, 간단히 말해서 정의와 자유를 평화를 사랑하고 인류의 운명에 적극 관심을 가진, 이 시대의 지성을 갖춘, 시정신의 새로운 육성을 발할 수 있는 사람을 오늘날 우리 사회가 요청하는 <시인다운 시인>이라고 생각하면서, 금년도에 접해온 시 작품들을 한 번 생각해볼 때 내가 본 전망은 매우 희망적이다. 좀더 전문적인 말을 하자면 우리 시단의 경우, 시의 현실참여니 하는 문제가 시를 제작하는 사람의 의식에 오른 지는 오래이고, 그런 경향에서 노력하는 사람들의 수도 적지 않았는데 이런 경향의 작품이 작품으로서 갖추어야 할 최소한도의 예술성의 보증이 약했다는 것이 커다란 약점이며 숙제로 되어 있다. 그런데 이런 약점을 훌륭하게 극복하고 있는 젊은 작품들이 작품에 나타나기 시작하고 있다. 이것은 국한된 조그만 시단 안의 경사만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이런 일은 남의 일이 아니다. 남의 일로 낙담을 했다고 간단하게 처리될 수 없는 심각한 병상이 우리 주위와 내 자신의 생활 속에 뿌리깊이 박혀 있다. 나의 주위에서만 보더라도 글을 쓰는 사람들 가운데 6부니 7부니 8부니 하고 돈놀이를 하는 사람이 있다. 나 자신만 하더라도 여편네더러 되도록 그런 짓은 하지 말라고 구두선처럼 뇌까리고 있기는 하지만 할 수 없다. 계를 드는 여편네를 막을 수가 없고, 돈을 빌려쓰지 않을 수가 없고, 딱한 경우에 돈을 꾸어주지 않을 수가 없고, 돈을 꾸어주면 이자를 받는 것이 상식으로 되어버렸다.
우리들 중에 누가 죄없는 사람이 있겠는가. 인간은 神도 아니고 악마도 아니다. 그러나 건강한 개인도 그렇고 건강한 사회도 그렇고 적어도 자기의 죄에 대해서 몸부림은 쳐야 한다. 몸부림은칠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가장 민감하고 세차고 진지하게 몸부림을 쳐야 하는 것이 지식인이다. 진지하게라는 말은 가볍게 쓸 수 없는 말이다. 나의 연상에서는 진지한 침묵으로 통한다. 가장 진지한 시는 가장 큰 침묵으로 승화되는 시다. 시를 행할 수 있는 사람의 경우를 생각해보더라도 지금의 가장 진지한 시의 행위는 형무소에 갇혀있는 수인의 행동이 극치가 될 것이다. 아니면 폐인이나 광인. 아니면 바보. 그러나 이 글의 주문의 취지는 英雄待望論이 아닐 것이다.
나의 직관적인 추측으로는, 표면상의 지식인들의 피곤에도 불구하고 역시 이들의 내면에는 개인의 책임에 대한 각성과 합리주의에 대한 이행이 은연중에 강행되고 있다고 생각된다. 결국 모든 문제는 <나>의 문제로 귀착된다.
제 정신을 갖고 사는 사람은 없는가, 따라서 나는 내 정신을 갖고 살고 있는가로 귀착된다. 그리고 이 문제는 나를 무한히 신나게 한다. 나는 나의 최근작을 열애한다. 나의 서가의 페이퍼 홀더 속에는 최근에 쓴 아직 미발표 중의 초고가 세 편이나 있다. 「식모」「풀의 影像」「엔카운터誌」라는 제목이 붙은 시들―아직은 사실은 부정을 탈 것 같아서 제목도 알리고 싶지 않았는데―이 중의 「엔카운터誌」 한 편만으로도 나는 이병철이나 서갑호보다 더 큰 부자다. 사실은 앞서 말한 김재원의 「입춘에 묶여온 개나리」를 읽고 나서 나는 한참동안 어리둥절해 있었다. 젊은 세대들의 성장에 놀랐다기보다도 이 작품에 놀랐다. 나는 무서워지기까지도 하고 질투조차도 느꼈다. 그래서 그달치의 「詩壇月評」에 감히 붓이 들어지지 않았다. 그런 私心이 가시기 전에는 비평이란 쓰여지는 법이 아니다. 그러다가 그 장벽을 뚫고 나온 것이 「엔카운터誌」다. 나는 비로소 그를 비평할 수 있는 차원을 획득했다. 그리고 나는 여유 있게 그의 시를 칭찬할 수 있었다. 이것은 내가 「立春에 묶여온 개나리」의 작자보다 우수하다거나 앞서있다거나 하는 말이 아니다.
<제 정신>을 갖고 산다는 것은, 어떤 정지된 상태로서의 <남>을 생각할 수도 없고, 정지된 <나>를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다. 엄격히 말하자면 <제 정신을 갖고 사는> <남>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그것이 <제 정신을 가진> 비평의 객체나 주체가 되기 위해서는 창조생활(넓은 의미의 창조생활)을 한다는 전제가 필요하다. 그리고 이러한 모든 창조생활은 유동적인 것이고 발전적인 것이다. 여기에는 순간을 다투는 어떤 윤리가 있다. 이것이 현대의 양심이다. 「입춘에 묶여온 개나리」와 나와의 관계만 하더라도 이 윤리의 밀도를 말하고 싶은 것이 나의 목적이었다. 「엔카운터誌」를 쓰지 못하고 「입춘에 묶여온 개나리」의 월평을 썼더라면 나는 私心ㅌ이 가시지 않은 글을, 따라서 邪心 있는 글을 썼을 것이다. 개운치 않은 칭찬을 하게 되었을 것이고, 그를 살리기 위해서 나를 죽이거나 다치거나 했을 것이다. 그러나 「엔카운터誌」의 고민을 뚫고 나옴으로써 나는 그를 살리고 나를 살리고 그를 <제 정신을 가진 사람>으로 보고 나를 <내 정신을 가진 사람>으로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니까 쉽게 말하자면 제 정신을 갖고 사는 사람이란 끊임없는 창조의 향상을 하면서 순간 속에 진리와 美의 全身의 이행을 위탁하는 사람이다. 다시 말해두지만 제 정신을 갖고 사는 사람이란 어느 특정된 인물이 될 수도 없고, 어떤 특정된 시간이 될 수도 없다. 우리는 일순간도 마음을 못 놓는다. 흔히 인용되는 예를 들자면 우리는 「시지프의 신화」에 나오는 육중한 바윗돌을 밀고 낭떠러지를 기어올라가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러한 自覺人의 세계의 대열 속에 미약한 한국의 발랄한 젊은 세대가 한 사람이라도 더 끼이게 된다는 것은 우리들의 오늘날의 그지없는 기쁨이다. 끝으로 《現代》지 4월호에 게재된 「立春에 묶여온 개나리」의 전문을 감상해보기로 하자.
제 정신을 갖고 사는 사람은 없는가. 이에 대한 처방전인 나의 답변은, 아직도 과격하고 아직도 수감 중에 있다.
Facebook ruined my life. And it will ruin your life, too.Facebook ruined my life. And it will ruin your life, too.
Posted at 2012/02/19 23:49 | Posted in ijuswanaseing페이이스북 어플리케이션을 지우게 된 기사의 일부. 트위터는 그나마 뉴스와 논쟁거리(?)들을 제공받는 중요 창구이기 때문에 여전히 찾고있지만 이마저도 언제 시들해질지 모르겠다.
time to move on..time to move on..
Posted at 2012/02/11 16:42 | Posted in ijuswanaseing이 블로그를 시작한지도 적잖은 시간이 흘렀고, 여기저기 프로필에도 걸어놨더니 알게 모르게 날 아는 지인들도 글을 보는듯 하다. 그러다보니 적당한 자기검열도 하게 되고, 정작 싸지르고 싶은 말은 하지 못하는 일이 생기게 되더라. 어느 정도는 공유하고자 하는 마음에 만들었지만 정작 내 진심은 말할 곳도, 쓸 곳도 없네.
이 블로그는 계속 유지 하겠지만 앞으로 사사로운 얘긴 다른 블로그를 이용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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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2/19 23:17 [Edit/Del]일장일단이 있겠지만,
저는 글도 울음같은거라 여기는 사람이거든요.
시원하게 써제끼고나면 뭔가 후련해지는
카타르시스(라고하면 좀 거창하겠지만)를 느끼기도 하는데,
이 곳에서 힘들더군요. 그래서 개인적인 공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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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없음제목없음
Posted at 2012/02/08 10:50 | Posted in ijuswanaseing7시에 일어나 학원을 가려고 했지만 영하 11도라는 날씨어플의 알림과 간밤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거린 탓에 일어나기가 힘들었다. 학원을 가야된다는 의지와 잠을 더 자자는 수마와의 치열한 다툼끝에 결국 난 수마(睡魔)에게 패했고 다시 피곤한 잠을 잤다. 나는 역시 안될 놈이구나 되뇌이며.
직업을 얻을 의지도 없고, 소득도 없지만 내 이름 앞으로 빚이 꼭 천만원이 되었다. 부채도 자산이라는데. 자산이라 생각하며 배부르다 생각해야지. 정부는 나에게 이자를 내라. 그럼 상환을 하겠다.
서류가 좀 필요해 아버지께 전화를 드렸더니 어머니와 함께 치과에 와계시단다. 무슨 일이냐고 여쭈니, 이가 안좋아 어금니를 두 개나 뽑으셨단다. 한 해, 두 해 거듭될 수록 부모님께서 편찮으신 곳이 햇수에 비례해 늘어가니 맘이 아프고, 무겁다. 또 두렵다. 그런데 난 이리도 철이 없다니. 부끄럽고 죄송스럽다.
시험이 10일 남았다.
신중현에 대한 재조명신중현에 대한 재조명
Posted at 2012/02/06 00:51 | Posted in 듣다
한국 대중음악사를 신중현이란 인물을 제외하고 얘기할 수 없다는 건 자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오직 '음악사'를 논할 때에만 그의 음악들과 이름이 거론되는 것은 참 안타까운 일이다. 지금의 젊은 세대들이 신중현의 이름을 들을 수 있는 것은 일년에 한 두번 할까말까하는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이나, 음악평론가들의 언급에서 일 뿐이다. 혹은 가뭄에 콩나듯 롹커 신대철의 아버지로 언급되는 것 정도? 북미권의 음악을 보면 클래식(고전 음악을 지칭하는 그것이 아닌 '명작'이란 의미의 클래식)은 남녀노소,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대대손손 향유된다. 예를 들면 The Eath, wind and fire의 September는 1978년에 발매됐지만 여전히 어느 장소에서 틀어도 흥을 돋고 따라 부르게 되는 넘버원 트랙이다. 물론 우리 대중문화와 음악의 역사가 그들에 비해 짧거니와 뭐든지 빠르게 대응하고 반응하는 한국의 국민성이 어느 정도 작용하는 이유도 있겠지만, 그 수준과 역사성에 비해 타당한 평가를 받지 못한 채 먼지를 뒤집어 쓰고 있는 레코드가 한 둘이 아니라는 것은 매우 아쉽다.
이런 상황 속에서 작년에 발매된 비트볼레코즈에서 발매된 희자매에 앤쏠로지는 값진 작업이라 할 수 있다. 이 앨범이 더 알찬 것은 단순히 그들의 노래를 복각해 낸 것이 아니라 솔스케이프, 시모, 무드슐라, 진보 등의 디제이와 프로듀서들이 현대적 의미로 재해석 해 낸 곡들이 있어 더 흥미롭다. 한국 힙합음악과 디제잉의 최전선에 있는 뮤지션들이기 때문에 퀄리티는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그냥 two thumbs는 물론 발가락까지 치켜세우고 싶은 심정.
뿐만 아니라 미국의 Light In The Attic Records에서도 신중현의 앤쏠로지를 발매했을 뿐만 아니라 미국의 음악잡지 Wax Petics의 팟캐스트 에서도 신중현의 음악을 재조명했다. 음반은 당연히 씨디로 발매했을 줄 알았는데 하이 퀄러티의 자켓과 사진들이 곁들여진 LP까지, 정말 제대로 나왔다. (자세한 정보는 LITA의 블로그에서 확인 가능합니다. http://lightintheattic.net/artists/363-shin-joong-hyun) 본국에서보다 타지에서 더 관심을 받는 것 같아 뿌듯하면서도 뭔가 아쉬운 맘이 조금 생긴다.
요즘들어 그나마 몇몇 공중파 프로그램에서 문화적 복고를 시도하는 움직임이 있어 다행이지만, 제발 그것 또한 한 때의 '트렌드'에 그치지 않길바란다.
나중에 듣기 위해서 몇 가지 동영상과 소리들을 모아 놓는다.
Wax Poetics Radio Podcast 004 (Bad Data #003 w. Chris Peters) by Wax Poetics
Playlist:
1. Matt Sullivan interview
2. “Beautiful Rivers and Mountains” Shin Joong Hyun
3. Matt Sullivan interview
4. “I’ve Got Nothing to Say” Shin Joong Hyun
5. 45 King interview
6. “Hard Knock Life” Jay-Z
7. “Learn How to Wait on Jesus” (with intro by Sid Ordower) The Jessy Dixon Singers
8. Steve Ordower interview
9. “Oh What a Meeting” (with intro by Sid Ordower) The Soul Stirrers
고전을 읽어야 하는 이유고전을 읽어야 하는 이유
Posted at 2012/02/03 00:47 | Posted in 공부거리들/인문이론은 근육이다. 보기에도 좋은 근육도 있겠지만, 마땅히 근육이라면 힘을 쓰기에 좋아야 한다. 보여주기 좋은 근육이 반드시 제대로 힘을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이론을 많이 알고 있더라도, 실제로 힘쓰지 못한다면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을 것이다. 물론 여기에서 '쓸모'란 공리주의 혹은 시장주의에서 말하는 효용성이나 교환가치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론은 일반적으로 운위하는 쓸모 있는 것이라는 '합의'에 도전하는 성질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근육을 사용해야 걷거나 달릴 수 있듯이, 이론이 있어야 우리는 모든 것을 집어삼켜버리는 현실의 중력에 대항해서 다른 것을 상상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근육의 쓸모이다. 그런 측면에서 이론은 익숙한 것들에서 낯선 것을 찾아내는 관점을 뜻하기도 한다. 하늘 아래 새로운 이론은 없다. 다만, 언제나 이론은 낡은 것에새 새로운 것을 만들어낸다. 이렇게 새로운 것의 출현이야말로 사건이다. 이론은 다르게 생각하는 법을 가르쳐주는 이정표라 할 수 있다.
이택광 『인문좌파를 위한 이론가이드』
이택광은 '이론'이라 말하고 있지만 이론을 고전으로 바꿔 읽어도 그 의미는 통한다.
책 읽을 겨를이 없지만 만지작 거리다 빌려왔다. 그래도 일주일에 한 권씩은 볼려고 노력해야겠다.
18일에 시험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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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괴감자괴감
Posted at 2012/02/02 13:56 | Posted in ijuswanaseing책을 읽어야 하지만 텝스책을 붙잡고 씨름하는 건 그래서 별로 탐탁치 못하다. 평소 읽고싶던 책을 서너권 가져와 서문만 훑어읽고 한 켠으로 밀어놓는 신세라니. 오오 통재라.
iPhone 에서 작성된 글입니다.
경축경축
Posted at 2012/02/01 00:17 | Posted in ijuswanaseing군대 가기 전에 티스토리 블로그를 시작한듯 한 데 벌써 스물일곱이다. 거의 방치되다시피해서 햇수로는 3년만에 10000hit을 찍었다. 이 보잘 것 없는 똥같은 글이 쌓여있는 똥무더기 같은 블로그에 검색을 잘못하여 엉뚱하게 들어오는 방문자 분들에게 심심한 감사를. 중학교때부터 시작한 사이버 공간 내 집 찾기는 여기저기를 떠돌다 결국은 티스토리에 정착했다. 내가 만들었던 사이트와 블로그들이 주마등처럼 스치는구만. (아 이런 클리셰라니.)
새해 소박한 목표 중 하나는 똥같은 글이라도 꾸준히 쓰고 그래서 한 달 방문자 1000명 찍어보자! 였는데 첫 달 부터 1300명! 목표를 초과달성! 근데 이게 또 기쁘지만은 않은게 슬슬 자기검열을 하게 된다. 여전히 게으름에 비문을 고칠 생각은 안하지만 곧 잘 쓰던 육두문자도 이젠 썼다가 지우기를 반복한다. 좋은 일인듯도 하니 뭐 신경쓰지 말도록 합니다.
유입경로나 유입키워드를 보면 참으로 다양하게 검색해서 들어오지만 그렇게 들어온 사람들이 충분한 정보를 얻어가는 지에 대해서 의문이 든다. 스스로 똥같은 글이라고 하지만 사실 똥처럼, 쓰레기처럼 보이고 싶은 마음은 없으니 조금 더 양질의 글을 쓰도록 노력해야겠다.
머릿속엔 여전히 써야 될 글들이 떠다니지만 쉽사리 시간이 나질 않는다. 짧은 글이라도 두서너 시간은 족히 걸리는 것들이니 계속 뒤로 미루게 된다. 그래도 일주일엔 하나씩 쓰도록 노력해 볼 참이다. 알바비를 받으면 도메인 포워딩도 해야겠다.
여튼 여러모로 낚여서 들어오신 분들, 디씨티에서 프로필 타고 들어오시는 분들 고맙고 환영하고 뭐 그렇습니다. 사실 남의 사생활을 훔쳐보는 맛을 쏠쏠하죠. 저도 개인적인 남들의 사생활 글을 보면 괜히 재밌고 뭐 그렇더라구요. 그럼 눈길에 모두 미끄러지지 마시고 안전보행 하시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