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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cy Gray - I try (J Dilla Remix)Macy Gray - I try (J Dilla Remix)

Posted at 2012/02/20 23:25 | Posted in 듣다

위로받을 구석이라곤 오래 누워있으면 허리가 아파오는 침대와 몇 권의 책들, 그리고 음악뿐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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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 - 제 정신을 갖고 사는 사람은 없는가김수영 - 제 정신을 갖고 사는 사람은 없는가

Posted at 2012/02/20 15:42 | Posted in 읽다
제 精神을 갖고 사는 사람은 없는가
김수영 전집2(민음사, 1981), 139-144쪽

제 정신을 갖고 사는 사람은 없는가? 근대의 자아 발달사의 견지에서 민주주의 사회의 구성원으로서의 자격을 요점으로 해서 생각할 때는 극히 쉬운 문제이고, 고대 희랍을 촛불을 대낮에 켜고 다니면서 <사람>을 찾은 철학자의 견지에서 全人에 요점을 두고 생각할 때는 한없이 어려운 영원한 문제가 된다. 한쪽을 대체로 정치적이며 세속적이며 상식적인 것으로 볼 때, 또 한쪽은 정신적이며 철학적인 형이상학적인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本欄[靑脈 66.5]의 요청은 아무래도 진단적인 서술에보다는 처방적인 답변의 시사에 강점을 두고 있는 것 같고, 다분히 작금의 우리의 주위의 사회현상의 전후관계를 염두에 둔 고발성을 띠운 답변의 시사를 바라는 것 같다.

제 정신을 갖고 사는 사람은 없는가? 나는 이 제목을, <제 詩를 쓸 수 있는 사람은 없는가>로 바꾸어 생각해보아도 좋을 것 같다. 범위를 詩壇에 국한시켜 위선 생각해보자. 우리 시단에 詩人다운 시인이 있는가. 이렇게 말하면 <시인다운 시인>의 해석에 으레 구구한 반발이 뒤따라 오겠지만, 간단히 말해서 정의와 자유를 평화를 사랑하고 인류의 운명에 적극 관심을 가진, 이 시대의 지성을 갖춘, 시정신의 새로운 육성을 발할 수 있는 사람을 오늘날 우리 사회가 요청하는 <시인다운 시인>이라고 생각하면서, 금년도에 접해온 시 작품들을 한 번 생각해볼 때 내가 본 전망은 매우 희망적이다. 좀더 전문적인 말을 하자면 우리 시단의 경우, 시의 현실참여니 하는 문제가 시를 제작하는 사람의 의식에 오른 지는 오래이고, 그런 경향에서 노력하는 사람들의 수도 적지 않았는데 이런 경향의 작품이 작품으로서 갖추어야 할 최소한도의 예술성의 보증이 약했다는 것이 커다란 약점이며 숙제로 되어 있다. 그런데 이런 약점을 훌륭하게 극복하고 있는 젊은 작품들이 작품에 나타나기 시작하고 있다. 이것은 국한된 조그만 시단 안의 경사만이 아닐 것이다.

四월이 오면
곰나루서 피 터진 東學의 함성,
光化門서 목 터진 四月의 勝利여.

江山을 덮어, 화창한
진달래는 피어나는데,
출렁이는 네 가슴만 남겨놓고,
갈아 엎었으면
이 군스러운 부패와 享樂의 不夜城
갈아 엎었으면
갈아 엎은 漢江沿岸에다
보리를 뿌리면
비단처럼 물결 칠, 아 푸른 보리밭
― 申東曄 「4월은 갈아 엎는 달」에서


  제 정신을 갖고 사는 사람은 없는가. 이것을 이번에는 좀 범위를 넓혀서 시를 행할 수 있는 사람은 없는가로 바꾸어 생각해보자. 시를 행할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4월 19일이 아직도 공휴일이 안 된 채로, 달력 위에서 까만 활자대로 아직도 우리를 흘겨보고 있을 리가 없다. 그 까만 19는 아직도 무엇인가를 두려워하고 있다. 우리 국민을 믿지 못하고 있고, 우리의 지성을 말살하다시피 하고 있다. 그것이 통행금지 시간을 해제하지 못하고 있고, 윤비의 국장을 다음 선거의 득표를 위한 쇼오로 만들었고, 부정 공무원의 처단조차도 선거의 투표를 계산에 넣고, 노동조합을 질식상태에 있고, 언론자유는 이불 속에서도 활개를 못치고 있다. 그런데 이보다도 더 위험한 일은 지식층들의 피로다. 이것은 우리나라뿐이 아닌 세계적인 현상이라고 보면 그뿐이겟지만 좌우간 비어홀이나 고급 술집의 대학교수들이 모인 술자리에서 <목석같은 나이가 나를 울린다>를 부르면 좋아하지만, 언론자유 운운하면 세련되지 않은 촌닭이라고 핀잔을 맞는 것이 상식이다. 얼마 전에 모신문의 부정부패 캠페인의 설문을 받은 명사 궁ㄴ데에 바로 며칠 전에 그 집에 가서 한 개에 4천8백원짜리 쿠션을 10여개나 꼬매주고 왔다고 여편네가 나에게 말하던 그 노 경제학자가 있는 것을 보고 낙담을 한 일이 있었다.

  그러나 이런 일은 남의 일이 아니다. 남의 일로 낙담을 했다고 간단하게 처리될 수 없는 심각한 병상이 우리 주위와 내 자신의 생활 속에 뿌리깊이 박혀 있다. 나의 주위에서만 보더라도 글을 쓰는 사람들 가운데 6부니 7부니 8부니 하고 돈놀이를 하는 사람이 있다. 나 자신만 하더라도 여편네더러 되도록 그런 짓은 하지 말라고 구두선처럼 뇌까리고 있기는 하지만 할 수 없다. 계를 드는 여편네를 막을 수가 없고, 돈을 빌려쓰지 않을 수가 없고, 딱한 경우에 돈을 꾸어주지 않을 수가 없고, 돈을 꾸어주면 이자를 받는 것이 상식으로 되어버렸다.

  우리들 중에 누가 죄없는 사람이 있겠는가. 인간은 神도 아니고 악마도 아니다. 그러나 건강한 개인도 그렇고 건강한 사회도 그렇고 적어도 자기의 죄에 대해서 몸부림은 쳐야 한다. 몸부림은칠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가장 민감하고 세차고 진지하게 몸부림을 쳐야 하는 것이 지식인이다. 진지하게라는 말은 가볍게 쓸 수 없는 말이다. 나의 연상에서는 진지한 침묵으로 통한다. 가장 진지한 시는 가장 큰 침묵으로 승화되는 시다. 시를 행할 수 있는 사람의 경우를 생각해보더라도 지금의 가장 진지한 시의 행위는 형무소에 갇혀있는 수인의 행동이 극치가 될 것이다. 아니면 폐인이나 광인. 아니면 바보. 그러나 이 글의 주문의 취지는 英雄待望論이 아닐 것이다.
앞에서 시사한 유망한 젊은 시인들의 작품과도 유관한 말이지만 우리 사회의문화정도는 아직도 영웅주의의 잔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김재원의 「立春에 묶여온 개나리」나 신동엽의 「발」이나 「4월은 갈아 엎는 달」의 因數에는 영웅 대망론의 냄새가 아직도 빠지지 않고 있다. 이것은 한편으로는 아직도 우리의 진정한 정치적 안정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는 말도 된다.

  나의 직관적인 추측으로는, 표면상의 지식인들의 피곤에도 불구하고 역시 이들의 내면에는 개인의 책임에 대한 각성과 합리주의에 대한 이행이 은연중에 강행되고 있다고 생각된다. 결국 모든 문제는 <나>의 문제로 귀착된다.

  제 정신을 갖고 사는 사람은 없는가, 따라서 나는 내 정신을 갖고 살고 있는가로 귀착된다. 그리고 이 문제는 나를 무한히 신나게 한다. 나는 나의 최근작을 열애한다. 나의 서가의 페이퍼 홀더 속에는 최근에 쓴 아직 미발표 중의 초고가 세 편이나 있다. 「식모」「풀의 影像」「엔카운터誌」라는 제목이 붙은 시들―아직은 사실은 부정을 탈 것 같아서 제목도 알리고 싶지 않았는데―이 중의 「엔카운터誌」 한 편만으로도 나는 이병철이나 서갑호보다 더 큰 부자다. 사실은 앞서 말한 김재원의 「입춘에 묶여온 개나리」를 읽고 나서 나는 한참동안 어리둥절해 있었다. 젊은 세대들의 성장에 놀랐다기보다도 이 작품에 놀랐다. 나는 무서워지기까지도 하고 질투조차도 느꼈다. 그래서 그달치의 「詩壇月評」에 감히 붓이 들어지지 않았다. 그런 私心이 가시기 전에는 비평이란 쓰여지는 법이 아니다. 그러다가 그 장벽을 뚫고 나온 것이 「엔카운터誌」다. 나는 비로소 그를 비평할 수 있는 차원을 획득했다. 그리고 나는 여유 있게 그의 시를 칭찬할 수 있었다. 이것은 내가 「立春에 묶여온 개나리」의 작자보다 우수하다거나 앞서있다거나 하는 말이 아니다.

  <제 정신>을 갖고 산다는 것은, 어떤 정지된 상태로서의 <남>을 생각할 수도 없고, 정지된 <나>를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다. 엄격히 말하자면 <제 정신을 갖고 사는> <남>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그것이 <제 정신을 가진> 비평의 객체나 주체가 되기 위해서는 창조생활(넓은 의미의 창조생활)을 한다는 전제가 필요하다. 그리고 이러한 모든 창조생활은 유동적인 것이고 발전적인 것이다. 여기에는 순간을 다투는 어떤 윤리가 있다. 이것이 현대의 양심이다. 「입춘에 묶여온 개나리」와 나와의 관계만 하더라도 이 윤리의 밀도를 말하고 싶은 것이 나의 목적이었다. 「엔카운터誌」를 쓰지 못하고 「입춘에 묶여온 개나리」의 월평을 썼더라면 나는 私心ㅌ이 가시지 않은 글을, 따라서 邪心 있는 글을 썼을 것이다. 개운치 않은 칭찬을 하게 되었을 것이고, 그를 살리기 위해서 나를 죽이거나 다치거나 했을 것이다. 그러나 「엔카운터誌」의 고민을 뚫고 나옴으로써 나는 그를 살리고 나를 살리고 그를 <제 정신을 가진 사람>으로 보고 나를 <내 정신을 가진 사람>으로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니까 쉽게 말하자면 제 정신을 갖고 사는 사람이란 끊임없는 창조의 향상을 하면서 순간 속에 진리와 美의 全身의 이행을 위탁하는 사람이다. 다시 말해두지만 제 정신을 갖고 사는 사람이란 어느 특정된 인물이 될 수도 없고, 어떤 특정된 시간이 될 수도 없다. 우리는 일순간도 마음을 못 놓는다. 흔히 인용되는 예를 들자면 우리는 「시지프의 신화」에 나오는 육중한 바윗돌을 밀고 낭떠러지를 기어올라가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러한 自覺人의 세계의 대열 속에 미약한 한국의 발랄한 젊은 세대가 한 사람이라도 더 끼이게 된다는 것은 우리들의 오늘날의 그지없는 기쁨이다. 끝으로 《現代》지 4월호에 게재된 「立春에 묶여온 개나리」의 전문을 감상해보기로 하자.

開花는 강 건너 春分의 겨드랑이에 球根으로 꽂혀있는데 바퀴와 발자국으로 寧日 없는 鐘路바닥에 난데없는 개나리의 行列.
한겨울 溫室에서, 公約하는 햇볕에 마음도 없는 몸을 내맡겼다가, 太陽이 住所를 잊어버린 마을의 울타리에 늘어져 있다가, 副業에 궁한 어느 中年사내, 다음 季節을 豫感할 줄 아는 어느 中年사내의 등에 업힌 채 鐘路거리를 묶여가는 것이다.
뿌리에 바싹 베개를 베고 新婦처럼 눈을 감은 우리의 冬眠은 아직도 아랫목에서 밤이 긴 날씨, 새벽도 오기 전에 목청을 터뜨린 닭 때문에 마음을 풀었다가……
닭은 무슨 못견딜 짓눌림에 그 깊은 時間의 테로리즘 밑에서 목청을 질렀을까.
엉킨 未亡人의 繡실처럼 길을 잃은 세상에, 잠을 깬 개구리와 지렁이의 입김이 氣化하는 아지랑이가 되어, 암내에 참지 못해 請婚할 제 나이를 두고도 손으로 찍어낸 花甁의 執權의 앞손이 되기 위해, 알몸으로 都心地에 뛰어나온 스님처럼, 업혀서 亡身길 눈 뜨고 갈까.
금방이라도 눈이 밟힐 것같이 눈이 와야 어울릴, 손금만 가지고 握手하는 남의 동네를, 우선 옷 벗을 철을 기다리는 時代女性들의 目禮를 받으며 우리 아버지가 때없이 한데 묶어 세상에 업어다놓은 나와 내 兄弟같은 얼굴로 行列을 이루어 끌려가는 것이다. 溫度에 속은 罪 뿐, 입술 노란 개나리떼.


  이것은 제 정신을 갖고 쓴 시다. 이 정도의 제 정신을 갖고 지은 집이나, 제 정신을 갖고 경영하는 극장이나, 제 정신을 갖고 방송하는 방송국이나, 제 정신을 갖고 제작하는 신문이나 잡지나, 제 정신을 갖고 가르치는 교육자를 생각해볼 때 그것은 양식을 가진 건물이며 극장이며 방송국이며 신문이며 잡지이며 교육자를 연상할 수 있는데, 아직은 시단의 경우처럼 제나름의 양식을 가진 것이 지극히 드물다. 균형과 색조의 조화가 없는 부정의 건물이 너무 많이 신축되고, 서부영화나 그것을 본딴 국산영화로 관객을 타락시키는 극장이 너무 많이 장을 치고, 약광고의 선전에 미친 방송국이 너무 많고, 신문과 잡지는 보수주의와 상업주의의 탈을 벗지 못하고, 교육자는 <6학년 담임 헌장>이라는 기괴한 운동까지 벌이게 되었다.

  제 정신을 갖고 사는 사람은 없는가. 이에 대한 처방전인 나의 답변은, 아직도 과격하고 아직도 수감 중에 있다.
<1966.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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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cebook ruined my life. And it will ruin your life, too.Facebook ruined my life. And it will ruin your life, too.

Posted at 2012/02/19 23:49 | Posted in ijuswanaseing

 

Comparing ourselves to others is a key driver of unhappiness. Tom DeLong, author of Flying Without a Net, even describes a "Comparing Trap." He writes, "No matter how successful we are and how many goals we achieve, this trap causes us to recalibrate our accomplishments and reset the bar for how we define success."And as we judge the entirety of our own lives against the top 1% of our friends' lives, we're setting impossible standards for ourselves, making us more miserable than ever.    

Second, it's fragmenting our time. Not surprisingly, Facebook's "horizontal" strategy encourages users to log in more frequently from different devices. My interviewees regularly accessed Facebook from the office, at home through their iPads, and while out shopping on their smartphones. This means that hundreds of millions of people are less "present" where they are. Sketching out a mind-numbing presentation for the board meeting? Perhaps it's time to reply to your messages. Stuck in traffic? It's time to browse your newsfeed. Recounted one interviewee, "I almost got hit by a car while using Facebook crossing the street."

Leaving the risk of real physical harm aside, the issue with this constant "tabbing" between real-life tasks and Facebook is what economists and psychologists call "switching costs," the loss in productivity associated with changing from one task to another. Famed author Dr. Srikumar Rao attributes mindfulness over multitasking as one of his ten steps to happiness at work. He argues that constant distractions lead to late and poor-quality output, negatively impacting our sense of self-worth.

 페이이스북 어플리케이션을 지우게 된 기사의 일부.  트위터는 그나마 뉴스와 논쟁거리(?)들을 제공받는 중요 창구이기 때문에 여전히 찾고있지만 이마저도 언제 시들해질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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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me to move on..time to move on..

Posted at 2012/02/11 16:42 | Posted in ijuswanaseing

이 블로그를 시작한지도 적잖은 시간이 흘렀고, 여기저기 프로필에도 걸어놨더니 알게 모르게 날 아는 지인들도 글을 보는듯 하다. 그러다보니 적당한 자기검열도 하게 되고, 정작 싸지르고 싶은 말은 하지 못하는 일이 생기게 되더라. 어느 정도는 공유하고자 하는 마음에 만들었지만 정작 내 진심은 말할 곳도, 쓸 곳도 없네. 

이 블로그는 계속 유지 하겠지만  앞으로 사사로운 얘긴 다른 블로그를 이용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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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비밀댓글입니다
    • 2012/02/19 23:17 [Edit/Del]
      일장일단이 있겠지만,
      저는 글도 울음같은거라 여기는 사람이거든요.
      시원하게 써제끼고나면 뭔가 후련해지는
      카타르시스(라고하면 좀 거창하겠지만)를 느끼기도 하는데,
      이 곳에서 힘들더군요. 그래서 개인적인 공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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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없음제목없음

Posted at 2012/02/08 10:50 | Posted in ijuswanaseing

 7시에 일어나 학원을 가려고 했지만 영하 11도라는 날씨어플의 알림과 간밤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거린 탓에 일어나기가 힘들었다. 학원을 가야된다는 의지와 잠을 더 자자는 수마와의 치열한 다툼끝에 결국 난 수마(睡魔)에게 패했고 다시 피곤한 잠을 잤다. 나는 역시 안될 놈이구나 되뇌이며.

직업을 얻을 의지도 없고, 소득도 없지만 내 이름 앞으로 빚이 꼭 천만원이 되었다. 부채도 자산이라는데. 자산이라 생각하며 배부르다 생각해야지. 정부는 나에게 이자를 내라. 그럼 상환을 하겠다.

서류가 좀 필요해 아버지께 전화를 드렸더니 어머니와 함께 치과에 와계시단다.  무슨 일이냐고 여쭈니, 이가 안좋아 어금니를 두 개나 뽑으셨단다. 한 해, 두 해 거듭될 수록 부모님께서 편찮으신 곳이 햇수에 비례해 늘어가니 맘이 아프고, 무겁다. 또 두렵다. 그런데 난 이리도 철이 없다니. 부끄럽고 죄송스럽다.

시험이 10일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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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중현에 대한 재조명신중현에 대한 재조명

Posted at 2012/02/06 00:51 | Posted in 듣다



  한국 대중음악사를 신중현이란 인물을 제외하고 얘기할 수 없다는 건 자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오직 '음악사'를 논할 때에만 그의 음악들과 이름이 거론되는 것은 참 안타까운 일이다. 지금의 젊은 세대들이 신중현의 이름을 들을 수 있는 것은 일년에 한 두번 할까말까하는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이나, 음악평론가들의 언급에서 일 뿐이다. 혹은 가뭄에 콩나듯 롹커 신대철의 아버지로 언급되는 것 정도? 북미권의 음악을 보면 클래식(고전 음악을 지칭하는 그것이 아닌 '명작'이란 의미의 클래식)은 남녀노소,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대대손손 향유된다. 예를 들면 The Eath, wind and fire의 September는 1978년에 발매됐지만 여전히 어느 장소에서 틀어도 흥을 돋고 따라 부르게 되는 넘버원 트랙이다. 물론 우리 대중문화와 음악의 역사가 그들에 비해 짧거니와 뭐든지 빠르게 대응하고 반응하는 한국의 국민성이 어느 정도 작용하는 이유도 있겠지만, 그 수준과 역사성에 비해 타당한 평가를 받지 못한 채 먼지를 뒤집어 쓰고 있는 레코드가 한 둘이 아니라는 것은 매우 아쉽다.



  이런 상황 속에서 작년에 발매된 비트볼레코즈에서 발매된 희자매에 앤쏠로지는 값진 작업이라 할 수 있다. 이 앨범이 더 알찬 것은 단순히 그들의 노래를 복각해 낸 것이 아니라 솔스케이프, 시모, 무드슐라, 진보 등의 디제이와 프로듀서들이 현대적 의미로 재해석 해 낸 곡들이 있어 더 흥미롭다. 한국 힙합음악과 디제잉의 최전선에 있는 뮤지션들이기 때문에 퀄리티는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그냥 two thumbs는 물론 발가락까지 치켜세우고 싶은 심정.


  뿐만 아니라 미국의 Light In The Attic Records에서도 신중현의 앤쏠로지를 발매했을 뿐만 아니라 미국의 음악잡지 Wax Petics의 팟캐스트 에서도 신중현의 음악을 재조명했다. 음반은 당연히 씨디로 발매했을 줄 알았는데 하이 퀄러티의 자켓과 사진들이 곁들여진 LP까지, 정말 제대로 나왔다. (자세한 정보는 LITA의 블로그에서 확인 가능합니다. http://lightintheattic.net/artists/363-shin-joong-hyun) 본국에서보다 타지에서 더 관심을 받는 것 같아 뿌듯하면서도 뭔가 아쉬운 맘이 조금 생긴다.

 요즘들어 
그나마 몇몇 공중파 프로그램에서 문화적 복고를 시도하는 움직임이 있어 다행이지만, 제발 그것 또한 한 때의 '트렌드'에 그치지 않길바란다. 

나중에 듣기 위해서 몇 가지 동영상과 소리들을 모아 놓는다.









Wax Poetics Radio Podcast 004 (Bad Data #003 w. Chris Peters) by Wax Poetics

Playlist:


1. Matt Sullivan interview
2. “Beautiful Rivers and Mountains” Shin Joong Hyun
3. Matt Sullivan interview
4. “I’ve Got Nothing to Say” Shin Joong Hyun
5. 45 King interview
6. “Hard Knock Life” Jay-Z
7. “Learn How to Wait on Jesus” (with intro by Sid Ordower) The Jessy Dixon Singers
8. Steve Ordower interview
9. “Oh What a Meeting” (with intro by Sid Ordower) The Soul Stirr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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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을 읽어야 하는 이유고전을 읽어야 하는 이유

Posted at 2012/02/03 00:47 | Posted in 공부거리들/인문


  이론은 근육이다. 보기에도 좋은 근육도 있겠지만, 마땅히 근육이라면 힘을 쓰기에 좋아야 한다. 보여주기 좋은 근육이 반드시 제대로 힘을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이론을 많이 알고 있더라도, 실제로 힘쓰지 못한다면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을 것이다. 물론 여기에서 '쓸모'란 공리주의 혹은 시장주의에서 말하는 효용성이나 교환가치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론은 일반적으로 운위하는 쓸모 있는 것이라는 '합의'에 도전하는 성질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근육을 사용해야 걷거나 달릴 수 있듯이, 이론이 있어야 우리는 모든 것을 집어삼켜버리는 현실의 중력에 대항해서 다른 것을 상상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근육의 쓸모이다. 그런 측면에서 이론은 익숙한 것들에서 낯선 것을 찾아내는 관점을 뜻하기도 한다. 하늘 아래 새로운 이론은 없다. 다만, 언제나 이론은 낡은 것에새 새로운 것을 만들어낸다. 이렇게 새로운 것의 출현이야말로 사건이다. 이론은 다르게 생각하는 법을 가르쳐주는 이정표라 할 수 있다.

이택광 『인문좌파를 위한 이론가이드』

 
이택광은 '이론'이라 말하고 있지만 이론을 고전으로 바꿔 읽어도 그 의미는 통한다.
책 읽을 겨를이 없지만 만지작 거리다 빌려왔다. 그래도 일주일에 한 권씩은 볼려고 노력해야겠다.
18일에 시험을 본다.

인문좌파를위한이론가이드이론의쓸모를고민하는이들에게
카테고리 인문 > 철학
지은이 이택광 (글항아리, 2010년)
상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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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괴감자괴감

Posted at 2012/02/02 13:56 | Posted in ijuswanaseing
내 지식-이래봐야 습자지 몇 장 쌓아놓은 수준이지만-은 깡통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외형적으론 그럴싸한 형체를 가진듯 보이지만 뼈대도 없도 근육도 없다.

책을 읽어야 하지만 텝스책을 붙잡고 씨름하는 건 그래서 별로 탐탁치 못하다. 평소 읽고싶던 책을 서너권 가져와 서문만 훑어읽고 한 켠으로 밀어놓는 신세라니. 오오 통재라.

iPhone 에서 작성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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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축경축

Posted at 2012/02/01 00:17 | Posted in ijuswanaseing


군대 가기 전에 티스토리 블로그를 시작한듯 한 데 벌써 스물일곱이다. 거의 방치되다시피해서 햇수로는 3년만에 10000hit을 찍었다. 이 보잘 것 없는 똥같은 글이 쌓여있는 똥무더기 같은 블로그에 검색을 잘못하여 엉뚱하게 들어오는 방문자 분들에게 심심한 감사를. 중학교때부터 시작한 사이버 공간 내 집 찾기는 여기저기를 떠돌다 결국은 티스토리에 정착했다. 내가 만들었던 사이트와 블로그들이 주마등처럼 스치는구만. (아 이런 클리셰라니.) 

새해 소박한 목표 중 하나는 똥같은 글이라도 꾸준히 쓰고 그래서 한 달 방문자 1000명 찍어보자! 였는데 첫 달 부터 1300명! 목표를 초과달성! 근데 이게 또 기쁘지만은 않은게 슬슬 자기검열을 하게 된다. 여전히 게으름에 비문을 고칠 생각은 안하지만 곧 잘 쓰던 육두문자도 이젠 썼다가 지우기를 반복한다. 좋은 일인듯도 하니 뭐 신경쓰지 말도록 합니다.

유입경로나 유입키워드를 보면 참으로 다양하게 검색해서 들어오지만 그렇게 들어온 사람들이 충분한 정보를 얻어가는 지에 대해서 의문이 든다. 스스로 똥같은 글이라고 하지만 사실 똥처럼, 쓰레기처럼 보이고 싶은 마음은 없으니 조금 더 양질의 글을 쓰도록 노력해야겠다. 

머릿속엔 여전히 써야 될 글들이 떠다니지만 쉽사리 시간이 나질 않는다. 짧은 글이라도 두서너 시간은 족히 걸리는 것들이니 계속 뒤로 미루게 된다. 그래도 일주일엔 하나씩 쓰도록 노력해 볼 참이다. 알바비를 받으면 도메인 포워딩도 해야겠다.

여튼 여러모로 낚여서 들어오신 분들, 디씨티에서 프로필 타고 들어오시는 분들 고맙고 환영하고 뭐 그렇습니다. 사실 남의 사생활을 훔쳐보는 맛을 쏠쏠하죠. 저도 개인적인 남들의 사생활 글을 보면 괜히 재밌고 뭐 그렇더라구요. 그럼 눈길에 모두 미끄러지지 마시고 안전보행 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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