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제무제
Posted at 2012/01/27 23:46 | Posted in ijuswanaseing연초임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살지 않다니! 망할. 망했다. 망했어. 집에서 토익공부를 할 때는 집에 있는게 눈치 보이니까 아침밥을 먹고 입에서 치약의 뒷맛이 가시기도 전에 자전거를 타고 도서관으로 향했다. 저녁에도 눈치 보이는건 변함 없으니 9시~10시 쯤 들어가 간식을 줏어먹고 자기를 한 달 여를 했는데. 혼자 살다보니 눈치 볼 사람도, 나를 강제할 사람도 없다. 밥을 챙겨줄 사람도 없으니, 일어나는 것의 귀찮음, 아침식사를 먹는 귀찮음이 밀려오고 결국 고민고민하다 잠의 수렁으로 빠져는 경우가 허다했다. 버스를 타자니 너무 가깝고(두 정거장 ㅠㅠ) 걷자니 살짝 먼(그래봤자 15분~20분이지만) 학교 도서관은 왜이래 야속하기만 한 것인가. 설상가상으로 설까지 고향에 내려가 지냈더니 모든 흐름이 다 깨졌다.
그렇지만 모두 핑계다.
할 건 많다. 일단은 텝스를 끝내야되고, 토익도 다시 봐야되고, 트렌드에 뒤쳐질 수 없으니 오픽도 봐야된다. 한 가지에 집중해도 잘되기 힘든 마당에 둘 다를 준비하려니 여러모로 힘에 부치지만 힘들다고 미뤄봐야 어쨌든 해야되는 건 마찬가지니까. 일단은 주말 동안 그 동안 밀린 인강 먼저 다 듣는게 급선무. 시험공부도 하고. 시험까지 끽해야 20일 남았는데 700은 커녕 600도 안나오것다. 논문도 써야되잖냐. 접때 써 놓은것도 고쳐야지. 면접 준비할려면 정치학 전공책도 봐야지.. 정신차리자. 그렇게 시간 죽일때가 아니란 말이다..
여행하며 먹은 것들여행하며 먹은 것들
Posted at 2012/01/18 17:00 | Posted in 여행할 권리인터넷으로 뉴스 좀 보다 누군가 여행하며 먹은 것들을 정리한 포스팅을 보고 나도 한 번 해볼까? 하면서 사진을 모아보기 시작했다. 많이 찍는답시고 찍었는데 사진을 많이 찍지 못한 것 같다. 특히 식당가면 먹는 데 정신이 팔려서 찍지 못했다는. 볼리비아 여행의 꽃인 라빠즈 플라자 호텔 스테이크 부페(내가 부자라서 간 게 아니라 가격이 10달러니까 안갈 수가 없다. 라빠즈 여행 필수코스!)나 끼또 시장골목에서 먹었던 곱창스프(편의상 이렇게 해두지만..여튼 곱창을 넣고 끓인 약간 걸쭉한 국이었다), 여행하면서 처음 들렀던 꾸스꼬의 비싼 레스토랑(주인이 맨유의 팬이었는데 메뉴판에 첼시팬과 무링요는 들어오지 못한다고 써있어서 한참을 웃었다. :D )은 꼭 찍어뒀어야 했는데. 우유니를 떠나 열 몇시간 만에 깔라마에 도착했을 때, 깔라마에서 갔던 그 식당! 생각보다 가격은 좀 쎘지만 너무 맛있었다. 동행했던 소연형님은 사진을 가지고 있을런지. 금강산도 식후경인데 사실 남미의 음식들을 많이 즐기진 못했다. 일단 말이 너무 안통했고, 안전빵으로 가자는 마음으로 아는 단어들로만 메뉴를 시켰기도 했고, 진짜 왜 이렇게 고수풀들을 좋아하는지 아예 입도 못대는 나에게는 너무 고역이었다. No quiero culantro, por favor.를 말했는데도 알아듣지도 못하고. 여기서 비롯된 출판 아이디어(?)가 하나 있는데 누가 채갈지 모르니 기회를 봐서 나중에 포스팅 하기로.
뉴욕에서 먹은 그 유명한 Shake Shack 그러니까 이게바로 쉑쉑버거. 내가 일했던 레스토랑 햄버거가 너무 맛있었던 건지 사실 기대만큼은 아니었다. 엄청 기다려서 먹었음.
뉴욕에서 먹어던 베트남 국수(?). 호스텔에 있던 한국사람들과 동행해서 갔었는데 아마 유니온 스퀘어 근처였던 걸로 기억. 꽤나 유명한 레스토랑이라고 했었는데 이름도 기억이 안남.
코파카파나에 도착해 점심으로 먹었던 뜨루차! 어찌나 호객이 심하던지 죽 늘어선 음식점들이 서해안 바닷가의 그것과 익숙해 고향이 생각이 났다. 썩 나쁘진 않았으나 양이 너무 적었다. 그러나 콜라를 서비스로 줬으니 만족. 가격담합이 돼있어서 어디서 콜라줬다고 말하지 말라고 그랬다 ㅋㅋㅋ
꾸스꼬 시장에서 먹었던 과일주스. 휴대용 컵에 주길 바랬건만 유리잔에 줘서 어정쩡하게 서서 먹었다. 문제는 저 한 컵이 다가 아니라 저만큼 두 컵 반을 먹었다. 3~4솔(약 500원정도) 했던거 같은데 배터져 죽을뻔. 알고보니 주인아주머니 한국인을 좋아해서 양을 엄청 많이 주는 곳이란다. 그러나 제조 도중에 넣던 한 뭉치의 설탕!!!
남미사람들도 강냉이를 먹더라! 그것도 엄청 대량으로 판다. 그러나 한국과는 달리 즉석으로 튀겨서 파는 게 아니라 어디 공장에서 사오는건지 강냉이 튀기는 기계는 없고 내 몸집보다 큰 포대에 산더미 같이 쌓아놓고 판다. 그래서 좀 눅눅하다. 맛은 한국꺼랑 똑같다ㅋㅋ
남미에 그렇게 중국인이 많을지 몰랐다. 와라스 그 조그만 동네에는 유독 많아서 과장을 좀 보태자면 한 집 건너 한 집이 중국집이었다. 스빼니쉬로는 Chifa. 지독한 장염으로 고생하던 나는 딴 걸 먹을 생각도 없이 한 동안 저런 볶음밥으로 끼니를 때웠다. 양도 미친듯이 많이 줌. 아이러니하게도 남미여행하면서 제일 많이 먹은 게 바로 중국음식 ㅠㅠ
꾸이! 좀 혐오스러워 보이지만 남미인들의 전통 스태미너 보충 음식이라고 한다. 한국의 보신탕이 좀 비싸듯이 꾸이도 조금 비싸다. 특유의 누린내가 심하다는데 생김새때문에 차마 시도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아차. 꾸이는 우리가 아는 기니피그다.
밑에 웃고 있는 돼지의 살을 저며서 이렇게 내 준다. 저 콩처럼 보이는건 뭔지 모르겠는데 곡물 같음. 이건 특히 껍데기가 그렇게 맛있음. 그래서 아주머니 껍데기는 몇 개 안준다..이걸 먹고 우연히 설거지 하는 모습을 봤는데..그 이후론 노점에서 뭘 먹는걸 꺼리게 됐다. 뭘 상상하든 상상 그 이상이니 차마 말을 하지 못하겠다. 참고로 세제는 쓰지 않았다..
Chancho. 아차 여기는 끼또에서 두 시간쯤 떨어진 남미최대의 전통시장 오따발로. 갖가지 전통 민예품, 직물 등을 싼값에 살 수 있다. 규모가 엄청커서 콜롬비아 쪽에서도 온다고 한다. 아침부터 강도를 만난 것 치고는 꽤나 재밌는 하루였다.
남미의 음식은 한국과 많이 비슷하다. 저 붉은 건 선지.
적도박물관 찾아갔을 때 간식으로 먹었던 햄버거. 별거 없었음. 깜찍한 콜라병이 인상적.
뭐 말이 되야 주문을 하든가 말든가하지. 그냥 손가락으로 시켰더니 나온거. 나중에 알고보니 양고기였다. 딴데보다 좀 비싼 것 같더니 음식도 맛있었고 일단 깔끔한 식당이었다.
토론토에서 먹었던 라면. 이름하여 킹라면. 토론토에서 제일 유명한 일본라멘집인데 사장은 한국인 일하는 사람들도 한국인. 소문처럼 진짜 맛있었음.
내가 살던 집 landlady는 태국에서 이민 온 사람이었는데 가끔 이런 태국음식을 많이 만들어줬다. 그중의 최고봉은 두 말 할 것없이 스프링롤. 스프링롤을 여러개 잘라넣고 갖은 채소와 소면 거기에 Say(집주인)의 특제소스를 뿌려서 비벼먹으면 진짜 최고.
토론토의 또다른 핫스팟 빅부리또. 부리또 주제에 무슨 11달러냐!! 하며 그냥 먹었는데 홀리쓋. 진짜 아직도 잊을 수 없는 맛이다. 한국에 저렇게 짐승같은 부리또 파는데 혹시 없나요...
아마 내가 자주가던 정육점의 햄버거 사진인듯. 겨우 3달러지만 보는 것처럼 패티가 살아있다. 셋트를 먹어봤자 4달러. 온갖것이 다있던 켄싱턴 마켓이 그립구나ㅠㅠ
쉬는 날 이었을듯. 저 맛없어 보이는 마늘바게뜨 실은 엄청 맛있는거..
Queen/Bathurst에서 살 때 자주 갔던 서브웨이. 한국도 저만한가?
뉴욕에서 끼또로가는 비행기 안에서 먹었던 에콰도르 맥주 필스너. 하이네켄이 있길래 달랬더니 에콰도르 맥주를 먹어보는 게 어떻겠냐고 해서 두 캔이나 까먹고 잤음.
바뇨스 도착해서 먹었던 저녁. 양이 턱없이 부족해서 아마 마트에서 먹을껄 잔뜩 사가지고 호스텔로 들어갔던 거 같다. 토마토위에 정갈하게 뿌려진 저건 내가 치를 떨던 고수풀, 중국어론 썅차이, 스빼니쉬론 꿀란뜨로, 씰란뜨로. 냄새도 맡지 않았음 ㅠㅠ
닭스프. 겨우 3달러 짜리 메뉴를 먹었는데 샐러드에 닭에 밥에 스프에 너무 잘나와서 놀랐는데 저 초록색의 것이 역시 또 고수풀. 맛은 있었으나 특유의 향 때문에 숨을 쉬지 않고 꿀떡꿀떡 넘겼다. 살아야되니까..
옥수수! 숯불에 구운거라 맛있다. 매콤한 양념 발라주는 데도 있다는데 난 마요네즈를 발라주더라. 근처엔 돼지껍데기 파는 노점도 있었다.
위에서 먹었던 그 chancho요리.
얘네도 꼬치 좋아하더라. 50센트였나?
가히 바뇨스의 명물이라 칭하고 싶다. 저 4조각에 겨우 2달러. 볼품없어 보이지만 피자가 아니라 그냥 치즈라고 생각해도 될 정도. 두 번 더가서 안면트고 인사했었음 ㅋㅋㅋ
아마 리마 센트럴지역에서 먹었던 깔도나도? 닭육수에 국수였던거 같은데 너무 짜서 많이 먹지못했다.
리마에 가면 해산물을 먹으라고 했는데 제대로 즐기지 못했다. 그나마 먹은 해산물이 바로 보이는 고등어 구이. 아무도 생선을 다듬을지 몰라(몰랐는지 모른척 했던건지) 한 번도 해보지 않은 내가 고등어를 다듬없다ㅋㅋ 나름 괜찮았던 저녁식사. 이 날 처음으로 한국사람들을 많이 만났음. 어찌나 반갑던지. 리마에서 묶은 호스텔도 짱.
마추픽추에 가기위해서 머물렀던 오얀따이땀보에서 먹은 뽀요. 남미 여행 내내 먹은 닭고기. 근데 질리지가 않아!
위에서도 말했지만 남미여행도중 제일 많이 먹은 중국요리. 이 날은 꾸스꼬에서 만난 한국인들끼리 의기투합해서 코스요리를 먹었다. 음식이 너무 많아 앵글안에 들어오지도 않아!!
꼬빠까바나를 떠나 라빠즈로 향할 때, 티티카카 호수를 건넌 직후 먹은 생선튀김. 위에 매콤한 칠리소스 때문인지 은근히 맛있다.
라빠즈는 매연만 빼곤 다 좋았다. 갈 곳도 많고, 볼 곳도 많고, 먹을 것도 많다. 특히 소고기가 싼데 저런 소고기가 15볼리비아노. 한국돈으로 해봐야 2000원이 안된다. 라빠즈엔 한국식당도 있고 마트도 있다.
라빠즈에서 묵었던 호스텔 근처 시장에서 먹은 깔도나도(?). 이것도 좀 짭짤했음. 다음날 먹고 설사했음..
우유니의 소금호텔에서 끓여먹었던 라면. 여행내내 짊어지고 다녔던 라면 두 개가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토론토를 떠나기 전 피어슨 공항에서 팀홀튼과 마지막 작별을 했다. 그리운 아이스캡과 맛있는 도넛들. 그리운 것들 중 하나.
한국 돌아와서 찾아간 복성루. 군산에서 몇 년을 살았는데 요날 처음갔다. 위생상태가 별로 좋지 않아 좀 그랬는데 역시 소문대로 맛은 쌍따봉.
나 그리고 당신에게 집이 없는 이유나 그리고 당신에게 집이 없는 이유
Posted at 2012/01/16 00:04 | Posted in 읽다
책에 대한 총평. 만약 당신이 이민을 손톱만큼이라도 생각해봤다면 이 책은 그 고민에 방점을 찍어주는 노릇을 해준다. 숫자 통계 하나로 삶의 비참함을 바닥 끝까지 송두리채 끌어내린다. 해결책을 말하고 있지만 이미 일부는 실패를 했고, 일부는 한국 사회에 적용하기에는 당장엔 너무 급진적이다. 그럼에도 유익한 책이 분명한 것은 왜 우리가 이러한 상황에 처했는가를 반추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수 많은 통계수치의 나열과 해석임에도 재미있는 것은 바로 '우리 삶'의 통계이기 때문이다. 이 책과 더불어 같은 출판사(후마니타스)에서 나온 발레리 줄레조의 '아파트 공화국'까지 읽게 된다면 이민에 대한 고민에 방점을 찍은 후 비행기 표를 사는 당신을 발견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손낙구가 통계 수치로 한국의 부동산을 해부했다면, 발레리 줄레조는 조금더 미시적인 관점에서 한국의 아파트 역사를 살피고, 그 안에 자리잡은 '아파트 문화'를 분석한다. 발레리 줄레조의 책이 조금 더 재미있는 편이다. 프랑스의 지리학자가 바라 본 한국의 아파트라니 신기하지 않은가?)
(지하철 버스 등에서 <부동산 계급사회>를 읽으며 오며가며 틈틈히 에버노트로 스케치 해 본 글이다. 에버노트의 맥북과 아이폰에서의 연동은 글쓰기를 더 편하게 만든다.)
공부를 거듭하면 할 수록 한국은 참 신기한 나라다. 겨우 반 세기만에 전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발전을 이뤄냈고 세계 최초로 원소 수혜국에서 원조국으로 돌아선 나라가 아니던가. 경제규모는 물론 세계적 거시경제 지표나 기술력 순위에서 한국을 찾는 일은 이제 어렵지 않은일이 됐다. 우리는 이것을 한강의 기적이라 말한다. 그렇다 대한민국 국민들은 전지전능한 신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기적'을 행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이런 기적을 일으킨 국가와 국민들에게도 그 기적의 기반을 마련한 50년간 이룰 수 없었던 꿈이 있다. 바로 '내 집 마련의 꿈'이다. 한국무협협회 추산 경제효과 31조의 G20 정상회의를 개최했고, 400억 달러 규모의 원자력 발전소를 수출했으며-나중에 우리 돈을 퍼주는 '뻘짓'임이 드러났지만-, 지난 해에는 세계에서 9번째로 무역규모 1조달러의 반열에 올라섰지만 여전히 한국 국민의 절반 이상은 자기 소유의 집이 없다. 거 참 아이러니 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한국이 이렇게 발전한 기반이 된 것은 국민 하나 하나의 노동력이었을텐데, 세계 10위 경제대국이라 여기저기 떠벌리고 다니는 나라의 국민들 자기 집이 없다니. 그 많은 돈은 모두 어디로 간 것일까.
손낙구의 분석에 따르면 우리 나라 부동산 시장은 크게 4번의 폭등기를 거쳤다. 1963년을 기준으로 했을때 2007년 서울의 땅값은 1176배가 올랐으며 대도시 땅값은 923배가 올랐다. 같은 기간동안 소비자 물가가 43배가 올랐으며, 비슷한 기간의 도시노동자 가구 월평균 실질 소득은 고작 15배 증가했다. 이 통계만 보더라도 평범한 노동자라면 우린 절대 집을 살 수 없다는 것이 명약관화해진다. 그렇지만 한국의 부동산 및 주택 정책이 기형적인지, 서민들이 얼마만큼 고통받고 있는지를 살펴보기 위해 이 불편한 통계를 좀 더 훑어보자. 4차 부동산 투기 때인 2000년~2005년 주택은 175만 채가 늘었지만 셋방 사는 가구 수는 615만에서 657만 가구로 42만 가구가 더 늘었다. 셋방 가구 중에서 전세 가구가 48만이 줄어든 반면 월세 가구는 90만 가구가 늘어났다. 셋방을 살게되면 당연히 이사를 다니는 횟수가 늘어난다. 인구이동률 통계에 따르면 1971~95년 사이 한국 전체 인구의 4분의1이 거의 매년 이동했다. 비슷한 시기 일본의 인구 이동률은 5.4%이며, 대만은 8.1%이다. 간단하게 말하면 한국인들은 세계에서 이사를 제일 많이 다니는 나라라는 거다.
좀더 피부에 와닿는 통계를 살펴보자. 신혼부부 결혼 비용의 약 70%는 주택 마련비용으로 들어가며 이 마저도 대부분은 대출에 의존한다. 가계 부채의 70%는 부동산 관련대출이며며, 소득의 30% 가까이 이런 빚을 갚는데 쓰인다. 결국 쓸 돈이 없기 때문에 다른 소비를 줄이게 되고, 결국 내수 시장은 침체되기 마련이다. 결혼을 하려해도 집을 구하는 데 엄청난 돈이 들어가니 결혼이 늦어지고, 대출을 받아 집을 마련한다 하더라도 대출금을 갚기 위해 소비를 줄이다 보니 결국 이는 출산율에도 영향을 미친다. 자식을 대학까지 졸업시키는 데 드는 양육비가 2억이 넘게 되며, 신혼부부들은 ㅈ '집이냐 자식이냐'라는 선택의 기로에 서게된다. 저출산의 여파는 유아용품 시장에서 극명하게 나타난다. 분유 판매량은 02년~04년에 35%가 축소됐고, 유아복은 4년간(1999~2003) 매출액이 20%가 줄었다.
혹시 주택이 부족해 이런 현상이 나타난건 아닌가 의심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2005년 통계청의 발표에 따르면 한국의 주택공급률은 105%로 전 국민이 가구당 한 채씩 집을 가져도 100만 채가 남는다고 한다. 그러나 2주택 이상을 보유하고 있는 전체 국민의 6%가 전체 주택의 49%를 소유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더 안타까운 것은 고위공직자들의 부동산 자산 소유가 두드러진다는 것이다. 2008년 통계에 따르면 고위 공직자 100명의 부동산 재산은 8909억으로 1인당 89억씩 소유하고 있다. 재테크 정신이 투철하신 가카께서는 당당히 1위에 이름을 올리시며 382억 가량의 부동산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이 지경까지 오는 동안 정부는 뭘하고 있었을까. 안타깝게도 부동산 정책은 정권을 잡기 위해 이용할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수단이었다.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로 이어지는 군사독재 시절엔 말할 것도 없고, 김대중 정부는 외환 위기 극복 수단으로 부동산 경기 활성화를 선택해 투기 방지 규제를 대부분 풀었으며, 이어 수도권 신도시, 기업도시, 행정도시 등의 각종 개발정책이 이어지면서 투기를 부추겼다. 부동산만은 꼭 잡겠다며 들어선 노무현 정부도 다를 바 없었다. 세계적 부동산 가격상승과 과잉유동성이라는 대내외적 상황을 감안한다손 치더라도, 결과적으로 크게 오른 부동산 가격은 그를 뽑아준 '서민'들을 울렸다. 뒤늦게 종부세의 영향으로 부동산 가격이 하락하기 시작했지만 다음 들어선 이명박 정권은 이를 원점으로 되돌려 놓았다. 건설사 CEO 출신답게 공급만이 살 길임을 천명하며 뉴타운, 재개발 사업에 열을 올렸고, 결국 누그러든 부동산 투기의 불씨에 불을 지폈다. 시민운동을 했던 박원순 조차도 최근 있었던 가락시영-염창 1구역에 대해 종상향을 결정하며 토건족들의 손을 들어줬다. 가락시영의 세입자 비율이 70%이고, 뉴타운 개발 지역민들의 재정착률이 37%임을 감안해본다면 결국 새로 들어설 아파트도 가진자들의 알뜰한 자산이 될 게 뻔하다.
강용석의 고소로 한껏 주가를 올린 최효종의 계산식을 빌려와보자. 너그럽게 좋은 조건으로 계산을 해보자. 연봉 5000만원의 회사원이 강남(서초, 송파, 강남 기준)에 아파트 한 채를 얻으려면 20년 동안 숨만 쉬고 일을 하면된다. 그래 좀 재테크를 해서 돈을 불렸다 치자. 그래도 숨만 쉬고 15년을 일해야 한다. 그러니 내 집 마련은 '꿈'일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해결 방법은 없는 것일까? 손낙구의 지적처럼 사유재산의 이데올로기가 철저한 남한사회에서 부동산 정책을 급선회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렇다면 점진적으로 풀어가야 하는 게 당연하다. 가장 먼저 실질 거주하고 있지 않은 집에 대한 세금과, 고액 부동산 거래에 대한 중과세가 필요하다. 재벌의 배만 부르게 해줬던 아파트 선분양 제도와 분양 원가를 공개하고, 각종 특혜를 폐지해야 한다. 이보다 먼저 선행해야 하는 것은 국민들이 최소한의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정부가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손낙구의 추정치에 따르면 약 300만 가구 1000만 명 이상이 법정 최저주거기준에 미달되는 집에 살고 있다. 반지하는 물론이고, 아직도 비닐 움막이나 동굴에 거주하는 인구가 상당하다는 것은 세계 10위 경제 대국의 '국격'에 어울리지 않는 현실 아닌가.
대한민국 국민들이 하나의 꿈을 더 갖게 되었다. 바로 '취업의 꿈'이다. 경제 생활을 하는 것이 '꿈'이 되어버렸으니 '내 집 마련의 꿈'은 저만치 더 뒤로 도망쳐 버린 상태다. 흔히들 '먹고 사는 게 일'이라고 말하지만 이런 상태로 가다간 '먹고 사는 것' 조차도 꿈이 되는 현실이 오지 않으리란 보장은 없다. 이런 현실을 바꿀 수 있는 것은 오직 한 가지, 국민들의 정치에 대한 참여 뿐이다. 지난 4년간 우리는 충분히 혹독하게 정치의 중요성을 학습했다. '닥치고 정치' 따위의 말도 결국은 정치에 대한 중요성 더 구체적으로는 참여에 대한 중요성으로 귀결된다. 부동산 얘기를 하다 갑자기 삼천포로 빠졌지만 어쨌든 방법은 정치뿐이니 어색하게 이렇게 끝을 맺을 수 밖에. It's the politics, Stup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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